아베 총리(왼쪽)가 최악의 위기에 빠지면서 고이즈미 신지로 의원이 자민당의 차세대 총재감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사진=뉴시스)
아베 총리(왼쪽)가 최악의 위기에 빠지면서 고이즈미 신지로 의원이 자민당의 차세대 총재감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사진=뉴시스)

 

 

[뉴시안=김경철 도쿄통신원] 지난 14일, 일본 정치 1번지로 불리는 도쿄 나가타쵸에 위치한 국회의사당 앞에는 3만명(주최측 추산)의 시민들이 운집하여 ‘아베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같은 시각 국회 내부에서는 최대 야당인 입헌민주당을 비롯한 6대 야당 의원들이 합동모임을 갖고 아베 정권의 퇴진을 위해 총력전을 펼칠 것에 합의했다.
 
이날 모임에서 야당 의원들은 아베 정권의 ‘5대 의혹’을 제기하며 공동대응을 모색했다. 야당이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는 5대 의혹이란 ▶모리토모 학원의 국유지 헐값 매입과 재무성 문서 조작 사건 ▶가케 학원의 수의대 신설 특혜 ▶자위대 해외 파병부대의 일보 문제 ▶재량노동제 데이터와 과로사 사안을 둘러싼 후생노동성의 태도 ▶마에카와 기헤이 전 문부과학성 사무차관의 강연활동에 대한 문부과학성의 압력 이다.
 
모리토모 학원의 국유지 헐값매입 특혜와 가케 학원의 수의대 신설 특혜는 이른바 ‘사학스캔들’로 불리며 작년 한 해 동안 일본을 뒤흔들었던 총리 관련 스캔들이다.
 
하지만 아베 총리가 국회답변을 통해서 관련설을 강력 부인하면서, 담당부처가 독단으로 총리 친구들의 편의를 봐준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문제가 올 3월부터 다시 불거져 나왔다.
 
모리토모 학원 문제에 있어서는 일본의 ‘관청 중의 관청’이라고 불리는 재무성이 의혹을 덮기 위해 변조한 공문을 국회에 제출했던 사실이 발각되었으며, 가케 학원 문제에 관해서는 관할소재지인 에히메 현 담당자가 가케 학원의 수의대 인가 문제가 ‘총리안건’이라고 보고한 문서가 새롭게 공개된 것이다.
 
자위대 부대의 일보 문제란 육상 자위대의 일일보고서인 ‘일보(日報)’ 은폐 의혹 사건이다. 일본 방위성과 자위대는 그 동안 이라크로 파병했던 육상자위대의 일보 제출을 요구하는 의원들에게 “일보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제출을 거부해왔다.
 
그런데 올 3월 들어 오노데라 방위상이 “확인결과 일보가 남아있다”고 발표, 이 과정에서 자위대가 작년 3월에 일보를 발견해 놓고 1년이 넘도록 소속기관장인 방위상에게 보고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이로 인해 문서 은폐와 더불어 군 간부의 보고누락까지 문제로 떠오르며, 문민통제(민간인 관료에 의한 군부 통제)의 실효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다. 즉, 헌법 개정을 통해 자위대에 ‘합법적인 군대’로서의 지위를 부여하려는 아베 총리의 계획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중대사안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는 양상이다. 
 
후생노동성을 둘러싼 ‘재량노동제’ 데이터 논란은 아베 정권이 정력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하는 방식 개혁’법안과 관련된 데이터 조작 문제다. 재량노동제란 실제 일한 시간과 관계없이 정해진 임금을 주는 제도로서, 시간외 근무에 대해서도 잔업 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정해진 임금만 지불하겠다는 정책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1월 국회에서 “재량노동제 하의 노동자의 근무시간이 일반 노동자보다 짧다는 데이터가 있다”고 발언하면서 회기 내 국회통과를 주장했다.
그런데 이 발언의 근거가 된 후생노동성의 데이터가 부정확하며 조작되었다는 논란이 일자 후생노동성이 데이터를 철회해 버렸다. 이 문제는 노동계와 시민단체 등이 강력 반발하는 법안의 처리를 위해 정권이 데이터를 조작했다는 공분을 사고 있다.
 
마에카와 기헤이(前川喜平) 전 문부과학성 사무차관은 2017년 7월 국회에 출석하여 가케 학원 특혜에 아베 총리의 압력이 있었다고 폭로함으로써 가케 학원 스캔들을 증폭시켰던 인물이다.
그런데 지난 2월에 나고야의 한 중학교에서 미야카와 전 차관을 초청해 강연을 부탁하자, 문부과학성이 해당 학교에 대해 강의내용과 녹음파일을 제출할 것을 요구한 사실이 드러났다.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 간 마에카와의 활동에 대해 아베 정권이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는 ‘권력남용’으로 지적되고 있는 사안이다.  
 
은폐, 조작, 위증, 부당한 개입…. 일본 매스컴에 매일같이 등장하는 아베 총리의 일련의 스캔들을 관통하고 있는 이 단어들은, 아베 내각 지지율을 급락시키며 포스트 아베 시대의 가능성을 앞당기고 있다.
2012년 12월에 두 번째 총리의 자리에 취임한 이후, 탄탄한 지지율을 바탕으로 5년 4개월 동안을 장기집권하고 있는 아베 총리다. 당초 올 9월에 열리는 자민당 당 대회에서 3회 연속 총재로 선출되어 2021년까지 정권을 유지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연이어 터지는 스캔들로 아베 정권의 지지율은 20%대까지 떨어졌으며, 일본 언론들은 다가 올 자민당 총재경선에서 새로운 ‘자민당의 얼굴’이 탄생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일본 언론들이 9월의 총재경선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로 주목하고 있는 것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인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 1981년생) 의원이다. 고이즈미 의원은 미국의 콜럼비아 대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를 받은 후 2007년 귀국하여 부친의 정책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2008년 정계 은퇴를 선언한 부친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2009년에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가나가와 11구(요코스카)에서 첫 당선되었다. 이후 단 한 번도 낙선하지 않고 지난 2017년 10월까지 연거푸 4선을 달성, 당내에서는 간사장을 보좌하는 20여명의 부 간사장의 대표역인 수석 부 간사장직을 맡고 있다.
 
젊고 수려한 용모와 관중을 사로잡는 명연설로 구름관중을 몰고 다닌다. 선거전에서는 언제나 제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다. 특히 수많은 스캔들의 악재 속에 치러진 2017년 10월의 중의원선거에의 그의 활약이 돋보였다.
 
당초 고전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자민당이 압승을 거둘 수 있었던 배경에 고이즈미 의원의 존재가 절대적이었다. 대중들에게 인기가 높은 그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수많은 매스컴이 경쟁적으로 밀착취재를 펼쳤으며, 자민당의 선거대책본부에서는 ‘전담팀’까지 가동해 고이즈미 의원의 유세일정과 연설을 총력 지원했다.
 
12일 간의 공식 선기기간 중 자민당 후보 70여명의 지역구를 뛰어다니며 지원연설을 펼친 고이즈미 의원의 활약으로 자민당은 선거에서 대승했고, 이로 인해 “자민당의 슈퍼스타”이자 “아베의 구세주”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자민당 내에서는 고이즈미 의원이 지원연설을 다녀 온 후보의 95%가 당선되었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다.
 
‘아베 1인 천하’의 자민당 내에서 아베 총리와 당에 대한 비판을 서슴치 않는 패기도 일본 언론과 국민들에게는 매력적으로 비춰지고 있다. 2017년 중의원선거 직후인 11월, “자민당의 의석수가 국민의 신뢰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선거 압승으로 한껏 고무된 아베 총리를 비판했다.
 
국회 본회의에서 여당에게 할당된 질문시간을 늘리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야당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한다”며 반대의견을 펼쳤다. 일련의 사학 스캔들에 대해서 “아베 총리 외에는 (아무도) 답변할 수 없다”며 그를 압박했으며, 재무성의 문서 조작과 관련해서는 "자민당은 공무원에게 책임을 몰아붙이는 정당이 아니다. 그 자세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고이즈미 의원은 37세의 4선 의원으로 ‘숫자가 곧 권력’을 의미하는 자민당 내에서 아직 파벌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올 9월의 총재경선에서 그가 입후보할 것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일본 언론은 없다.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은 현재까지는 아베 총리의 가장 강력한 대항마로 거론된다.(사진=뉴시스)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은 현재까지는 아베 총리의 가장 강력한 대항마로 거론된다.(사진=뉴시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자민당 중진들은 “총재 경선의 키 플레이어는 고이즈미 의원”이라고 입을 모은다. 아베 총리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을 비롯한 대항마가 경선에 입후보할 경우, 고이즈미 의원이 누구를 지지하는가에 따라서 당락이 결정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아베 총리가 두 번째 총리취임을 노리며 총재경선에 도전했던 2012년 9월의 당 대회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입후보자들 사이에서 당시 초선의원에 불과한 고이즈미 의원을 둘러싼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진 적이 있다. 자신을 둘러싼 쟁탈전으로 곤혹을 겪던 고이즈미 의원은 마지막까지 지지후보를 밝히지 않다가, 투표 종료 후에야 이시바 의원에게 투표했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일본 언론들은 고이즈미 의원이 처음부터 이시바 의원 지지를 표명했더라면 투표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이즈미 의원은 이번 경선에서 과연 누구의 손을 잡아줄 것인가?” “2021년 경선에는 고이즈미 의원이 직접 입후보할 것인가?” 이것이 현재 일본 언론들이 자민당 경선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포스트 아베의 향방은 전적으로 고이즈미 의원에게 달려있다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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