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초 평양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내정자. 북미 정상회담 실패는 남북미 3국에 커다란 시련을 예고하고 있다.(사진=뉴시스)
4월 초 평양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내정자. 북미 정상회담 실패는 남북미 3국에 커다란 시련을 예고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뉴시안=김동현 보스턴 통신원] 2018년 상반기에는 북핵 문제 주요 당사국의 정상회담 일정이 빼곡하게 잡혀있다. 3월 26일 북·중 정상회담과 4월 17일 미·일 정상회담은 이미 진행됐고,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된다.

5월 말∼6월 초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고 6월 중 시진핑 주석의 방북 일정 관련 언론 보도까지 나온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정상회담은 북·미 정상회담이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겸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이 북한 비핵화와 관련 “북·미 간 합의 내용과 뗄 수 없어서 북·미가 다룰 의제가 중심”이라고 밝힌 것처럼 북한 비핵화의 핵심 결론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도출될 것으로 보인다. 북·미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미국 내 전문가들의 시선은 우려와 기대로 양분된다.

북·미 정상회담을 조심스레 낙관하는 시선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북한 정권의 지도자 중심 정책 결정 과정을 고려할 때 정상회담만이 유일한 출구다.

스콧 스나이더 CFR 선임연구위원은 자신의 저서 <벼랑 끝 협상: 북한의 외교 전쟁>에서 최고지도자의 지시 없이는 북한과의 실무 협의가 몹시 어려움을 지적한 바 있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정상회담을 통해 큰 틀에서 담판을 짓고 실무자들이 세부 내용을 조율하는 것이 오히려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수월하다는 지적이다. 둘째, 북·미 정상회담 논의가 이어지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전쟁의 먹구름이 거두어지고 있다.

트럼프의 “화염과 분노” 발언을 비롯한 비판적 수사는 한국 국민뿐만 아니라 미국 국내에서도 불안감을 조성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존 볼턴 신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취임 전인 올해 2월 월스트리트저널에 ‘북한을 선제타격 해야 하는 합법적 이유’라는 기고문을 통해 미국 내 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외교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면서 자연스레 강경일변도의 정책에서 벗어났다는 지적이다. 셋째, 북한이 지속된 도발을 중단하고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는 것은 대북 제재가 작동한다는 반증이다. 트럼프 집권 1년 차에만 미사일을 20번이나 시험 발사하고 수소탄 시험까지 강행한 김정은이 한·미와의 협상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대북 제재가 김정은의 목줄을 조여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고 캘리포니아대 석좌교수는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한·미 지도자들이 북한 제재라는 중요한 카드를 쥐고 있으며 이는 한·미가 북한과 협상할 때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도록 한다고 밝혔다.

북·미 정상회담을 우려하는 시선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북한의 협상 전략은 과거와 몹시 흡사하며 위장평화전술일 가능성이 높다. 이성윤 플레처 스쿨 교수는 4월 11일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아시아태평양 소위원회가 개최한 ‘북한의 외교적 술수: 역사는 반복될 것인가?’ 청문회에서 집권 후 6년 만에 북·중 정상회담을 한 뒤 남·북 정상회담으로 이어가는 아버지 김정일의 각본을 따라간다고 지적했다. 둘째, 북·미 정상회담이 오히려 한국의 동맹 이탈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 (CSIS) 한국 석좌는 포린 어페어즈지 기고문에서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기술은 미국의 한국 안보 방위 공약을 약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한·미·일 집단 방위 체제를 공식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셋째,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할 만한 전문성 있는 관료들이 미국 국무부 내에 부족하다. 마크 리퍼트 前 대사의 퇴임 이후 주한미국대사의 공백이 지속되고 있으며 조셉 윤 前 대북정책수석대표도 국무부에서 사퇴했다.

1994년 당시 북한과의 협상에 직접 참여했던 게리 세모어 前 오바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NPR 기고문에서 신임 대북정책수석대표를 빠른 시일 내에 임명하여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넷째, 미국과 북한의 인식과 몰인식 (Perception and Misperception)이 북·미 정상회담의 실패로 이어져 전쟁을 야기할 수 있다.

로버트 저비스 콜럼비아대 교수는 포린 어페어즈지 기고문에서 미국이 인식하는 비핵화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이지만 북한이 인식하는 비핵화 논의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상태에서의 북·미 군비 축소 회담일 수 있다며 인식과 몰인식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2018년 다가올 북·미 합의는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의 뼈아픈 실패를 반복하게 된다면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 이에 따른 미국의 동아시아 확장 억지력 약화와 한·일 잠재적 핵무장으로 인한 국제 비확산 체제의 순차적인 몰락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취임 후 외교정책의 우선순위에 놓여있는 북핵 문제를 당면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두 어깨가 무겁다. 북핵 문제 연구에 수십 년 학자의 길을 걸어온 이들의 조언에 한·미 정책 결정자들이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저작권자 © 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