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의 대표적인 도시재생 프티트 생튀르를 평화롭게 산책하는 파리 시민들의 모습(사진=위키디피아)
프랑스 파리의 대표적인 도시재생 프티트 생튀르를 평화롭게 산책하는 파리 시민들의 모습(사진=belairsud.blogspirit.com)

[뉴시안 르포르타쥬=홍소라 파리 통신원] 꿈 꾸게 하는 도시, 파리! 언제부터인지 왜인지도 모르지만 ‘파리’ 하면 어쩐지 눈앞에 황홀경이 펼쳐진다. 그곳 파리에 가기만 하면 드가·고갱·고흐·피카소·마네·모네·르느아르·달리와 함께 몽마르트 언덕에서 어울릴 것만 같고, 에펠탑에서 빛의 도시를 마음껏 만끽할 수 있을 것 같다.

별 박힌 하늘 아래 세느 강변에서의 낭만적인 밤 산책은 어떤가? 햇살 내리쬐는 나른한 오후 뤽상부르그 공원에서의 낮잠은 또 얼마나 달콤할 것인가 ?

하지만 꿈만 꾸며 살 수는 없는 법. 여행자가 아닌 이곳 시민에게 있어 파리는 생활이다. 그래서 파리는 여전히 꿈을 꾸게 하고, 가끔씩은 가혹한 현실을 맞닥뜨리게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살 때와는 조금 다른 현실이다. 결국 파리 시민이자 이방인인 나는 여전히 한 발을 파리의 환상에, 나머지 한 발은 타지 생활이라는 실제에 두고 두 세계 사이를 방황하고 있다.

파리에 살며 가장 크게 체감하는 것 중 하나는 녹지가 참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5년 서울의 녹지는 총 2727ha로 도시 총 면적의 4.5%에 해당한다. 이후 서울역 고가도로를 공원화하는 ‘서울로 7017’ 등 여러 사업들을 통하여 녹지 면적을 늘리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전체 면적 20% 남짓이 공원과 정원인 파리에 비하면 아직은 새발의 피랄까.

요즘 같이 완연한 봄에는 도시 곳곳에 마련된 크고 작은 공원에 잠시 앉아 꽃과 나무 사이에 둘러 싸여 있다 보면 잠시나마 노곤한 현실을 잊게 된다. 여기에 커피 한 잔 정도 손에 쥐어져 있다면 천국이 따로 없다.

서울 사람들에 비해 파리지앵들이 조금 더 여유롭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데에는, 물론 노동 시간과 휴일에 대한 법제 등 사회 시스템이 가장 큰 요인이다. 아울러 조금만 걸으면 곳곳에 앉아 쉬며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등장하는 도시 환경의 영향도 어지간히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파리의 녹색 공간 중 하나인 ‘프티트 생튀르’를 소개할까 한다.

Petite Ceinture. 프랑스어로 ‘작은 띠’라는 뜻이다. 1852년에 파리 경계를 따라 설치된 총 32km 가량의 왕복 철도 노선이다. 파리 시내의 기차역들을 연결 짓는 파리의 주요 철도 노선이었던 프티트 생튀르. 1889년에는 한 시간에 20여 대의 기차가 운영될 만큼 파리 시민들의 발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1900년대 초 지하철 6호선이 개통되면서 프티트 생튀르 이용 승객 수가 급격히 감소한 이후 쇠락을 길을 걷게 된다. 지금은 북쪽 일부 구역만을 남겨 두고 폐쇄되었다.

1900년대 초반 프티트 생튀르 노선 위를 달렸던 증기기관 열차. 프티트 생튀르는 1852년 건설된 총 32km 가량의 왕복 철도 노선이다.
1900년대 초반 프티트 생튀르 노선 위를 달렸던 증기기관 열차.(사진=위키피디아)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도. 사람의 발길도 끊겼다. 가끔 갈 곳 없는 부랑자나 집시들이 들어가 보금자리를 만들었지만 곧 경찰에 의해 끌려 나왔다. 파리를 둘러 싼 작은 띠는 자연스럽게 동식물의 천국으로 탈바꿈했다.

파리의 동쪽과 서쪽에 있는 방센느 숲과 불로뉴 숲을 잇는 통로가 되어, 동물들은 로드킬의 위험 없이 프티트 생튀르를 통하여 두 숲을 오고 갔다. 즉 파리의 생물 다양성을 증진시키고 녹지 공간을 확보하는 방편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렇게 방치해 둔 것이나 다름없던 프티트 생튀르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은 2006년이다. 그리고 이 도시계획 프로젝트는 파리 시장이 바뀐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크게 산책로 조성, 도심 속 텃밭, 폐 역사 활용의 세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우선 산책로. 철도 근처에 산책로를 조성하여 시민들이 보존된 환경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파리시는 이 산책로의 우선순위를 사람이 아니라 자연에 두었다. 인간의 접근으로 인한 환경의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개방 시간을 제한하고, 조명도 설치하지 않은 것. 또한 원활한 통행을 위해 별도의 공사를 하는 대신 자전거 등 교통수단의 접근을 일체 금지하고 도보만 가능하게 해 두었다.

현재는 파리 12구·13구·15구·16구에서 프티트 생튀르를 산책할 수 있다. 대표적인 15구와 16구의 산책로를 소개할까 한다. 우선2007년 문을 연 16구의 상티에 나튀르 (Sentier nature). ‘자연의 오솔길’이라는 뜻이다. 총 1.2km밖에 되지 않아 가볍게 산보하기에 최적이다. 다만 이곳은 이전에 기차가 다녔음을 상상하기는 힘들다.

우선 철로가 제거되었고, 그 자리를 이미 사람 및 동물들의 발걸음과 식물이 가득 메워 버렸기 때문이다. 다만 지면보다 산책로가 훨씬 낮은 곳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과, 산책로 끝에 이전의 역사를 리모델링한 고급 식당이 운영되고 있다는 것으로 이전 모습을 가늠해 볼 뿐이다. 

2014년 5월 한 등산 동호회가 16구 상티에 나튀르를 방문해 탐방하는 모습.(사진제공=홍소라)
2014년 5월 한 등산 동호회가 16구 상티에 나튀르를 방문해 탐방하는 모습.(Club ACLA Rando 홈페이지)

15구의 산책로는 16구보다 조금 더 공을 들여 만들었다고 할까? 16구의 산책로가 자연으로 뒤덮였다면, 15구의 프티트 생튀르에는 철로와 이전 역사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16구가 지면보다 아래에 위치해 있다면, 15구는 주변 지대에 비해 약 8m 가량 높은 곳에 있어 아래로 지나가는 사람들과 차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한 여기에는 휠체어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곳곳에 엘리베이터와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다. 보다 더 인간 친화적이다. 그래서인지 15구의 산책로가 16구의 상티에 나튀르보다 조금 더 인기가 좋다고 한다.

길을 걷다 보면, 바로 옆에 지어진 건물들을 마주치게 되는데, 파리의 건물들이 으레 그러하듯 최신의 것이 아니라 세월의 흔적을 잔뜩 안고 있다. 어쩐지 격세지감을 느낀다. 이전에 기차가 다녔을 시절, 저곳에 사는 사람들은 매일 수차례의 소음과 먼지를 감내해야 했으리라.

파리15구 프티트 생튀르 산책로(사진제공=홍소라)
파리15구 프티트 생튀르 산책로.(사진=파리시청 홈페이지)

그 때 누가 꿈이라도 꾸었을까? 100년 후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 보다 신선한 공기와 보다 고요한 밤을 누리며 살 것이라는 사실을.

만약 조금 더 특별한 파리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파리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프티트 생튀르 산책로에 가보는 것이 어떨까?

근처 빵집에서 샌드위치를 사들고 프티트 생튀르에 가서 코끝을 간지럽히는 산들바람을 맞으며 점심을 먹고, 천천히 산책을 즐기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을 추천한다. 다음 기사에서 프티트 생튀르 프로젝트의 다른 모습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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