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사진=뉴시스)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사진=뉴시스)

[뉴시안=한경심 편집위원] 시쳇말에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연일 공개되는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갑질’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분개하기에 앞서 충격과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인간에겐 야비하고 저속한 면도 있고, 고매한 일면도 있다.

그들의 ‘갑질’ 행태는 인간이 어느 정도로 저질이 될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니 부끄럽다 못해 끔찍하다. 특권층이 가져야 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커녕 평범한 소시민도 그 정도로 밑바닥을 치지는 않는다. 그들이 가진 부와 누리는 기득권을 고려하면 그 추함은 가히 극적이다. 

딴은 안됐기도 하다. 악에 받쳐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어미와 딸의 목소리는 그악하기 짝이 없다. 그런 거친 목소리는 험한 삶에 지쳐 분노와 오기만 남았을 때 나오는 것 아닌가. 그들의 삶이 정말 그렇게나 신산하고 억울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들의 고통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고통을 주는 자 없이 그들 스스로 고통스럽게 살아왔을지도 모르겠다. 타인에 대한 공감이나 부드러운 마음을 갖지 못한 사람은 메마른 가슴으로 스스로 지옥을 만들어내니. 어쨌든 재벌 총수 일가의 끔찍한 민낯을 본 온 국민은 돈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절감하게 됐다.

돈 많고 권력 있으면 갑질이 통하는 사회
 
모녀의 말투와 패악을 부리는 행태가 하도 비슷하니 이제 그들의 행패는 가족력이나 정신적 문제로 보인다는 의견도 나온다. 모든 잔혹함은 나약함에서 비롯한다는 말도 있으니 그들에게 정신적인 결핍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재벌가에서 왕왕 보이는 이런 비상식적인 행태는 단순히 그들 개인적인 문제로만 보이지 않는다.

다른 나라의 기업가문에서는 보기 힘든 이런 저질스런 행패 뒤에는 틀림없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병통이 도사리고 있을 터다. 흔히 우리 사회의 위계질서와 가부장적 문화를 지적하기도 한다. 아무리 그래도 이들이 부끄러움도 잊은 채 그런 패악을 스스럼없이 부리게 된 데는 그런 이유가 다는 아닐 것이다. 위계질서와 가부장적 문화에는 장단점이 있는데 어떻게 단점만을 그렇게 표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이 충격을 주는 때이긴 하지만, 댓글을 읽는 재미를 포기할 수 없어 정치 기사 댓글은 물론이고 웹툰의 댓글, 그리고 드라마의 시청자 의견란을 훑어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정치 기사 댓글은 상투적이고 원색적인 표현이 대부분이지만 드라마나 웹툰 댓글은 꽤 다양하고 솔직한 반응이 올라오는데, 많은 사람이 소위 성공한 캐릭터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주인공이든 조연이든 상관없이, 권모술수든 비열한 방법을 쓰든 자신의 욕망을 실현해나가는 인물에 박수를 보낸다는 사실이다.

본래 드라마나 허구의 이야기에는 보통사람의 욕망과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기능이 있다. 독자나 시청자는 정의를 실현하는 영웅에도 매혹되지만, 순정을 지키는 사랑에도 환호를 보내게 된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캐릭터보다 어떤 술수를 써서라도 욕망을 이루고 자신의 기득권을 지켜내는 인물, 특히 그 캐릭터가 여성일 때 화려한 외모와 카리스마까지 겸비해서 상대를 제압할 때 흔히 ‘사이다’라고 추켜세우는 반응이 많다. 그리고 아무리 판타지라고 하지만 주인공 중 한두 명은 재벌 출신이다. 

재벌 출신이라 특별한 권리를 당연하게 누리면서 화려한 스펙과 그보다 더 화려한 의상과 치장으로 못난 사람을 한방에 보내는 인물에 통쾌함을 느끼고 환호하는 풍토! 우리 속에는 ‘나도 갑이 되었으면’ 하는 욕망이 있나보다.

갑은 오행 중에 큰 나무를 이르는 말이고 을은 작은 나무를 일컫는다. 갑목은 양목(陽木)으로 화려하게 드러나는 나무고, 을목은 음목(陰木)으로 작은 나무나 연약한 풀이다. 또 갑목은 나무에서 큰 줄기에 해당하고, 을목은 가지와 잎에 해당한다.

그래서 나무의 성장은 갑의 일이고, 완성은 을의 일이다. 과학자들은 지구가 멸망하여 피폐해졌을 때 지구를 되살리는 존재는 풀이라고 했다. 새싹이 돋는 봄날 바깥으로 나가보라. 이 세상을 완성시키는 존재는 을목임을 확인할 수 있다.

참, 갑목이든 을목이든 나무가 상징하는 뜻은 ‘인자함’이라는 사실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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