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양지열 편집 자문위원/변호사] 한 잔의 물컵에서 시작한 태풍이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일가를 휩쓸고 있다. 터져 나오는 증언들은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이다. 내부고발자들이 시작한 익명의 대화방에는 참가자들이 천명을 넘어 섰다. 녹음파일과 영상, 디지털 증거들은 국민의 눈과 귀에 의심의 여지없이 유죄를 선고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 시점에서 문득 조현민 전 전무는 어떤 항변이나 변명을 할 수 있을지 고약한 물음표가 떠오른다. 어쩌면 그녀는 이런 얘기들을 하지 않을까? 가정이지만 그렇다면 어떤 해결책이 있을지까지 한 번 씁쓸한 생각을 해본다.
 
수성과 혁신
 
물컵 한 번 던졌다고 온 나라가 이런 소동을 벌여야 할까? 도대체 왜들 이러는지 억울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녀는 평소에도 한이 참 많은 사람으로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녹음된 목소리를 들었다.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데!”라는 절규였다. 밑바닥부터 긁어 올라온 듯한, 도무지 건강한 정신에서 나오는 것으로 들리지 않는, 절절이 베어 나오는 맺힌 한이었다.
 
어쩌면 무거운 스트레스 때문 아닐까? 올해 우리 나이로 고작 서른 여섯이다. 스물 다섯이던 11년전 대한항공 과장으로 시작해 고작 3년만에 대한항공 상무 자리에 올랐다. 20대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항공사 임원이 된 것이다. 곧이어 한진관광 대표이사, 칼호텔네트워크 대표이사까지 겸해서 맡는다.
 
얼마나 무거운 책임이겠는가. 한창 인생을 즐길 나이 아닌가. 그녀도 그걸 잘 아는 듯하다. SNS에 올린 글을 보면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 남들 못타는 외제차 타는 걸 자랑스러워했다. 귀하디 귀하게 자랐을테니 쉬운 일도 하기 싫을텐데 그 어려운 일들을 맡겨 놨으니. 능력에 넘치는 일들 아닐까.
 
그런 그녀로서는 어렵사리 돈벌이를 찾았는데 이에 대해서도 비난만 듣고 있다. 건물 모퉁이 남는 공간 막아 커피숍을 차렸다. 명동 목이 좋은 곳의 특혜라고 질타다. 재단에서 운영하는 시설에 커피숍을 열었더니, 뜻밖에 사회적 기업이 들어와 1천원에 커피를 파는 것 아닌가. 장사에 방해가 된다고 외부 이용객들을 이용하지 말라고 막았다.

회사 일은 어떻게 했을까? 대한항공 내부로 눈을 돌려 봤다. 기내 면세품 판매를 하면 승무원들이 아주 조금씩 수당을 받고 있었다. 월급도 많이 받는 그들에겐 푼돈일 것이었다. 차라리 한 사람이 긁어 모아 몫돈을 만드는 편이 나을 듯 해서 챙기기로 했다. 그랬다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를 한단다. 2016년에도 기내면세품 광고 업무를 몰아줬다고 14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 했는데.
 
항공사는 운송업이자 서비스업이다. 서비스를 받고만 살아 왔는데, 거꾸로 해주는 일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잘못이라고 하지 않을까? 첨단산업같은 새로운 분야는 어차피 알 수도 없을테니 말이다. 그녀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했을 뿐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전경련에서는 '수성과 혁신'을 이뤘다며 강사로 초빙까지 했는데, 물컵 때문에 무산됐다. 그녀의 눈과 세상의 눈이 바라보는 시각이 참 다른 것이다.
 
가족도 힘들다
 
어머니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은 대한항공이나 계열사들과 아무런 관련도 없다. 그런데도 남편, 자녀들 돌보느라 집안 일인양 쫓아 다니며 목소리를 높였다. 호텔엔 해외에 직접 다니며 사모은 물건들로 꾸며 놓기까지 했는데. 그런 걸 망가뜨리니 화가 나지 않을 사람 있겠나. 가족처럼 편하게 대한다는 것이 욕설도 조금 섞였을 뿐이다. 친한 사이일 수록 가끔 욕도 주고 받지 않느냐. 혹시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일가족이 모두 나서 회사를 돌보니 얼마나 바쁠지는 새삼 강조할 필요 없을 것이다. 옷가지나 가구, 인테리어 소품, 소시지, 개 사료, 십자수... 다 그저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들이다. 해외 지사를 통해 들여왔다. 직원할인으로 비행기표 값도 싸니 해외에 직접 가서 가져올 수도 있었다. 일에 시간을 쓰기 위해 배달해 왔는데 밀수 어쩌고라니. 회사에서도 그런 사정을 뻔히 알기에 가족 이름으로 들여 오지 말라고 주의사항을 붙인 것 뿐인데, 조직적이라니.
 
사실 언니 조현아가 고초를 겪을 때도 비슷했다. '땅콩 회항'이라니 무지의 극치다. 땅콩이 아니라 마카다미아였고, 항로를 바꾼 것은 아니라고 대법원이 인정해줬다. 조현민은 복수하겠다고 다짐했건만 마찬가지로 어려움만 겪고 있다.

집안이 얼마나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는지는 숙모인 전 한진해운 회장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결혼하고 20년 동안 내조에만 전념했는데도 남편이 별세하자 경영을 맡지 않았던가. 해운회사로는 대한민국 1위, 세계 4위의 기업이었다. 10년만에 망해버리긴 했지만 '가정주부'였으니까.
 
자연인의 자유
 
자 그럼 해결책은 있을까? 이 모든 일들이 아버지인 조양호 회장이 너무 힘겨운 책임을 지고 있어서이다. 사실 대한항공과 큰 연관도 없다. 조 회장만 주식을 고작 0.01% 가지고 있을 뿐이다. 한진칼 지분을 조금 가지고 있는데, 그 한진칼이 대한항공의 대주주이다. 3천억으로 3조원짜리 회사를 지배하는 순환출자 구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그런 순환출자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이후 끊겨 나가고 있다는 뉴스가 있다. 소액주주들이 주주권을 행사해 경영진 교체를 시도한다는 소식도 있다. 이 기회에 무거운 짐을 던질 수 있다면 문제는 끝일 수 있다. 자연인이라면 물컵 좀 던졌다고 뉴스에 나올 일도 없을테니까.
 
3천억원대라는 지분 정리하면 경영 따위 하지 않아도 평생 놀고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얼굴 팔려 피곤하니 남태평양 어느 섬이라도 사서 왕족처럼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자유롭게. 물론 자유라는 게 남의 코 앞까지 주먹을 휘두를 수 있는 것이라는 법언이 있다. 남에게 상처만 주지 않으면 된다는 뜻이다. 남태평양 사람들은 어차피 말도 안통하니 욕설 정도야 실컷 해도 상관 없겠지. 그녀는 이런 해결책을 어떻게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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