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의 특성을 살린 일본의 '북두신권' 전자만화책.(사진출처:아사히신문 홈페이지 캡처)
종이책의 특성을 살린 일본의 '북두신권' 전자만화책.(사진출처:아사히신문 홈페이지 캡처)

 

[뉴시안=김경철 도쿄 통신원] ‘만화왕국’ 일본에서 저작권침해 사이트인 ‘망가무라’가 커다란 사회적 파장을 낳고 있다.

‘망가무라(漫画村)’는 만화뿐 아니라 잡지, 소설, 사진집 등을 복제하여 온라인에서 무단으로 배포하는 해적판 사이트다.

일본정부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운영자가 직접 불법 콘텐츠를 업로드하지 않고, 인터넷에 올라온 불법 콘텐츠 파일을 수집해서 개제하며, 미국 등 3개국의 서버를 경유하여 사이트 관련정보를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다. 

2016년에 개설된 이 사이트는 회원가입 없이 누구나 열람이 가능하며, ‘완전 무료’라는 점으로 인해 일본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SNS를 중심으로 입소문이 돌면서 큰 인기를 누렸다.

올 1월에는 세계적인 웹사이트 분석기관인 시뮬러웹가 망가무라의 월간이용자수가 9,892만명이라고 발표하면서 크게 유명세를 탔다.

이에 일본만화가협회는 홈페이지에 “해적판 사이트에 대한 견해”라는 성명을 발표, 망가무라를 비롯한 불법사이트는 “창작의 노력에 참여하지 않고 이익을 갈취하고 있다”며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일본의 다양한 문화가 활기를 잃고 붕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망가무라 운영진은 “일본과 국교가 없는 제 3국에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일본 저작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북한방송을 일본 방송국이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고 방송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설명이다.

더구나 “만화가들의 공짜선전 덕분에 2월 이용자수가 1.8배나 늘었다” “서버유지를 위해 월 500엔을 받는 유료사이트를 신설할 방침”등의 도발적인 코멘트를 개제, 사이트를 둘러싼 사회적인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일본의 콘텐츠해외유통촉진기구(CODA)는 망가무라가 일본 출판계에 끼친 손실이 3000억엔(약 3조원)에 이른다고 추정했으며, 일본 언론들은 망가무라가 불법적으로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광고수입 등으로 연간 5억~6억엔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막대한 손실에도 불구하고 사이트 운영자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던 출판계와 만화가 등, 관계자들은 정부의 대응을 강력 촉구했다,   

결국 일본정부는 4월 2일에 출판사 대표들과 긴급회동을 갖고, 13일에 “인터넷상의 해적사이트에 대한 긴급대책”을 발표했다.

‘망가무라’ ‘애니튜브‘ ’미오미오‘ 등의 만화와 애니메이션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에 대해서 통신 사업자(ISP)가 자율적으로 ’사이트블로킹‘을 시행하라는 권고안이었다.
사이트블로킹이란, 통신 사업자의 판단에 따라 특정 사이트 연결을 강제적으로 차단하는 방식인데, 여기에는 통신 사업자가 이용자의 사이트 접근 정보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 전제가 된다.

즉, 일본 헌법에 명시된 ’통신의 비밀‘을 침해할 수 있는 사안으로 지금까지 일본에서 사이트블로킹은 아동포르노 사이트에 한해 적용되어 왔다.  

’사이트블로킹‘을 요청한 정부방침에 대해 법조계와 시민단체에서는 프라이버시 등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으며, 사이트블로킹을 실시할 것을 밝힌 NTT그룹을 시민단체가 도쿄재판소에 제소하는 소동도 벌어졌다.

출판계에서는 일본 저작권법의 한계점을 지적하면서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인터넷상의 저작권 침해사례를 규정한 2009년의 저작권법 개정안에 따르면, 불법적인 다운로드로 처벌받을 수 있는 대상은 디지털 처리된 영상과 음악뿐이다.

즉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 대한 불법다운로드는 처벌을 받지만, 만화나 소설 등의 출판물은 처벌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해적판 사이트를 이용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일본 최대 출판사인 코단샤는 망가무라에 대한 형사고발과 함께, 저작권법 개정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여간다는 계획을 언론을 통해 밝혔다.  

해적판 사이트가 범람하는 근본적인 책임은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준비가 미비한 출판업계에 있다는 지적도 있다.

디지털 만화가 종이로 된 만화책보다 더 많이 팔리는 시대에 접어들었음에도 일본의 출판계는 디지털 플랫폼 구축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오래전에 발간된 구작 만화의 경우,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구입이 불가능하여 결국은 불법인줄 알면서도 해적판 사이트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출판사별로 마련된 디지털 만화 플랫폼을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4월 17일부터 ‘망가무라’는 접속불능상태가 계속되고 있어 사이트가 폐쇄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사회에서 논란이 멈추지 않는 것은, 날로 쇠락하고 있는 만화산업을 지키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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