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 대통령.
노태우 전 대통령.

[뉴시안=한기홍 편집국장] 한국의 보수정치 세력이 큰 위기에 빠졌다. 임박한 지방선거에서의 패배를 예감해서가 아니다.

북핵폐기와 남북 평화체제 구축이란 미증유의 사태를 맞아 어찌할 줄 모르는 정치철학적 파탄을 맞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의 보수는 분단 상황을 이용해 자신의 세력을 키웠다. 정부 수립 후 10년 정도를 제외하고 보수정치 세력은 정권을 유지하고 기득권을 키우는 데 성공했다.

한국 우파의 정치적 사고 안에는 민족이란 개념이 박약했다. 민족문제 해결에 대한 준비가 없었고, 문제 해결 능력이 부족했으며, 더 나아가 분단상황의 고착을 향유했고 그 체제에 기생했다.

여기서 우리는 군인 출신 대통령 노태우를 다시 보게 된다. 그는 재임 중 좌파 운동권으로부터 몰매를 맞았다. 임기 내내 ‘군부 독재정권의 수장’으로 타도의 대상이 되었다.

강경 보수세력으로부터는 ‘물태우’란 별명을 들으며 조롱당했다. 그러나 적어도 그는 민족문제에 관한 한 대단히 선진적인 인식을 성취했다. 또한 그 인식을 실천했다.     

노태우의 정치적 트레이드마크는 ‘북방정책’이다.

그는 1990년 9월 30일 한·소 국교를 수립을 주도했고, 그해 12월 13일에는 정원식 국무총리와 연형묵 北정무원 총리가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보수세력의 민족통합 비전을 제시해야

이 합의서의 내용은 지금 읽어도 너무나 선진적이다. 지금 보수세력의 정치리더는 이 합의서를 읽으며 노태우 북방정책의 함의, 남북관계 개선과 민족단결의 일면 진실했던 의지를 배워야 한다. 

그 합의서 제1조는 남과 북이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했고, 제2조는 남과 북은 상대방의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했다.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한 비방·중상을 하지 않으며(제3조), 남과 북은 상대방을 파괴·전복하려는 일체 행위를 하지 않는다(제4조)고 했다.

민족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왕래와 접촉을 실현하며(제17조) 끊어진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해로·항로를 개설한다(제19조)고도 했다. ‘군부 독재자’노태우가 이뤄낸 남과 북의 아름다운 공존의 형식이다.

이 합의서의 형식은 내용을 채우지 못한 채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1993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한 이후 남북 관계가 경색되었기 때문이다.

그같은 경색 국면을 돌파할 자주적 역량이 부족했다는 것이 노태우 정권의 한계였다.  

보수정치세력은 지금이라도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으로 돌아가 스러진 자신들의 민족통합의 철학을 가다듬어야 한다. 

좀 심하게 말해서 현재 보수정치의 리더들은 7.4 공동성명 때의 박정희, 남북기본합의서 당시의 노태우를 절반도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오늘의 보수 리더, 박력과 포부로 정명(正名) 되찾아야

예컨대 유승민과 같은 스마트한 보수 정치인마저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는 구닥다리 이분법으로 정치철학의 파탄을 드러냈다. 그는 아마도 북핵 문제의 해결에는 수십년이 소요될 것으로 확신했을 것이다.

민족 통합의 장기 전략과 상상력을 계발하지 못한 결과가 오늘 유승민의 왜소한  정치적 실존을 웅변하고 있다. 

그는 박근혜와 싸우던 시절에도 보수의 아성 대구 경북의 민심을 끊임 없이 의식했다. 그게 '안보 보수주의자' 유승민의 한계였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래서 오늘의 보수 리더들은 대선배 노태우가 성취한 대담한 구상, '남북기본합의서'를 다시 꺼내 들여다봐야 한다. 그런 정도의 박력과 포부를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지배 엘리트의 정명(正名)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보수정치세력은 지리멸렬의 단계를 지나 붕괴나 궤멸의 수준으로 추락하고 있다.

그럼에도 보수가 전열을 정비해 문재인 정권보다 더 나은 민족통합의 길과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면!

지금 불가능해 보이는 보수 집권의 길은 언젠가 홀연히 열리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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