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란 여성이 8일 반미 벽화가 그려진 테헤란의 전 미국 대사관 건물 앞을 애완견을 데리고 지나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 이란 여성이 8일 반미 벽화가 그려진 테헤란의 전 미국 대사관 건물 앞을 애완견을 데리고 지나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시안 미국정치 산책=김동현 보스턴 통신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월 8일 이란 핵 협정 탈퇴를 공식 발표했다.

미 재무부는 5월 15일 이란 중앙은행 총재를 독자 제재 명단에 올렸다.
 
이란 핵 협정 타결 3년만에 다자간 협정이 무너지는 모양새다.
 
2015년 4월ㅏ스이스 로잔에서 이란과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중국·러시아·프랑스·영국 그리고 독일이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에 합의했다.
 
이란은 자국 영토 내 모든 핵 활동 관련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일반적인 IAEA 사찰은 민간 원자력 부분에 한정되며 군사 시설은 사찰이 불가하다.
 
그러나 JCPOA는 군사 시설 사찰에까지 합의해 역사상 가장 포괄적인 핵 사찰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JCPOA 합의 당시 미국 내 공화당의 반발은 만만치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가능성이 낮은 미 의회 조약 비준 대신 행정명령(Executive Order)을 택했다.
 
안전한 길을 택한 것이다. 대이란 독자제재도 행정명령을 통해 완화했다.
 
대통령 행정명령은 차기 대통령에 의해 취소될 가능성이 있었지만 당시 공화당의 반발이 더 큰 장애물이었다.
 
2016년 미국 대선 캠페인 당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JCPOA가 공정하지 않은 협정이라고 여러 차례 지적했다.
 
미국 대통령은 JCPOA에 의거 매 90일 마다 이란이 협정을 잘 지키고 있는지를 인증(Certification)해야 한다.
 
트럼프는 임기 초반 캠페인 당시의 발언과는 다르게 JCPOA를 인증했으나 2017년 10월과 2018년 1월 JCPOA를 불인증했다.
 
2018년 1월, 트럼프는 120일 내 JCPOA를 다음과 같이 개선하지 않는다면 협정에서 탈퇴하겠다고 밝혔다.
 
▲이란이 모든 핵 시설에 대한 즉각적 조사를 허용하도록 요구할 것
▲이란이 핵무기 개발에 근접할 수 없도록 보장할 것
▲10년 제한 같은 일몰조항을 없애고 이란이 핵 합의를 위반하면 이를 영구적으로 제재할 수 있도록 할 것
▲탄도 미사일 개발이 핵 개발과 관련이 있다며 미사일 프로그램 역시 제재 대상이 된다는 점을 명시할 것 등이다.
 
미국의 JCPOA 탈퇴는 세 가지 함의를 내포한다.
 
첫째, 국회 비준 없는 양자 혹은 다자 간 합의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오바마 대통령이 당시에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인 대통령 행정명령을 택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JCPOA 탈퇴 또한 의회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4·27 남북 정상회담에 따른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을 추진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제안은 JCPOA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구상이었다.
 
다만 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 야당의 합의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국회 비준이 쉽지 않아 보인다.
 
통일부가 판문점 선언 정신 위배를 이유로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한 것이 비판을 받는 이유다.
 
둘째, JCPOA 탈퇴가 다가올 북한과의 협상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의 JCPOA 탈퇴가 북한에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란과 북한은 핵 개발 수준은 천양지차다.
 
이란은 핵무기를 성공적으로 개발하지 못한 상태에서 JCPOA에 합의했지만 북한은 이미 6차례의 핵실험과 수십 개의 핵무기를 보유한 상태다.
 
북한은 JCPOA와 같은 이란식 모델이 사실상 핵보유국인 자신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
셋째, JCPOA 탈퇴로 미국은 북한와 이란의 핵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20년 넘게 해결하지 못한 북핵 문제와 세계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중동의 이란 핵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책무를 동시에 떠안기로 자임한 것이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과 외교력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이란 핵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는 몹시 어려울 것이다.
 
즉 북한 혹은 이란 중 한 국가의 핵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핵무기의 비확산이라는 미국의 핵심 이익을 지키기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JCPOA 탈퇴가 다가올 북한과의 핵 협상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해석과는 달리 미국과 한국 정부는 더 큰 부담을 떠안게 됐다.
 
미국의 JCPOA 탈퇴는 트럼프 정부의 국익 계산에 의한 결정이다.
 
북한과의 핵 협상도 고려되었겠지만 JCPOA는 이란과의 협정이지 북한과 연계된 협정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미국의 JCPOA 탈퇴를 기뻐하기에는 한·미 정부의 어깨가 너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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