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7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출경을 위해 경기도 파주시 남북출입사무소로 들어서고 있다.(사진=뉴시스)
지난 2월 27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출경을 위해 경기도 파주시 남북출입사무소로 들어서고 있다.(사진=뉴시스)

[뉴시안=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월 24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의 형태로 6·12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취소 방침을 전격적으로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개서한에서 먼저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기로 예정돼 있던 회담에 관련하여 당신이 시간과 인내, 노력을 보여준 데 대해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당신들의 가장 최근 발언에 나타난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 적대감에 기반하여, 지금 시점에서 오랫동안 계획돼온 이 회담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느낀다”고 지적하면서 싱가포르 정상회담 취소 방침을 전달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가장 중요한 회담과 관련해 마음을 바꾸게 된다면 부디 주저 말고 내게 전화하거나 편지해달라”라고 밝혀 김정은 위원장의 적극적인 대미 대화 의지가 확인된다면 미북정상회담을 재추진할 의사가 있다는 점도 분명히 밝혔다.

이에 대해 북한은 이례적으로 매우 신속하게 25일 오전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명의의 담화를 발표해 김정은 위원장의 북미정상회담 계속 추진 의사를 전달했다.

북한은 김계관 제1부상이 ‘위임에 따라’ 담화를 발표했다고 언급했는데 이는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김계관 제1부상이 김 위원장의 입장을 담화 형태로 발표한 것임을 의미한다.

김계관 제1부상은 담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정상회담 취소 결정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한 ‘트럼프 방식’에 대해 북한이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만나서 첫술에 배가 부를 리는 없겠지만 한가지씩이라도 단계별로 해결해나간다면 지금보다 관계가 좋아지면 좋아졌지 더 나빠지기야 하겠는가”라고 지적하면서 북미정상회담을 통한 신뢰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제1부상은 마지막으로 “우리는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 않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음을 미국측에 다시금 밝힌다”고 강조함으로써 북미정상회담 계속 추진 의사를 분명하게 천명했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한 날에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정상회담 취소 결정을 발표한 것에 대해 북한이 강렬하게 반발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김 위원장은 이 같은 예상을 깨고 김계관 제1부상을 통해 정상회담 계속 추진 의사를 밝힌 것이다.

김 위원장의 이 같은 유연한 대응으로 인해 북미정상회담 개최가 재추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의 북미 대화 의지를 재확인한 상황에서 6·12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개최를 재추진하는 것이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기 어렵다면 다른 날짜에 싱가포르나 다른 장소에서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재추진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만약 정상회담이 개최되지 못하고 양국이 다시 적대관계로 회귀한다면 북한은 생존과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다시 핵과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매달릴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회담 재개를 시사한 것은 매우 중대한 반전이다..

그는 2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은 북한과 대화하고 있다”며 “모두가 게임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상회담 개최 여부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무엇이 일어날지 지켜보자. 12일에 회담할 수도 있다”고 답했다.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진행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취소 결정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매우 유연한 대응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런데 김 위원장이 김계관 제1부상의 담화 형태로 북미정상회담 계속 추진 의사를 밝히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북한에 두 차례나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특사로 파견해 미북정상회담 의제에 대해 김 위원장과 진지하게 논의했다.

따라서 북한도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김영철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등으로 구성된 고위급 대표단을 미국에 파견해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북미정상회담 의제에 대해 미국과 보다 긴밀하게 조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6·12 북미정상회담 취소 결정을 내리는데 ‘조미수뇌회담 재고려’를 최고지도부에 제기할 수 있다는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담화뿐만 아니라 최근 북한의 대남 강경 태도도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은 지난 5월 15일 남북고위급회담 개최를 제안하고서15시간도 지나지 않아 한미 공군의 연합공중훈련인 맥스 선더(Max Thunder) 훈련을 비난하며 16일로 예정됐던 남북고위급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그리고 5월 17일에는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기자의 질문에 대한 대답 형식으로 “북남고위급회담을 중지시킨 엄중한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남조선의 현 ‘정권’과 다시 마주앉는 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초강경 입장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추진하기로 결정한 데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 노력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다.

그런데 북한이 한국정부와의 고위급회담 개최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문재인 정부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미국은 과연 그런 북한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만약 북한이 미국과 진정으로 관계개선을 원한다면 한국정부와 먼저 관계를 개선해야 할 것이다.

이미 남북한은 지난 3월초 한국 특별사절단의 방북을 통해 남북 정상 간 핫라인 설치와 남북정상회담 이전 첫 통화에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남북 정상 간 통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해서 북미정상회담 계속 추진 의사를 직접 전달하는 것은 북미 정상 간 핫라인이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그러므로 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직접 통화를 통해 자신의 북미정상회담 계속 추진 의사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해줄 것을 요청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김계관 제1부상 담화를 통해 북미정상회담 계속 추진 의사를 밝혔으므로 한국정부도 북미정상회담의 성사를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난 4월 27일 판문점에서 전통의장대와 행렬하던 중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청와대에 오시면 훨씬 좋은 장면을 보여드릴 수 있다”고 말하자 김 위원장은 “대통령께서 초청해주시면 언제라도 청와대에 가겠다”고 답했다.

그러므로 문재인 대통령은 가까운 시일 내에 (가능하면 이번 주말에라도 신속하게) 김정은 위원장을 청와대로 비공식 초청해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북미정상회담이 다시 적극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북한과의 소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 본 칼럼은 <세종논평> 2018년 5월 25일자 기고문을 보완해 작성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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