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국은 전쟁의 당사자들에게 총, 탱크 등의 무기를 판매해 큰 이득을 보게 된다. (사진=뉴시스)

[뉴시안=송범선 기자] 국가 간의 전쟁이 발발하면 누가 이기건 당사자들은 막심한 경제적 타격을 받게 된다. 그러나 제 3국은 전쟁을 치르는 두 나라에 무기를 팔아 막대한 이득을 챙긴다.

6.25 전쟁으로 남한과 북한이 폐허가 되는 동안 일본이 크게 성장한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이를 현 상황과 대입해보면, 남한과 북한의 전쟁은 일본과 미국 제조 산업을 큰 성장으로 이끌 가능성이 높다.

전쟁이 나면, 제 3국은 전쟁 당사국들에게 판매할 무기를 생산하는 공장이 활성화된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 무기 공장은 일반 산업 제조 공장으로 바뀌면서, 전반적으로 나라 전체가 발전하게 된다.

이처럼 전쟁이 금융시장에 악영향만 미치는 것은 아니다.

1차 세계대전을 통해 미국의 무기·전쟁 장비산업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전쟁 초기에 미국은 엄격하게 중립노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후 미국은 연합국 쪽에 무기를 납품하기 시작한다.

1914년 11월 베들레헴 철강은 영국 런던에 1억 3500만달러라는 엄청난 액수의 함포와 잠수함을 수주 받았다.

베들레헴 철강의 주가는 46달러에서 459달러로 솟구쳤다. 한순간 최고점 600달러를 찍기도 했다.

이때 미국 주재 독일 대사가 비밀리에 베들레헴 철강 회장인 찰스 슈와브를 찾는다.

그는 베들레헴 철강 지분을 1억 달러에 넘기라고 넌지시 제안했다. 1915년 당시 5400만달러에 거래되던 이 회사를 2배 가까운 가격에 사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이는 연합국에 전쟁 물자를 제공하는 것을 막기 위한 독일의 전략이다.

그런데 이 만남을 영국정부는 감청하고 있었다. 영국 정부는 베들레헴 철강의 찰스 슈와브에게 찾아와 독일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안한다.

이에 찰스 슈와브는 영국으로 무기를 지속적으로 납품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미국이 1차 세계대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증빙해주는 상황이다.

현대전에서 전쟁은 경제력이 강한 나라가 승리할 수 밖에 없음이 입증된다.

미국의 또 다른 많은 군수 물자 회사들이 연합국을 지원하며 이득을 보았다.

이름없는 화약 제조회사 듀퐁도 1차 세계대전 동안 연합국 군수 물자의 40%를 제조해 떼돈을 벌었다. 이후 종합 화학 회사로 발전한다.

듀퐁은 전쟁 전보다 276배나 많은 전쟁 물자를 주문받았다. 매출은 전쟁 전보다 26배나 뛰었다.

전쟁은 자금력으로 크게 좌우된다. (사진=픽사베이)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연합국들은 단순 전쟁 무기보다는 돈이 절실히 필요하게 되었다.

전쟁 전 방위비가 5천만 달러에 그쳤던 영국은 전쟁기간 동안 하루에 500만달러를 썼다. 1년동안 18억 달러가 넘는 전쟁비용이 지출된 것이다.

이 시기 세계 주요 금융시장 중 정상적으로 작동하던 곳은 월스트리트였다. 이에 월스트리트는 유럽 연합국의 자금처가 된다.

미국의 모건은행은 영국을 위해 전쟁 기간 동안 30억 달러에 달하는 물자 조달 계약을 맺었다.

이 돈은 군수 물자를 사는데 이용되었다. 모건은행은 또 영국에 군수품을 수송하기 위한 1200만 달러의 말을 구입했다.

미국은 점점 군산복합체 산업으로 재편됐다. 이렇게 구축된 미국의 군수산업 규모는 1차 세계대전 말 당시 영국과 프랑스를 합친 것보다도 컸다.

이에 월스트리트도 호황에 접어들었다. 군수산업 관련 종목은 당연스레 급등했다. 이뿐만 아니라, 이당시 본격적인 대중화가 전개되던 자동차 주가도 많이 올랐다.

개전 초 폭락했던 제너럴 모터스 주가는 1914년 말 81달러까지 회복했다가 1915년 말 500달러까지 급등한다.

1915년 5월 7일 독일 잠수함은 유럽의 민간인 여객선 루지타니아호가 오는 길에 잠복하고 있다가 어뢰를 발사했다. 이에 루지타니아호는 15분만에 침몰했다. 이 사건으로 미국인 128명을 포함해 민간인 1198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에 미국은 크게 분개했다. 이후 미국은 더 적극적으로 연합국을 지원한다.

무기를 팔던 '죽음의 상인'들은 언론 등을 통해 대결 분위기를 조장하는 등 전쟁을 부추기기까지 했다.

강대국으로 거듭난 미국. (사진=픽사베이)

미국, 1차 세계대전 이후 초강대국이 되다

1918년 11월 11일 1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1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 유럽 대륙의 경제적 전등은 다시 켜지지 않았다.

표면상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과 프랑스는 막대한 인명과 재산 손실을 입고 극도로 지쳤다. 영국이 100만명의 인명 손실을 입은 전쟁에서 미국은 단지 6만명을 잃는데 그쳤다.

전쟁으로 유럽 국가들은 100억달러가 넘는 빚에 허덕이게 됐고, 미국은 빚이 줄었다. 전쟁 전 세계 최대 채무국이었던 미국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채권국이 된다.

이 당시 미국의 채무는 250억 달러에 달했다. 이후 1920년대에 접어들면서 미국의 채무는 75억 달러 수준까지 줄어든다.

594억 달러였던 1921년 GNP도 1929년 872억 달러까지 8년동안 47% 이상 급증했다. 1인당 국민소득도 인플레이션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던 이 기간에 522달러에서 716달러로 늘었다.

이에 긴 시간동안 선두를 달리던 유럽의 주도권은 미국으로 넘어간다.

당시 미국 제조업협회 회장은 "전쟁이 끝난 뒤 미국은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이 될 것이고, 뉴욕은 국제 금융의 수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주장은 그대로 실현됐다.

미국 자본들은 철강재, 자동차, 통신수단, 철도, 전함 등을 생산해 산업시설이 붕괴한 유럽에 팔아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이에 따라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부상하고, 그 핵심에는 월스트리트라는 막강한 자금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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