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특권이 아니라 모두에게 마땅한 권리! 이번 파업을 주도한 고3 학생들. 인터뷰에 응해 준 아만 세와 학생은 뒷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사진=홍소라 통신원)
교육은 특권이 아니라 모두에게 마땅한 권리! 이번 파업을 주도한 고3 학생들. 인터뷰에 응해 준 아만 세와 학생은 뒷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사진=홍소라 통신원)

[뉴시안 이슈 추적=홍소라 파리 통신원] 프랑스 파리 13구. 2018년 5월 28일 새벽 4시. 아직 해가 뜨려면 한참 남은 시간에 몇몇 청소년이 가브리엘 포레(Gabriel Fauré) 고등학교 앞에 모이기 시작한다.

등교하기에는 아주 이른 시간. 학교는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아이들은 근처에 있던 쓰레기통 따위를 가져다가 교문 앞에 놓아 통행을 차단한다.

지난 주에 학생들이 의견을 모아 내린 파업 단행 결정이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 대강 교문은 막았고, 이제는 대자보를 붙일 시간이다. "모두를 위한 대학교",  "선발은 노, 교육은 예스",  "교육은 특권이 아니라 마땅한 권리" 등의 문구를 써서 학교 담벼락에 붙여 놓는다.

점차 등교 시간이 다가 온다. 제복을 입은 경찰 세 명이 학교 근처를 서성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경찰들도 학생들의 움직임을 굳이 제지하지는 않는다.

수업을 들으려는 학생들과 파업을 하려는 학생들 사이에 약간의 충돌이 있었을 뿐이다. 출근하는 선생님들이 교문 앞에 도착했다.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또 다시 열띤 토론을 펼친다. 하지만 파업은 중단되지 않는다.

프랑스 파리 13구 가브리엘 포레 고등학교 학생들이 마크롱 정부의 입시 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내며 5월 28일 등교 거부 및 학교 폐쇄를 단행했다.(사진=홍소라 통신원)
프랑스 파리 13구 가브리엘 포레 고등학교 학생들이 마크롱 정부의 입시 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내며 5월 28일 등교 거부 및 학교 폐쇄를 단행했다.(사진=홍소라 통신원)

고등학생들의 파업과 시위는 이 학교만의 일이 아니다.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전역에서 고등학생들의 정부의 입시 정책 변경에 대한 불만의 소리가 점차 높아져 가고 있으며, 지난 5월부터 여러 학교에서 파업 및 점거가 이어지고 있다.

대학생들이나 노동자들만큼은 아니지만, 올해 초부터 계속되어 오고 있는 파업 및 집회의 흐름에 고등학생들까지 참여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게다가 고등학교 졸업 시험인 바칼로레아가 아직도 진행 중임을 감안하면 이는 예사 일이 아님을 금세 알 수 있다.

이전까지 프랑스에서는 바칼로레아를 합격하기만 하면 누구든 원하는 학교, 원하는 전공에 지원할 수 있었다. 물론 당시에도 인기가 높은 학교, 학과는 존재했다.

특히 의과 대학이나 법학 대학의 경우에는 학생들이 몰리기 마련이었다. 그럴 때는 추첨을 했다. 결국 프랑스 대학 입시에서 ‘선별’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프랑스가 평등한 대학 교육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누구나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마크롱 정부가 내어 놓은 교육 정책이 실시되면서 현재 프랑스 고3은 카오스에 다름 아니다. 우선 지원할 수 있는 학교 및 학과의 개수가 대폭 줄었다.

이전에는 최대 24개까지 지원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최대 10개만 가능하다. 게다가 이제 학생들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포함한 수많은 서류들을 준비해야 한다.

자신들이 내어 놓는 서류들을 각 대학교가 검토해서 합격 여부를 알려줄 것이었다. 충격적이었지만 고3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저, 시험을 준비할 뿐이었다.

첫 번째 발표가 있었던 5월 22일, 절망적인 소식이 들려 왔다. 전체 응시자 81만 여 명 중 절반이 넘는 학생들이 단 한 곳에서도 합격하지 못했다.

물론 여러 곳에서 합격한 학생들도 있었다. 이들이 최종 결정을 하면서 선택받지 못한 이들에게도 하나씩 하나씩 자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여전히 33%의 고3들은 그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못 사는 지역의 학생일수록 대학으로부터 거절당하는 확률이 높다.

그렇게 학생들이 이 사회에 자신들이 설 자리가 없음을 확인당하고 있다. 6월에 철학과 역사·지리·제1외국어·수학 등 많은 과목 시험이 남아 있지만, 공부에 대한 의욕은 없어지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은 높아 진다.

"정책이 발표됐을 때까지도 우리는 모두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입시 결과가 나왔잖아요.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도대체 입시가 어떤 기준으로 이루어지는지도 모르겠고요.  우리 학교에서도 거의 반 정도가 여전히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에요. 우리 학년은 어쩔 수 없지만 지금 1, 2학년들은 이런 부조리에 희생당하지 않도록 앞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행동할 생각이에요." 가브리엘 포레 고등학교의 3학년 학생 아만 세와 (17)의 말이다.

마크롱 정부의 대학 입시 정책에 대한 불만은 고등학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원자들의 성적과 서류를 일일이 검토하고 합격자를 선발하는 일이 대학의 책임이 되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4월부터 6월까지는 대학이 기말고사와 재시험 준비 및 채점 때문에 모든 교직원이 비상에 걸려 있는 시기다.

지원자를 선발하는 일까지 담당하기에는 대학 교수들의 업무는 이미 과중하다. 예를 들어 파리의 한 대학의 한국학과의 경우, 다섯 명의 교수가 1300명에 달하는 지원자들의 서류를 하나 하나 들춰 보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선발에 반대한다. 우리는 교육을 받고 싶다! 정부의 임시정책에 반대하는 프랑스 전역 고3생들의 절규다.(사진=홍소라 통신원)
선발에 반대한다. 우리는 교육을 받고 싶다! 정부의 임시정책에 반대하는 프랑스 전역 고3생들의 절규다.(사진=홍소라 통신원)

대학생들에게도 이 입시 정책은 일정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한국의 수능과는 달리 학위 개념이다.

따라서 한국에 만연한 재수나 삼수가 프랑스에는 없다. 대학에 진학해서 공부를 하다가, 전공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다른 학교에 지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이전에 바칼로레아를 취득했다 하더라도 다른 수험생과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쳐 선별되어야 다른 학교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물론 프랑스 정부가 이러한 대수술을 단행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기존의 시스템을 운영해 본 결과, 졸업 전 중도에 낙오하는 비율이 높고, 인기 전공에 학생이 지나치게 몰려 사회적 비용이 과도하다는 것이다.

반대로 이른바 금수저들만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게 되고, 나머지 학생들은 들러리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라는 우려 및 저항 역시 높다.  그래서 프랑스 입시에 둘러싼 대립 양상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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