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소종섭 편집 자문위원/前 시사저널 편집국장] 1974년 8월15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제29주년 광복절 기념식이 열렸다. 기념식이 시작되고 얼마가 지났을까. 오전 10시23분쯤 총소리가 식장을 울렸다. 박정희 대통령이 “통일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기념사 대목을 읽을 때였다.

당시 현장은 TV로 전국에 생중계 되고 있었다. 육영수 여사는 이 자리에서 조총련계 재일교포 문세광이 쏜 총탄을 머리에 맞았다. 박정희는 육여사가 경호원들에 들려나간 뒤 기념사를 마저 읽고 퇴장했다. 육여사는 서울대병원에서 5시간 넘는 대수술을 했지만 결국 오후 7시 세상을 떠났다. 이 소식을 들은 박정희는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육여사의 영결식은 1974년 8월29일 중앙청에서 열렸다. 5일장으로 치러졌고 박근혜 박근영 박지만 세 자매와 3부 요인 등 2900여 명이 참석했다. 장의위원장은 김종필 국무총리가 맡았다. 육여사 피격에 대한 책임을 지고 박종규 경호실장이 물러났다.

1961년 5.16 이후 13년 동안 그림자처럼 박정희 곁을 지켜온 ’피스톨 박‘ 시대는 이렇게 저물었다. 박종규는 최고회의 의장 경호대장과 청와대 경호실 차장을 거쳐 1964년 경호실장에 올랐다. 당시 경호실은 권력의 중심이었다. 경호 업무에 전념하는 지금과 달리 그때는 막강한 권력을 경호실이 휘둘렀다. 그러했기에 박종규 이후 누가 경호실장을 맡을 것인가는 권력의 흐름과 관련해 큰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김종필, “차지철을 경호실장으로 추천한 사람은 육영수”
김종필은 <김종필 증언록>에서 자신은 오정근 의원을 후임 경호실장으로 추천했다고 밝혔다. “박정희 대통령은 내게 ’후임 경호실장으로 누가 좋을까?‘라고 물으셨다. 나는 오정근 의원을 추천했다. 해병 출신인 오정근은 5.16 때 전차대대를 이끌고 선두에 섰던 정의감과 신념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해병 준장으로 예편한 뒤 유정회 국회의원을 하고 있었다. 박대통령도 ’아, 좋군. 오정근을 시키자‘라며 동의했다.

그날 오정근에게 경호실장으로 일할 준비를 하라고 통보까지 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청와대에서 호출이 와서 가니 박대통령이 ’차지철이를 시키기로 했어‘라며 말을 바꿨다. 도대체 누가 차지철을 추천했나 내 머릿 속엔 그 생각 뿐이었다.” 김종필은 “차지철을 추천한 이는 육영수 여사였다”고 말한다. 생전에 육여사가 “차지철 의원 같은 고지식한 사람을 데리고 일해보라”고 박대통령에게 말하곤 했다는 것이다. 차지철은 독실한 기독교인이고 술, 담배를 하지 않았다. 육여사는 차지철 같은 사람이 곁에 있으면 박대통령 주변의 스캔들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육영수, 평소 박정희 주변 스캔들에 민감
육여사는 평소 ’여자 관계‘에 민감했다고 알려져 있다. 아버지의 바람기 때문에 고생하는 엄마를 가까이서 봤던 경험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김종필 증언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육여사는 이후락의 중앙정보부장 임명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주일대사 시절 그의 염문설이 육여사의 귀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육여사는 박대통령을 모시는 사람들의 여성 문제에 민감했다. 육여사는 ‘왜 그런 사람을 자꾸 기용하시느냐. 대통령 옆에 둘 사람이 아니다. 내쫓아야 한다”고 여러 차례 건의했다.“ 이동원 전 외무장관도 회고록에서 고 육영수 여사와 관련해 이렇게 회고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술을 조금 하는 때는 별일 없으나 좀 과음했다 싶으면 이튿날 어김없이 질책하는 전화가 왔다. 도대체 ‘체통 관리’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육여사는 또 술 상대까지 귀신처럼 알고 있었는데 아마 경호원 중 육여사에게 보고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 같다.”

신실세 차지철,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충돌하며 10.26불러
어쨌든 차지철이 경호실장이 됨으로써 박정희 정권 내부의 권력 관계는 소용돌이치게 됐다. 이로써 1976년 이후 최규하 국무총리-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차지철 경호실장- 김정렴 비서실장(1978년 12월부터는 김계원 비서실장) 체제가 형성됐다. 김재규와 차지철이 도드라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것은 김재규-차지철의 충돌로 이어졌고 결국 10.26으로 끝을 보았다. 육여사가 추천한 차지철이 아니라 김종필이 추천한 오정근이 경호실장이 되었더라면 10.26이 일어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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