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로부터 르피가로(Le Figaro), 르몽드 (Le Monde), 리베라시옹(Libération), 뤼마니테(L’Humanité)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4개 일간지의 6월 12일 자 1면 표지.(사진=홍소라)
좌로부터 르피가로(Le Figaro), 르몽드 (Le Monde), 리베라시옹(Libération), 뤼마니테(L’Humanité)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4개 일간지의 6월 12일 자 1면 표지.(사진=홍소라)

[뉴시안=홍소라 파리 통신원] Sommet de Singapour. 프랑스 언론이 2018년 6월 12일에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을 부르는 표현이다.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싱가포르 정상회담' 정도가 된다. 구글에 이 검색어를 입력하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수의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

<트럼프–김 정상회담 :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만남>,  <악수, 역사적 합의와 한미연합훈련의 중단>, <첫 발걸음 혹은 역사적 만남>,  <김정은의 미션 컴플리트>,  <오랫동안 상상도 못 했던 장면들의 연속>  등의 기사 제목이 눈에 띈다.

이번 <뉴시안> 기사에서는 프랑스 사회가 보는 북미정상회담을 주요 언론 보도를 통해 들여다봤다.

확실히 언론의 관심은 뜨거웠다. 적지 않은 신문사에서는 이날 정상회담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실시간으로 소셜네트워크 등을 통해 독자에게 알렸다.

보통 이런 식의 보도는 아주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이를테면 테러 같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흔히 볼 수 있다.

최근에 있었던 파리 칼부림 사건 때도 주요 언론사에서는 실시간 보도를 계속했다. 이것만 보아도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프랑스 사회의 관심도를 대략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프랑스에서는 이번 북미정상회담을 어떻게 보았을까 ? 수많은 기사들을 모두 다룰 수 없으므로 프랑스 사회 내 각 정치 성향을 대표하는 일간지 총 네 곳의 기사 중 정상회담 당일에 나온 것들을 분석 대상으로 했다.

우파부터 좌파까지 <르피가로(Le Figaro)>,  <르몽드 (Le Monde)>,  <리베라시옹 (Libération)> 그리고  <뤼마니테 (L’Humanité)> 등 총 25개의 기사가 해당된다.

각 신문사의 정책에 따라 정기구독자에게만 공개한 기사의 경우에는 아주 일부만 볼 수 있었음을 미리 밝힌다.

르피가로
<르피가로>는 프랑스 언론 지형에서 우파로 평가받는 일간지다. "오랜 기간의 합의를 통해 준비된 역사적인 정상회담이었으며, 하마터면 성사되지 못할 뻔했던 회담 결과"에 대해 "한반도의 비핵화를 장담하지 못하는 모호한 합의였다"고 평가했다.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회담의 목적에 비추어 볼 때, 트럼프와 김정은의 완벽하게 계산된 정치적인 합의이자 보여주기 식 이벤트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르피가로>는 북한의 비핵화 이행에 대해서도 비관적이다. 한 전문가의 입을 빌려 "핵무기는 북한의 정체성의 일부분으로, 그 목적이 방어에서 공격으로 전환되었다"며, "북한이 절대로 탈핵하지 않을 것"이라 전망한다.

싱가포르 회담에 대해 "솔직하고 직선적이고 생산적"이었다고 밝힌 트럼프 대통령을  '핵에 관한 허세 챔피언'이라 대놓고 조롱하기도 했다.

이제껏 그리도 내세웠던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가 공동합의문에는 쏙 빠져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결국 전쟁 위험이 줄어들었다고 환영하고 기뻐만 하기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에는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르피가로>의 입장이다.

독자들 역시 비슷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신은 김정은이 핵폐기 약속을 지킬 것이라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으로 <르피가로>가 자사 사이트에서 실시한 설문조사는 프랑스 시간으로 6월 12일 밤 10시 50분 현재 총 참가 인원33631명 중 63%가 ‘아니오’라 답했다. 긍정적인 답변을 한 이들은 37%에 그쳤다.
 

르몽드
<르몽드>는 중도우파로 평가받는 일간지로, 한국에는 그 엘리트적 측면이 잘 알려져 있는 언론이다.

북미정상회담에 대해서는 <르피가로>와 마찬가지로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의 모호한 합의"라 표현하며 "이는 앞으로 있을 다수의 복잡한 합의에 첫 발을 내딛은 것에 지나지 않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르피가로>에 비해 <르몽드>는 보다 논리적이면서도 우호적으로 이번 회담을 바라본다.

우선 이번 싱가포르 회담이 성사될 수 있었던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호전적인 수사와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의 북한에 개방적인 정책, 또한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제재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본다.

<르몽드>는 트럼프가 '한반도의 완벽한 비핵화'를 주 내용으로 하는 공동합의문에 서명을 했으며, 이는 한국전쟁 이후 그 어떤 미국 대통령도 이르지 못한 성과임을 분명히 하는 반면, 이번 정상회담이 결과적으로는 미국보다는 북한에 더 유리한 것이라 평가했다.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지킬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번 회담에서는 북미 양국이 큰 골자에 합의를 했고 세부 사항은 앞으로 전개되는 양상을 보아야 하겠지만, 북한으로서는 비핵화 말고는 선택지가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공동합의문에 CVID가 명시되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민감한 지점이라 지적하면서도, 두 국가 사이에 구축되기 시작한 '새로운 관계'를 통하여 충분히 메꿔나갈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해석했다.

또한 한국이나 중국, 유엔 등 북미관계에 관련된 각국과 국제사회가 이번 회담을 환영한다며, '새로운 역사',  '중대한 한 걸음'과 같은 수사를 기사 제목으로 달아, 보다 긍정적인 전망에 힘을 실었다.

해당 기사에서는 <르피가로>와 달리 유엔보다 남한에서의 반응을 우선적으로 다루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6월12일 센토사 합의는 지구상의 마지막 냉전을 해체한 세계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 "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평가와 서울역 대합실에 모여 정상회담을 지켜 보던 시민들의 폭발적인 반응이 소개되었다.

다만 <르몽드>는 이번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한 주민의 인권은 잊혀지고 말았다는 비판을 잊지 않는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국제인권단체인 인권감시단(Human Rights Watch)의 아시아 지역 사무차장 필 로버슨(Phil Robertson)의 의견을 중점적으로 조명했다.

그에 따르면 국제인권단체들은 "김정은이 핵무기에 엄청난 자원을 쏟을 수 있었던 것은 북한 주민들이 절대로 반대하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이며, "북한 정부에 대한 주민들의 자명한 공포를 이용해 국가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시각을 견지한다.

또한 이번 회담은 인권 문제 차원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 왔다고 뽐낼' 구실 정도밖에 주지 못했기 때문에, 미 정부가 해당 주제에 대해 더욱 심각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리베라시옹
중도좌파 일간지로 분류되는 <리베라시옹>에게 있어 북미정상회담은 "3주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싱가포르에서의 특별한 하루"였다.

이 만남이 성사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를 2017년 9월 11일 UN의 대북 제재 결의부터 시간 순으로 정리하는 기사를 내보내는 한편, 6월 12일의 '역사적 만남'을 총 17장의 사진을 통해 생생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했다.

공동합의문의 프랑스어 번역은 별다른 코멘트 없이 하나의 기사로 게재되었다. 또한 회담 결과 중 특히 비핵화 관련 합의의 불확실성을 지적하면서도 <리베라시옹>은 "김정은과 트럼프가 새로운 문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이 지점에서 <리베라시옹>이 먼저 언급한 두 매체와 확실히 다른 지점은 북한을 미국보다 먼저 지칭했다는 데에 있다.

김정은 위원장을 묘사하면서도 '진심 어린',  '미소 짓는' 등의 긍정적이고 친숙한 표현들을 사용하였고, 데니스 로드맨(Dennis Rodman)의 싱가포르 방문 사실을 수 차례 언급하며 이전까지 ‘망나니 독재자’ 정도로 인식되던 북한의 국무위원장에 대한 독자들의 심리적 거리를 줄였다.

반면, <리베라시옹>은 이번 회담이 북미 양국의 긴장을 낮추었음에도 불구, 공동합의문에 북한에 대한 강제가 수반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미국 대부분의 북한전문가 및 정치인들에게는 실망스러운 결과였다고 밝힌다.

또한 합의문의 내용이 이전 합의와 비교해 볼 때 새로울 것이 없으며, 오히려 그 엄정성 면에서는 더욱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미국의 시각 역시 보여 준다.

그 중 윌슨 센터(Woodrow Wilson International Center for Scholars)의 아시아 프로그램 디렉터 아브라함 덴마크(Abraham Denmark)는 북미정상회담은 북한에게 있어 '체제 선전의 호기'가 되었으며 한미연합훈련의 중단으로 인하여 '남한에 엄청난 혼란'이 예상된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반면 미 군축협회(ACA) 킹스턴 리프(Kingston Reif) 이사는 북미정상회담 개최의 원동력은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적 창의력과 능숙함 덕분'이었다며, 이번 회담이 그저 북미 두 정상의 악수에서 그치지 않으려면 남과 북의 긴밀한 협력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참고로 <리베라시옹>은 킹스턴 리프의 말을 기사 말미에 배치했다. 보다 긍정적인 시선에 무게감을 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뤼마니테
<뤼마니테>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좌파 일간지다. 위에 언급된 세 개의 일간지에 비하여 자금력이 떨어지는 탓에, 국제 뉴스는 크게 비중을 두어 다루지 않고 국내 정치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뤼마니테>도 무려 네 개의 기사를 통해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을 다루었다.

공동합의문의 북한 비핵화 관련 부분이 모호하다는 평가와 비핵화의 과정이 결코 짧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여타 언론과 일치한다.

하지만 전반적인 평가는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좌초시킬 뻔 했던 극단적인 전략을 내려 놓았다"며 "북미 양국의 지도자가 전통적인 외교의 지표를 급작스레 변화시켰다"고 본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 선출로 대변되는 남한 정부의 기조 변화가 회담 성사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였음을 분명히 하며 앞으로의 전망에서도 남한의 역할에 주목한다.

<뤼마니테>는 분석의 대상이 된 네 개 일간지 중 유일하게 한국 학자의 의견에 지면을 할애하며 한국 사회의 시선을 보다 생생하게 전달했다.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센터장인 박명림 교수는 <뤼마니테>와의 인터뷰에서 "화해에 이르려면 우선 낙관적으로 미래를 보아야"하고,  "북한은 핵에 근거한 경제체제를 발전을 위한 경제로 바꾸어 나갈 필요가 있다"며,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가 현실화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주력했던 것이 미국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는 시선 역시 여타 일간지와 확실히 구분되는 지점이다.

또한, 이번 정상회담을 프랑스 국내 전문가들의 입을 빌려 북한 전략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것도 다른 일간지와의 차이점이다.

<뤼마니테>와의 인터뷰에서 프랑스의 동북아 정치 전문가 바르텔레미 쿠르몽(Barthélémy Courmont)은 "북한이 원하는 것은 전쟁이 아니라 협상이며, 이는 북한 전략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또한 앙투안 봉다즈(Antoine Bondaz) 프랑스 국립정치학교 교수는  "북핵은 확실히 정치적 도구"라며, "북핵은 세습 체제를 공고히 하고 북한 주민에게 정치체제의 정당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독립 국가로서의 북한의 주체 이데올로기를 현실화하는 데에 북한 주민이 희생을 받아들이도록 했다"고 본다.

다만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순간, 스스로 구축해 온 자원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확실한 체제 및 경제 발전의 보장이 없는 한, 북한의 비핵화는 장담할 수 없다는 우려를 숨기지는 않으며, 이 부분에서 남한과 주변 국가들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것이 <뤼마니테>의 시선이다.

결론적으로 프랑스의 언론들은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을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사건으로 다루면서도, 그 성과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감추지 않는다.

CVID가 공동합의문에 거론되지 않았으며, 앞으로 북미관계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해 세부적인 사항을 언급하지 않은 탓이다.

다만 각 언론들이 지니고 있는 정치 성향과 세계관에 따라서 관점의 상이함은 엿볼 수 있었다.

<르피가로>는 북미정상의 성과에 대하여 대체적으로 비관적인 반면, <르몽드>는 보다 냉정하게 사태를 목도하려 했다.

<리베라시옹>은 북한에 대한 거리감을 좁히려고 노력했으며, <뤼마니테>는 북한의 입장에서 현재의 상황을 전달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서방세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에게도 북한은 미지의 영역에 다름 아니다. 정식 수교가 이루어지지도 않았고, 몇몇 민간단체들이 북한과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파트릭 모리스 (Patrick Maurus) 프랑스 국립동양어문화대학 한국학과 명예교수가 재직 시절, 북한 유학 및 교환학생 프로그램의 길을 열었지만 북한학은 아직 걸음마 단계도 떼지 못한 상태에 불과하다.

따라서 프랑스 사회는 아직도 북한이라는 국가에 차가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반면 북한에 대한 관심으로 한국학과에 입학했다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의 국가들이 한반도에 어떤 태도를  보이게 될지는 향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관계의 전개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