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잃어버린 사람들/셰리 터클 지음/황소연 옮김/524쪽/민음사/2만1000원
대화를 잃어버린 사람들/셰리 터클 지음/황소연 옮김/524쪽/민음사/2만1000원

[뉴시안=한기홍 기자] 민음사의 신간 [대화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화제다. 이런 책이 화제가 된 것 자체가 우리가 얼마나 대화 부재의 시대에 살고 있는지를 웅변한다.

또한 역설적으로 우리는 얼마나 대화가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는가.

온갖 종류의 SNS에 넘치는 말의 향연이 대화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럼에도 우리는 늘 불안하고, 불행하며, 고독하고, 불만 가득한 일상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도대체 말의 성찬 속에서 먹잘 것 없는 소통이 횡행하고 있다는 증좌다.

진정한 대화의 부재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과 김정은, 김정은과 트럼프 사이에 오간 현란한 정치적 수사에서 오히려 고전적이며, 대화다운 대화의 울림을 느끼게 된다.

진심을 담은 대화를 통해서만 우리의 영혼은 유지될 수 있는데, 우리는 그 에너지를 상실한 지 오래다.

누가 이 책을 썼는가. 셰리 터클이다.

그는 테크놀로지의 적극적인 활용을 주장하는 기술심리학자다.

그와 동시에 우리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공동체를 구성하는 구성원으로서 존엄과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지론을 역설한 학자다.

2012년에는 TED 인기 스피커로 “CONNECTED, BUT ALONE?”를 강연했고, CNN·NBC·ABC·NPR 등에 게스트로 자주 나오는 스타 학자다.

대표작으로 [스크린 위의 삶] [외로워지는 사람들] [내 인생의 의미 있는 사물들] [라캉과 정신분석 혁명]등을 써낸 창의적이고 분방한 필자이기도 하다

뉴욕 브루클린 출생, 에이브러햄링컨 고등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래드클리프대학교를 다녔으다. 프랑스에서 정신분석학과 대혁명의 관계를 연구하고, 하버드대학교에서 석박사를 취득했다.

아이는 왜 그토록 핸드폰 메시지에 집착하나

그의 화려한 이력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이 정도의 통찰을 얻기 위해 공들인 학자로서의 여정은 고단했으리라.

실증적인 연구 방식, 다시 말해 사실과 현상을 통해 일반의 원리를 도출하고, 그 원리를 통해 다시 실제 세계를 탐구하는 그의 실력은 녹녹지 않다.

그는 1980년대부터 테크놀로지가 더 이상 단순한 도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 사회심리적으로 중요한 임팩트를 가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있었다.

기술은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뿐만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결정하는 요소라는 통찰이다. 이 때부터 그는 기술의 위험성과 함께 심리치유 방법으로서의 유용성도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는 로봇 같은 산물이 인간 심리와 사회관계 등에 끼치는 영향력, 그리고 핸드폰이나 디지털 애완동물 같은 가상의 창조물이 인간심리에 끼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흥미진진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셰리 터클의 이런 관찰을 들여다보자. 예컨대 아이가 그토록 핸드폰 메시지에 집착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얼까?

아이들이 진짜 부모와의 대화를 싫어할까? 지금 아이들이 SNS 속을 헤매고 있는 근원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들의 말을 들어보자.

“아빠가 신문을 읽고 있을 때라면 주말 스포츠 경기라도 질문하며 방해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아빠가 노트북컴퓨터 앞에 있을 땐 달라요. 아빠가 사라져 버리거든요.”

부모는 자식들이 집에 없을 때는 주변을 맴도는 ‘헬리콥터’가 되지만, 정작 시야에 있을 때는 휴대폰으로 주의를 돌린다.

아이가 눈에 안 보일 때만 관심을 갖는 이상한 부모가 주변에 지천이다. 심지어 가족 캠핑에서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는다며 부모가 아예 휴가를 일찍 끝내버린 사례도 있다.

셰리 터클은 아이들이 친구들의 우정을 휴대폰에 즉시 응답하는 대기상태로 그 기준을 정하는 이유에 대하여, 부모에게 기대하는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보상심리라고 설명한다.

특히 대화를 주고받는 순간에도, “지금 여기가 최선일 수 있다는 걸” 잊고는 다른 잃어버린 기회들을 생각하느라 깊은 대화로 들어가지 못한다. ‘카르페 디엠’(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 정신의 상실이다.

결국 현재에 집중하지 못함으로 인해 깊은 관계로 들어가는 기회도 놓치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더 비인격화된다.

20세기가 ‘고독한 군중’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함께 외로운’ 시대가 됐다. 이것이 책을 관통하는 셰리 터클의 메시지다.

우리가 휴대폰을 지배하는 시대 만들어야

저자는 소셜미디어 활동은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박탈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이거야말로 반역사적인, 복고풍의 사고방식 아닌가.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인터넷으로 연결돼 있지 않으면 불안감을 느끼는 소셜미디어 세대는 느슨한 연대를 강한 결속으로 착각한다.”

고독을 두려워하고 즐기지 못하게 되면서 창의력과 생산성도 떨어진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오늘날 우리는 끊임없이 대화를 우회하는 방법들만 찾는다. 서로에게 끊임없이 접속하면서도 서로를 피해 숨는다.

대면 회의보다는 SNS 회의가 편하고,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안부를 묻기보다는 페이스북이나 SNS 메시지 한 통 보내는 걸 선호한다.

SNS는 '공감을 위한 보조 바퀴'로서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지만 SNS만으로 운영되는 세계란 폐허와 같이 건조하다.

셰리 터클은 기술에 지배당하지 말고 기술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 첫걸음이 지금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을 당장 끄는 것이다.

[윌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호숫가 오두막에 놓여 있던 '의자 세 개'를 해법으로 제시한다. 의자 하나는 고독을 위한 것이고 의자 둘은 우정을 위한 것이며 의자 셋은 사교를 위한 것.

그중 첫 번째 고독은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다. 휴대폰이 우리에게 빼앗아 가고 있는 능력이다.

휴대폰이 인간을 지배하는 기술의 시대다.

우리가 휴대폰을 지배하는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공감한 적이 있다면! 셰리 터클의 책은 그 철학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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