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의원들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참석해 김성태 대표 권한대행의 모두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참석해 김성태 대표 권한대행의 모두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시안=김도진 기자] 지방선거 참패로 살길을 찾고 있는 자유한국당이 점점 더 수렁에 빠지고 있다.

패배의 책임과  혁신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과거의 문제점과 갈등이 표면에 떠올라 서로 비난하고 책임을 떠넘기는 모양새다.

지난 18일 김성태 대표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중앙당을 해체하고 ‘혁신비상대책위'를 설치해 당을 재정비하자는 안을 담은 '김성태 쇄신안'을 발표하자 한동안 잠잠했던 친박과 비박 간 갈등 기류가 다시 불거졌다.

혁신비대위가 당을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인적 청산에 나설 테고, 결국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세가 약한 쪽이 피해를 입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친박 진영에서 일고 있다. 김성태 권한대행이 비박 진영이기 때문이다.

다수파인 친박계 ‘김성태 혁신안’에 반발

친박은 탄핵정국 이후 수세에 몰리고 있다지만, 사실 자유한국당의 대다수는 친박이다. 지난 2016년 20대 총선 당시 친박으로 국회에 입성한 의원은 80여 명. 새누리당 시절은 물론이고 지금도 여전히 친박계가 다수파다.

친박계로선 김성태 쇄신안이 비박계의 당권 장악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쇄신안이 발표된 이튿날인 19일 오전 초선의원들은 모임을 갖고 김성태 혁신안이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거기다 복당파 의원 조찬 모임에 참석한 박성중 의원 휴대전화에서 핵심 친박 청산 내용을 담은 메모가 언론에 노출되면서 친박 의원들은 일제히 목소리를 높이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해묵은 계파싸움의 마지막 서막이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비대위, 114명 전부 수술대 위에 올릴 것”

당 조직을 슬림하게 바꾸는 것을 골자로 중앙당 해체를 선언한 김성태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대대적인 인적 청산을 예고했다.

그는 20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중앙당 해체는 시작에 불과하다"며 "앞으로 이뤄질 인적청산, 세대교체를 비롯한 본격적 쇄신 작업을 혁신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전권을 갖고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또 다른 인터뷰에선 "혁신 비대위에선 114명 전부를 수술대 위에 올릴 것"이라고도 했다.

물론 김 대행은 객관적인 절차로 준비위원회를 구성해 혁신 비대위원장을 외부 인사로 영입하겠다고 하지만 비대위를 통해 비박계가 인적 청산의 칼을 쥐게 되리라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19일 초선의원 모임에서 복당파 박성중 의원 휴대전화에 '친박 핵심 모인다→서청원, 이장우, 김진태, 정종섭', '세력화가 필요하다-적으로 본다/목을 친다' 등의 내용이 적혀 소위 '친박 살생부'를 방불케 하는 메모가 공개되자 논란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박 의원은 20일 기자들과 만나 "복당파 (모임) 안에서 (그런 얘기가) 나왔다. 요지만 적은 것"이라며 친박 의원들의 세 결집에 맞서 비박계도 세력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이 내부에서 제기됐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비박 재결집'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계파 갈등이 노출되자 친박 의원들은 전전긍긍하면서도 박의원 메모를 꼬투리삼아 비박 공격에 나서고 있다.  

친박 의원들로 구성된 초선의원 모임은 19일 오후 5시께 긴급 모임을 소집해 계파 다툼으로 번지는 것을 성토하며 김 대행에게 복당파 의원 모임에 갔느냐며 추궁했다. 한 참석자는 모임 직후 기자들에게 "다시 친이-친박이냐, 초선의원들 완전 열 받았다"고 격하게 반응했다.

반발하는 친박, 그럴 자격은 있나?

초선의원들은 물론이고 친박 재선의원도 김 대행 혁신안을 비판하며 선거패배 책임은 홍준표 전 대표와 김 대행이 책임이 있다고 나섰다.

친박 재선 김진태 의원은 "겉으로는 반성하니 어쩌니 하면서도 결국 내심은 이것(당권장악)이었냐"며 "당이 해체될 판인데 계파싸움으로 당권 잡아서 뭐하겠다고 저럴까"라고 일침했다. 

한선교 의원도 19일 "한국당에 김성태를 중심으로 한 어떤 세력이 다시 결집하는 것 아닌가 한다"고 비박계를 에둘러 비판했다. 또 다른 중진 의원은 "친박 낙인 찍기 작업에 들어간 것 같다"고도 했다
 
이처럼 친박계는 "친박과 비박 프레임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성토하지만, 사실 박근혜 정부의 실정에 침묵했던 그들의 비판과 반발에 국민이 쉽게 수긍하기는 힘들다.

친박이라는 꼬리표는 초선이든 중진이든 청산대상 후보 1위로 꼽힐 수밖에 없다.

비박계 역시 바른정당을 지키지 못하고 탈당과 복당을 거친 의원이 많고, 제1야당이라는 안온한 자리를 떠나지 못한 상황에서 겨우 당대표의 막말과 전횡에 의지해 친박계를 견제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어차피 총선으로 물갈이하지 않는 한 한국당은 친박파가 다수이므로 홍 전 대표로서도 친박 청산은 불가능한 작업이었다.

난장판으로 끝난 총회

김 대행은 계파갈등으로 번진 논란을 수습하기 위해 20일 "계파갈등과 분열을 책동하는 행동에는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고 했다.

자유한국당은 김 대행의 당 쇄신안을 논의하고 표결에 붙이기 위해  21일 오전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었지만 표결은커녕 박성중의원의 메모에 대한 비난과 김 대행과 박무성 대표에 대한 공격이 거셌다.

신상진·심재철 의원 같은 중립계 인사도 김 대행의 혁신안에 반대하고 나섰다. 조기 전당대회를 거쳐 일선에 나서고 싶은 사람들은 비대위를 거쳐 ‘수술’받는 동안 비박이 당권을 장악하기를 원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 대행과 김무성 의원은 물러나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 이날 총회는 다섯 시간 넘게 진행됐지만 결국 친박과 비박의 추한 싸움만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끝난 셈이다.

결국 한국당은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가운데 친박계와 비박계의 갈등은 더욱 골이 깊어지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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