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현지시간) 오후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F조 3차전 대한민국-독일의 경기, 한국 손흥민이 후반 두번째 골을 넣고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사진=뉴시스)
27일(현지시간) 오후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F조 3차전 대한민국-독일의 경기, 한국 손흥민이 후반 두번째 골을 넣고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뉴시안=한기홍 기자] 기적이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가 ‘전차군단독일을 꺾었다.

김영권과 손흥민의 후반 추가시간 연속 ‘극장골’을 성공시킨 것이다.

세계 랭킹 57위 한국이 1위 독일을 꺾은 것을 보면 공은 역시 둥근 것이다.

독일국민은 1943년 2월 러시아 땅 스탈린그라드에서의 대패배를 오래 기억한다.

나치즘의 패배였기에 월드컵 경기의 패배와 비견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독일의 한국전 패배와 16강 탈락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패배와 기묘하게 오버랩된다.

히틀러 치하 독일이 참가한 1938년 프랑스  월드컵은 끔찍했다.

오스트리아를 병합해 의욕적으로 1938년 월드컵에 참가했지만 시드 배정국으로서는 유일하게 16강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에 분노한 히틀러는 독일 대표팀 선수 전원을 구속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로부터 80년이 지난 러시아 월드컵에서 독일은 한국에 패해 16강 진출이 좌절된 것이다.

프랑스 월드컵 4년 후 벌어진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세계 전쟁사에 길이 남는 겨울철 대작전이었다.

히틀러의 독일군과 ‘조국수호 전쟁’에 나선 러시아군 사이에 벌어진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2차세계대전 승패의 분수령이었다.

이 전투는 러시아의 혹독한 추위를 침략자는 견뎌낼 수 없다는 전설을 남겼다.

소련군의 전략은 독일군을 역(逆)포위하는 것이었다. 공세적 상상력은 대담한 역전승을 가능케 했다.

한국팀도 승리에 목마른 독일의 배후를 쳤다.

과감한 역습과 속공이 주효했다.

경기 전 독일은 적어도 2점 차 이상의 승리를 통해 16강 진출을 자신했다.

1942년 6월 독소전 개전 당시 히틀러도 그랬다.

그해 가을까지 벌어진 수많은 전투에서 독일군은 파죽지세의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1943년 겨울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은 결정적인 패배를 맛봤고, 이 패배는 1945년 4월 히틀러의 몰락과 직결됐다.

히틀러의 오만이 소련군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했던  결과다.

한국 대표팀의 투지는 경이로웠다.

독일팀에 한국팀의 투지는 1942년 11월에서 이듬해 2월까지 닥친 러시아의 겨울처럼 혹독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독일은 초조한 가운데서도 일견 우아하고 여유 있는 플레이를 보였지만, 그것은 무기력을 감추기 위한 허장성세에 불과했다.

 “조현우 골키퍼에게 절을 하고 싶다”

거함 독일이 속절없이 격침되자 세계가 깜짝 놀랐다. 러시아 월드컵 최대 이변으로 기록될 터이다.

한국팀은 조별리그에서 스웨덴(0-1패)과 멕시코(1-2패)에 2연패를 당했지만,  독일을 꺾으면서 1승2패(승점 3)를 기록했다.

독일(1승2패)과 동률을 이뤘지만 골득실에서 앞서 F조 3위로 대회를 끝냈다.

한국은 16강 진출의 기적을 노렸지만 스웨덴(2승1패)이 멕시코를 3-0으로 물리치면서 아쉽게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한국에 패해 조별리그 탈락의 충격을 맛본 독일 선수의 뒷모습이 애잔하다.

패배의 순간 독일 전역은 아마도 무시무시한 침묵에 휩싸였을  것이다.

무려 80년만에 조별예선 통과에 실패했으니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일 것이다.

독일 축구에 조종이 울린 날로, 축구팬의 반응은 분노라기보다 냉담함에 가까웠다고 한다.

경기 후 뢰브 감독의 16강 탈락 소감은 '쇼크와 실망'이었다.

잘 생긴 그의 얼굴은 경기 내내 어두웠고, 패패가 확정되자 흉하게 일그러졌다.

독일 언론은 경악했다.

유력 일간지 <빌트>는 "독일 월드컵 역사상 최악의 경기였다. 독일이 한국에게 망신을 당했다. 독일 축구 팬들에게는 끔찍한 하루였다"라고 개탄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대1로 승리했던 스웨덴 전 직후 "고문과 같이 끔찍했다"는 관전평을 남겼다.

한국전 패배에 대해서는 "그러나 솔직히, 오늘 우리는 슬프다"는 소회를 밝혔다.

월드컵은 숱한 강자의 무덤이었다.

독일의 패배는 월드컵이 얼마나 간단치 않은 대회인가를 웅변한다.

실수한 선수에 대한 인격살인은 그래서 정말 부끄러운 행위다.

다행히도 장현수 선수는 독일전 승리를 통해 자랑스럽게 복권됐다.

월드컵 4강과 원정 독일 격파 중 어느 편이 더 위대한가

손흥민은 이 날 경기가 끝난 후 인터뷰 내내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거의 모든 선수들이 베스트를 다했다.

특히 골키퍼 조현우의 선방이 눈부셨다.

이날 박지성 SBS 해설위원은 “조현우 골키퍼에게 절을 하고 싶다”며 감격했다.

경기 직후 전국 모든 곳에서 거의 폭죽과 같은 함성이 울렸다.

비명을 방불케 하는 환호성이었다.

월드컵 기간 내내 쌓인 대표팀을 향한 원망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국 축구는 극적으로 회생했다.

실상 무승부만 이뤘어도 엄청난 수확이었다.

환호 뒤에 반성도 뒤따랐다.

안정환 MBC 해설위원은 “축구계 리더와 지도자들은 지금부터 (한국축구 부활을 위한) 회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많은 국민이 경기가 끝난 후 오랫동안 잠 못 이뤘다.

2002년 월드컵 4강과 원정 대회에서 독일을 꺾은 것 중 어느 편이 더 위대한가.

이런 논쟁이 끊임 없이 이어졌다.

행복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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