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경남 창원시 중앙동 문화마당에는 노회찬(창원 성산) 국회의원 시민분향소가 설치됐다. 고인의 장례가 치러지는 27일까지 매일 저녁 분향소 주위에서 추모행사가 열린다.(사진=뉴시스)
23일 경남 창원시 중앙동 문화마당에는 노회찬(창원 성산) 국회의원 시민분향소가 설치됐다. 고인의 장례가 치러지는 27일까지 매일 저녁 분향소 주위에서 추모행사가 열린다.(사진=뉴시스)

 

[뉴시안=이준환 기자] 23일 오전 노회찬 의원(61, 3선)이 유명을 달리했다는 갑작스런 비보에 온 정치권과 국민은 충격에 빠졌다.

노 의원은 드루킹 김동원 씨의 댓글 조작 사건으로 불거진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받고 특검 조사를 앞두고 있던 중이었다.

미국 방문 내내 침울했던 노 의원

노회찬 의원은 정의당 원내대표로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인 19일부터 22일까지 여야 원내대표들과 함께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했다.

19일 출국장에서도 드루킹 사건과 관련한 질문을 받았던 노 의원은 방미 일정 내내 말수가 줄고 활기를 잃은 모습이었다고 한다.

동행했던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미국 정계 지도자와 경제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제가 한미동맹을 강조하고 제재 완화와 일방적인 평화만 갖고 비핵화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할 때도 예전처럼 강하게 반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예전이라면 서슴지 않고 반박했을 노 의원이었다. 노 의원은 촌철살인의 달변과 뛰어난 판단력으로 정평이 나 있다.

미국 방문을 함께 했던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도 미국에 머물던 사흘 동안 노 의원이 드루킹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불편해했다고 전했다.

특파원 간담회에서 드루킹 사건과 관련한 질문을 받은 노 의원은 “방미 성과를 이야기하는 자리이니 따로 얘기하자”고 했고, 다른 원내 대표들이 자리를 뜨고 노 의원만 남아 20분 더 기자들과 이야기했다고 한다.

출국부터 특파원 간담회까지 드루킹 사건이 그의 마음을 짓눌렀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미국 일정을 마친 마지막 날 저녁, 원내대표 다섯 명이 모여 한잔하는 자리에서 용접공 면허를 따고 노동운동에 뛰어든 시절을 회상할 때는 분위기가 좋았다고 한다.

김성태 원내대표와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역시 용접공 면허를 가지고 있어 이야기가 제법 활기찼다고 한다.

미국 출국 당일인 21일 아침 식사 자리에 나타나지 않은 노 의원은 귀국 뒤 집에 잠시 들른 후 어머니를 보러 신당동의 한 아파트로 갔다고 한다.

그가 투신한 아파트가 노모와 남동생이 사는 아파트였다. 본래 그는 23일 오전 9시 30분 열리는 국회 상무위위원회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는 위원회에 참석하지 않은 대신 서면으로 발언 내용을 보내왔다. ‘이정미 대표·노회찬 원내대표 외, 93차 상무위 모두발언’에는 삼성전자 백혈병 사건 해결 및 KTX 승무원 복직과 관련하여 축하 메시지가 담겨 있다.

“모든 허물은 제 탓, 저를 벌하고 정의당은 아껴달라” 유서 남겨 

그가 몸을 날린 걸로 보이는 아파트 17층과 18층 사이 층계참에는 검은색 정장 상의가 발견됐다.

정장 상의에는 신분증이 든 지갑과 정의당 명함, 유서가 들어 있었다.

유서는 총 세 통인데 애초 유가족이 공개를 거부했으나 정의당과 상의한 뒤 정의당 앞으로 남긴 한 통을 공개했다. 나머지 두 통은 가족 앞으로 남긴 것으로 확인됐다.

23일 오후 빈소가 마련된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최석 대변인을 통해 공개된 유서에서 노 의원은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로부터 모두 4천만 원을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어떤 청탁도 없었고, 대가를 약속한 바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다수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인 후원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고 후회의 말을 남겼다.

또 “이정미 대표와 사랑하는 당원들 앞에서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정의당과 나를 아껴주신 많은 분들께도 죄송할 따름이다”라고 사과한 다음 “법정형으로도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라고 밝혀 죽음을 암시했다.

그는 “사랑하는 당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한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라고 했고, 국민들에게는 “모든 허물은 제 탓이니 저를 벌하여 주시고 정의당은 계속 아껴주시길 당부드립니다”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유서를 공개한 최 대변인은 "드루킹 특검은 애초 댓글공작으로 시작한 특검이고, 취지와 목적이 있는데 목적에 부합하지 않은 표적 수사를 했다"며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 상황에” 유감을 표했다.

특검 수사는 계속할 뜻 비쳐

이날 오전 드루킹 사건을 맡은 허익범 특별검사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보고를 접하고 굉장히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며 “굉장히 침통하다"며 심경을 토로했다.

허 특검은 "개인적으로는 평소에 존경해오던 분이셨는데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먼 거리에서 늘 그분의 흔적을 바라봤다"며 "노 의원의 명복을 깊이 빌고 유가족에게 개인적으로도 깊고 깊은 유감의 말을 드린다"고 말했다.

특검은 노 의원에게 돈을 건넨 걸로 알려진 도 변호사를 오늘 불러 조사할 예정이었으나 연기했다.

오늘 같은 상황에서 조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정의당의 ‘표적수사’라는 비난을 의식한 듯 "노 의원이나 그 가족에게 소환통보도 안 했다"며 소환 일정 조율도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3000만원을 노 의원 가족에게 전달했다는 노 의원 부인의 운전기사이자 '경공모' 회원인 장 모씨는 소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의원의 자살로 그에 관한 공소권은 사라지지만 특검의 수사는 계속될 전망이다. 도 변호사도 다시 소환하고 구속영장도 재청구할 예정이라고 한다.

특검 관계자는 "금전을 매개로 노 의원의 발목을 잡거나 대가를 요구한 의혹에 대해 최선을 다해 진상을 규명할 것"이라며 "그것이 고인의 유지를 받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드루킹 사건으로 무너진 진보의 거목

1956년 부산에서 태어난 노회찬 의원은 집안이 유복에서 자랐다. 첼로를 연주할 정도로 음악에 조예가 깊었고 펜싱과 육상에도 뛰어났다고 한다.

경기고에 진학하고 현실에 관심을 두게 된 노 의원은 고려대에 입학하면서 운동권에 뛰어들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용접공으로 노동현장에서 일한 뒤 그는 줄곧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정치에 헌신했다.

1989년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사건으로 구속돼 3년간 옥살이를 하고 2000년 민주노동당 부대표과 2002년 사무총장을 거쳐 2004년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로 처음 원내에 진출했다.

2010년엔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고 2012년 5월 통합진보당 후보로 서울 노원병에 출마 당선했다.

통진당이 화해하면서 심상정 의원과 함께 정의당 창당을 주도한 그는 2013년 ‘삼성 엑스(X)파일’ 사건으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2016년 4월 총선에서 20대 국회의원으로 창원 성산에서 당선하고 줄곧 정의당을 이끌어왔다.

그는 정치적으로 좌파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면서도 친서민적인 친화력을 발휘해 우리나라 진보정치 지평을 넓히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국민이 진보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길을 닦은 진보계의 거목으로 불렸던 그가 정치자금 4000만 원으로 무너진 사실에 국민들도 당혹감을 떨치지 못한다.

그의 소식에 많은 사람이 명복을 비는 한편 “더 많이 받은 정치인도 많을 텐데 왜 그가 죽어야 하느냐”고 반응했다.

최근 국회의원의 특수활동비 3000만 원을 반납했던 그를 떠올리며 "잘못한 만큼 처벌받으면 되지 왜 죽음을 택하느냐? 더한 정치인도 머리 들고 산다”며 애통해했다.  
 
정치인에 접근해 발목잡는 드루킹 일당

애초 드루킹 사건은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관련해 이슈가 되었다.

드루킹과 그 일당이 대통령 선거 당시 문재인 후보 측근인 김 지사에게 선플운동을 한다고 접근해 편향된 댓글을 조작하고 그 대가로 김 지사에게 자신의 측근인 도 변호사를 오사카 총영사로 추천해줄 것을 청탁한 사건이다.

드루킹은 인사 청탁이 이뤄지지 않자 김 지사의 보좌관에게 500만원을 건넨 사실을 빌미로 김 지사를 협박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댓글을 조작해 올린 것도 드러났다.

이 사건과 무관해 보이는 노회찬 의원은 이 드루킹과 관계를 맺게 된 것은 2014년 무렵 드루킹이 조직한 경공모(경제적 공진화 모임) 강연에 강사로 초청받은 것이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경공모는 유시민 등 진보측 인사들을 정기적으로 불러 강연을 열었는데, ‘썰전’에서 유시민은 경공모에서 “묘한 종교적 분위기”를 느꼈다고 말했다.

드루킹은 언플 또는 선플 활동과 회원수를 내세워 유명 인사나 정치인과 관계 맺기를 자주 시도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18대 대선에서는 박근혜 쪽에 줄을 대려했고, 19대 대선 이후에는 안희정 지사에 노골적으로 접근했다. 또 유명인이나 정치인 옆에서 찍은 사진을 회원들에게 보이며 자신의 힘을 과시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노회찬 의원 역시 드루킹 입장에서 보면 포섭해야 할 정치인이었을 것이다.

2016년 총선 무렵 드루킹은 경공모 회원 한 명을 노 의원 측 선거운동원(운전기사)으로 보내고 그의 계좌로 100만원씩 두 차례 총 200만원을 송금했다.

이 사실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적발되어 드루킹 김 씨는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돼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에서 벌금 600만원 형을 선고받았다. 이미 민주당 소속으로 활동하던 그가 정의당에도 줄을 댄 것이다.

특검에서 재조사로 밝혀진 자금 수수, 노 의원은 부인으로 일관
 
김경수 지사와 관련해 경공모와 드루킹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10억 원대에 달하는 경공모 자금을 추적하던 중에 2016년 3월 경공모가 5000만원을 인출해 노회찬 의원에게 전달한 정황을 포착했다.

또 지난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선 직전 경공모 관련 계좌에서 16개월 동안 약 8억 원 가량의 자금 흐름을 포착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적이 있다.

드루킹 측이 노 의원 측에 5000만 원대 불법 자금을 건넨 의혹도 포함됐다. 당시 사건을 맡은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은 선관위에서 제출받은 계좌 136개를 포함, 모두 139개 계좌를 분석한 뒤 정치권과 오간 자금은 없다고 보고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드루킹 사건을 조사하던 경찰은 2016년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의 수사 기록을 넘겨받지 못한 채 시간 부족으로 노 의원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입건하지 못했다. 대신 사건을 그대로 특검에 넘겼다.

지난달 27일 수사를 개시한 특검은 노 의원의 경기고 동창인 도 변호사가 드루킹을 노 의원 측과 연결해주고 노 의원 측에 돈을 전달한 것으로 보고, 5000만 원 중 4190만 원이 반환됐다는 자료도 도 변호사가 조작한 것으로 의심했다.

특검팀은 도 변호사에 정치자금법 위반 및 증거 조작 등 혐의를 적용해 소환, 조사를 벌였다.

도 변호사에 대한 영장 청구가 한 차례 기각됐지만 특검은 금품이 전달된 것을 입증할 진술과 물증을 확보했다며 수사에 자신감을 보였다.

노 의원은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부인해왔다. 특히 노 의원이 차기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국민연금을 관리하는 중책을 맡으리라는 희망으로 드루킹 측이 정치자금을 댔다는 설이 제기될 때마다 자신이 민주당으로 자리를 옮길 것도 아니고 국회의원 당선도 불확실한 때에 자신에게 정치자금을 주었겠느냐고 일갈했다.

그러나 특검으로 노 의원 소환이 초읽기에 들어가게 되자 극심한 압박감과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진보만 1급 청정수여야만 하나?

노회찬 의원이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시점은 선거를 한 달 앞둔 때였다.

그로서는 선거자금이 필요했고, 고교 동기가 아무 청탁 없이 건네준 돈을 의심하지 않고 받았을 것이다.

그의 유서에서도 알 수 있듯, 지지자들의 자발적인 모금으로 이루어진 것을 알았더라면 신고를 하면 될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에는 그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작은 실수였을 수도 있는 것인데, 그에 대한 의혹을 부인하면서 그는 정치적으로 ‘부정직함’이라는 덫에 걸리게 됐다.

애초에 돈을 받은 것보다 아마 그가 부인으로 일관했다는 사실이 더욱 그를 괴롭혔을 것이다.

평생 기득권자와 부패한 정치세력을 규탄해온 자신의 삶을 지탱할 힘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제 와서 사람들은 그의 곤란한 처지를 이해하게 됐지만, 그래도 그것이 죽음으로 갚아야 할 정도로 큰 잘못인지 납득하기 어려워한다.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페이스북에 “설사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 해도 그를 죽음으로 몰 정도로 중대하다고 보진 않는다”며 “진보가 백옥같이 희고, 1급 청정수일 수만은 없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유혹을 받으면서도, 부족한 사람일지라도 진보의 가치를 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애초에 불법 정치자금을 금지하는 법은 정치와 재계의 정경 유착관계를 끊고자 만든 법이었다.

드루킹이 불순한 의도로 자금을 건넸다 하더라도 많은 회원이 자발적으로 모은 후원자금이 불법인 것은 아니다.

우리 정치 지평을 크게 확장하며 출중한 능력을 보인 한 정치인이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후회하며 죽음으로 갚으려한 사실은 고귀하지만 씁쓸한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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