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 전문가 칼럼=기영노 스포츠평론가] 지난 2006년 미국 마이애미에서 벌어진 ‘나스닥 100오픈’테니스 대회는 국제 테니스계에서는 혁명적인 대회로 남아있다.

정식 경기에 ‘호크아이’가 처음 선을 보였기 때문이다.

‘나스닥 100 오픈’ 이후 10여 년 동안 ‘로봇심판’ 호크 아이는 줄곧 심판의 보조역할을 해 왔었다.

그러다가 지난 2017년 11월7일(부터 12일까지 6일 동안)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벌어진 넥스트 젠(NEXT GEN) ATP 파이널에서 선심대신 호크아이가 모든 샷을 판정했다.

졸지에 9명의 선심이 직업을 잃어 버려야 했다.

정현 선수가 ATP 출전사상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던 바로 그 대회였다.

‘ATP 넥스트 젠 파이널 대회’는 21세 이하 선수 가운데 한 해 동안 성적이 가장 좋았었던 8명이 출전한 대회였다.

테니스 계 로봇심판 등장

스포츠 가운데 가장 보수적인 종목인 테니스는 그동안 매 경기 마다 주심 한명과 선심 9명 등 10명의 심판이 경기를 주관해 왔었다.

선수(단식 2명, 복식 4명) 보다 심판이 더 많은 대표적인 종목이었다.

정현이 우승을 차지했던 ‘ATP 넥스트 젠 대회’를 보면 코트 위에 2명의 단식 선수와 주심 한명만 남는다.

코트 위에 단지 3명밖에 없는 셈이다.

선수들이 치는 모든 샷은 로봇심판이 판정하고, 선에 가깝게 떨어져 선수나 관중(또는 주심)이 육안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샷은 전광판을 통해 정확한 낙하지점을 알려줬었다.

호크아이는 테니스 코트 천정에 설치된 10여개의 초고속 카메라가 공의 궤적을 촬영해 떨어진 지점을 정확히 보여준다.

17년 전인 2001년 호크아이가 처음 개발되었을 때 오차 범위는 5mm 였었지만, 지금은 3mm로 세밀해 졌다.

국제테니스연맹(ATP)은 2017 ATP 넥스트 젠 파이널 대회의 성공을 예의주시 하고 있다.

빠르면 2019년부터 호주, 프랑스, 윔블던 그리고 US오픈 등 4대 메이저테니스 대회에서 선심을 보며 생계를 이어가던 심판들이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월드컵 축구대회의 잇따른 오심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 16강전, 독일 대 잉글랜드의 경기에서 1-2로 뒤지고 있던 잉글랜드는 미드필더 프랭크 램퍼드가 동점 슛을 성공시켰지만 골로 인정받지 못했다.

크로스바를 맞은 공이 골라인 안쪽으로 들어갔다 튕겨 나왔는데 주심은 노 골을 선언하고 경기를 속행했다.

그러나 비디오 판독에선 골이 선명했다.

골을 도둑맞고 흥분한 잉글랜드는 이후 평정심을 잃고 2골을 더 내주고 결국 1-4로 패했다. 비난이 거세지자 제프 블라터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오심에 대해 사과했지만 결과는 번복되지 않았다.

역시 같은 대회 16강전, 아르헨티나 대 멕시코전, 아르헨티나 카를로스 테베스의 선제골은 누가 봐도 옵 사이드 였으나 심판은 골로 선언 했다.

경기 후에 테베스도 “옵 사이드인 것을 알았지만 심판이 골로 선언해서 세리머니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결국 멕시코는 아르헨티나에 1대3으로 패해 보따리를 싸야 했다.

2006 독일월드컵 한국, 스위스에 억울한 패배

2006년 독일월드컵 당시 한국 대 스위스 전 주심 오라시오 엘리손도(아르헨티나)의 편파 판정이 있었다.

전반 44분, 스위스 선수가 페널티에어리어 안에서 한국의 김동진 선수를 밀어 쓰러뜨린 것은 명백한 반칙이었으나 엘리손도 주심은 페널티킥을 주지 않았다.

또한 스위스 선수가 두 차례나 자기 팀의 페널티 박스 안에서 핸들링 반칙을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손도 주심은 이를 반칙으로 인정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가장 논란이 되었던 오심은 ‘오프사이드 논란'이었다.

후반 32분 스위스의 알렉산더 프라이는 부심 로돌포 오테로가 오프사이드 깃발을 들어 올린 상황에서 골을 넣었다. 부심의 명백한 오프사이드 선언에도 불구하고 엘리손도 주심은 경기를 그대로 진행시켜 이를 득점으로 인정했다.

첫 경기에서 토고에 이기고 프랑스와 무승부를 기록해 1승1무로 16강 진출 가능성이 있었던 한국은 오프사이드 논란 속에 조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0-2로 스위스에 패배하며 예선 탈락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보스니아의 경우

2014 브라질 월드컵에 1992년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한 이래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은 보스니아는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와 아프리카 강호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만만치 않은 경기를 펼쳤지만 월드컵 첫 본선 진출이라는 성적표에 만족해야 했다.

아르헨티나와 맞붙은 조별리그 1차전에서 우세한 경기를 벌였던 보스니아로서는 그날 주심을 맡은 뉴질랜드의 피터 올리어리의 애매한 판정에 울어야 했다.

0대0으로 맞서던 전반 21분 보스니아는 에딘 제코 선수가 상대 골키퍼와 1대1로 맞선 찬스에서 침착하게 골망을 흔들며 골을 성공시키는 듯했다. 하지만 주심이 오프사이드를 선언한 탓에 보스니아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느린 화면으로 분석한 결과 제코가 팀 동료 즈베즈단 미시모비치의 패스를 받기 위해 움직이는 순간 나이지리아 최후방 수비수 뒤에 위치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오프사이드가 아니었다.

명백한 오심이었다.

FIFA, 결국 월드컵에 비디오 판독 도입

결국 국제축구연맹 즉 FIFA는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전격적으로 비디오 판독 시스템(VARVideo Assistant RefreeㆍVAR)을 도입했다.

그동안 국제 축구 규칙을 관장하는 국제축구평의회(IFAB)는 오심들을 줄이기 위해 심판의 보좌관이 되어 줄 VAR 도입을 줄곧 주장해 왔었는데 결국 받아들인 것이다.

축구는 다른 종목과 달리 땀으로 시작해서 땀으로 끝나는 종목이라 도중에 땀이 식으면 경기력에 영향을 끼치는 종목이라 비디오 판독 도입이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FIFA는 그 같은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정확성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을 해서 VAR을 도입한 것이다.

FIFA는 러시아 월드컵 대회 도중 VAR 때문에 심판의 정확성이 99.3%로 올라갔다는 자평을 하기도 했다.

VAR은 주심이 경기 중 '득점 장면', '페널티킥 선언', '레드카드에 따른 퇴장', '선수에게 카드가 잘못 주어진 경우' 등 4가지 상황에만 활용할 수 있다.

러시아월드컵에 출전했던 각국 축구대표 선수들의 행동(플레이)이 조심스러워 졌다.

심판의 눈은 속이더라도 심판의 눈보다 천배 만배 더 빠르고 정확한 VAR은 속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VAR이 축구의 전통적인 흐름을 헤쳤다고 비판을 하기도 했지만,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요소가 더 많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주심이 VAR을 활용하지 않으면 정확성은 0%로 내려간다.

주심 외에도 프로야구나 농구, 배구, 테니스처럼 경기를 하고 있는 두 팀에게 적어도 한 번씩의 (VAR을 신청할)기회는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현장의 목소리가 컸다.

비디오 판독, 페널티 킥 많아져

VAR은 페널티 킥을 양산(量産)시켰다.

1930년 1회 우루과이 월드컵 이후 지난 20번의 대회 가운데 한 대회 페널티 킥은 18번이 최다였었다.

그러나 러시아 월드컵에서 무려 29번의 페널티 킥이 선언되었다. 또한 대회 기간 나온 169골 가운데 22골이 페널티 킥 골이었다.

한국도 VAR로 일희일비(一喜一悲)했다. 스웨덴과의 F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VAR 때문에 페널티 킥을 허용해서 0대1로 패했고, 독일과의 F조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김영권 선수의 결승골을 VAR로 오프사이드 판정이 번복되어 골로 인정을 받기도 했다.

축구, 새로운 직업 VAR 심판

테니스에서 호크아이의 도입으로 경기 당 선심 9명이 직업을 잃었다. 그러나 축구는 VAR의 도입으로 전담심판 4명이 추가 되어 새로운 직업이 생긴 셈이다.

국내 프로야구도 메이저리그에 이어 지난 2017년부터 비디오 판독이 도입 돼서 매 경기 비디오 판독 실에서 일을 하는 20명(4명씩 5개 구장)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겼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러시아월드컵에 VAR 전담 심판 13명을 추가로 발탁했다.

지난 2016년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앞으로 10년 내 로봇이 대체할 직업군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스포츠 심판은 로봇 대체 확률이 90% 이상으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이미 육상과 수영 등 기록경기에서 전자계측장치가 활용되기 시작했고, 1초에 서너 번 공격이 이뤄지는 펜싱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 때부터 전자 채점 장비가 도입됐었다.

심판도 판단할 수 없는 순간적 찌르기를 센서가 감지해 채점하고 있는 것이다. 잦은 판정 시비와 올림픽 퇴출설이 대두되곤 했으나 전자호구 등장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2020 도쿄 올림픽 인공지능 심판 등장

2020도쿄올림픽에선 이제까지 보다 한 차원 높아진 인공지능시대를 실감하게 할 로봇심판의 등장이 예고되어 있다.

국제체조연맹은 일본의 정보기술업체 후지쓰와 손잡고 체조용 인공지능 심판을 개발해 올림픽 대회에 투입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국제체조연맹은 2017년 10월 캐나다 세계기계체조선수권대회에서 비디오와 레이저, 각종 센서로 동작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체조로봇 시스템을 시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경기 종목에서 선(라인) 위반을 판단하는 선심 역할은 호크아이와 같은 기계에 대체되겠지만, 다양한 정보를 종합하고 경기 흐름 속에서 최종적 판단을 순간적으로 해야 하는 주심 역할까지 기계로 대체될 수 있기 까지는 앞으로도 많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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