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국경에서 평화 시대를 묻는다/윤한택 지음/더플랜/2만5000원
고려 국경에서 평화 시대를 묻는다/윤한택 지음/더플랜/2만5000원

[뉴시안=윤한택 인하대 교수] 필자가 고려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일제 하의 사회경제사학을 계승하겠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사회경제사학의 핵심이 역사의 보편적 발전을 설명, 해명하는 것이었다면 ‘토지’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수단이자 기반이었다.

그리고 토지에 대한 소유관계를 기반으로 역사발전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시기가 ‘중세’였으며, 그 중세의 기원과 전형을 찾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긴요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필자에게 고려의 토지 문제는 과거 중세시대의 성격을 규명하는 것은 물론 우리 사회의 보편적 발전과정을 전망하는 데 결정적 부분으로 인식되었다.

필자가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던 우리나라의 1970년대는 외자에 의존한 수출주도형 경제개발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시기였다. 현실에 저항하기 위해 노동운동과 통일운동 등 다양한 사회운동이 전개되기도 했고 현실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비판적 대안으로 자립적 민족경제에 대한 전망이 모색되기도 했다.

정치경제학과 지정학의 접점인 ‘경계’를 모색하는 도정에서 필자는 고려서북경(高麗西北境), 압록강(鴨淥江) 등의 위치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 지점에 이르기까지는 한국 사회의 정체성론과 타율성론을 담고 있는 일본제국주의 정치경제학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고려토지제도 연구라는 오랜 우회로를 거쳐 와야 했었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왜 하필 고려의 국경이 중심적 문제로 대두하게 되는 것일까? 국경에 관한한 그 영역의 광활함에 주목한다면 고조선도 있고 고구려·발해도 있을 텐데, 굳이 고려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재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헌법 제 3조)고 규정하고 있다. 이미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 규정의 역사적 연원은 일제가 강요했던 간도협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일제는 개향에 이어, 청일전쟁과 노일전쟁을 거치며 우리 영토를 반도화시켜 나갔고, 또 이를 기반으로 한반도를 정치경제적 식민지로 만들어 갔다.

그러나 반도사관의 연원을 따져 묻게 되면 우리는 결국 고려의 역사에 당도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 영토의 서북국경이 한반도의 압록강(鴨綠江)으로 한정된 역사적 연원이 『고려사(高麗史)』의 기록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서부터 비롯했기 때문이다.

『고려사(高麗史)』의 기록이 엄밀한 사료비판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제국주의의 지정학을 정당화하기 위한 근거로 오용되었고, 그것이 현재까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져 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같은 사실(‘반도사관’이『고려사』를 오용한 것)은 일제 식민지사관을 극복·청산하는데 고려 국경 연구가 결정적 중요성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나아가 일본제국주의 지정학 비판이라는 맥락에서 고려 국경사 복원의 필요성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평화와 경계가 작동하는 새로운 시대로의 이행

처음에 필자는 정치경제학을 바탕으로 고려 토지와 그 제도였던 전시과 (田柴科) 연구에 집중했다. 그러나 이미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토지와 생활공간을 연결시켜 토지연구의 실천적 함의를 찾기 위한 연구의 내적 동기에 따라 필자의 관심은 국경문제로 옮겨갔다.

국경에 대한 본격적 연구는 다소 우연한 계기에서 시작되었다. 필자가 지정학을 바탕으로 한 고려 국경사 연구에 몰입하게 된 것은 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의 사업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에서는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간행했던 『조선사』의 번역 및 정밀해제사업을 진행하고 있었고, 그 중에서 고려사 부분을 필자가 담당하게 된 것이다.

이 사업에 참여하면서 필자는 이른바 일제의 ‘반도사관’의 실체를 확인하였고, 그 근거가 되었던 『조선역사지리』의 관련 부분을 역주하게 되었다.

또 반도사관에 의해 『고려사』와의 연관성을 의도적으로 배제·분리했던 『요사(遼史)』를 비롯하여 중국 정사(正史), 중국과 한국의 관련 지리지(地理志), 문집, 금석문(金石文) 등 사료를 광범위하게 검토·비판하면서 이들을 유기적으로 종합하려 노력했다.

이 책은 이같은 과정을 거쳐 작성한 논문 5편으로 엮었다. 이와 함께 『조선역사지리』 중에서 고려서북경(高麗西北境) 관련 부문에 대한 비판적 역주를 부록으로 실었다.각 영역이 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냉전과 분단의 시대에 지식인의 삶이란 대부분 각 진영에 귀속되기보다 경계선상에 서 있기 십상이었다.

독일의 송두율 교수가 강조했던 것처럼 경계인은 이 시대 지식인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경계’는 전쟁을 바탕으로 구축된 각 진영이 지배하는 시대에 지식인들이 숙명적으로 겪어야 할 실존적 삶의 공간이었다. 각 진영이 지배하는 지난 시대에 좌-우, 내부-외부, 하층-상층 사이를 끊임없이 동요하면서 부끄러운 경계로 되돌아갔던 모습은 지식인 한두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거나 비난할 일이 아니었다.

오랜 냉전기간을 거치며 내재화한 진영모순이 해소・정리되는 데는 여전히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아직도 경계는 양 진영이 추구하고 있는 영역의 확대와 침략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경계가 새로운 인식과 실천의 터전이자 중심원리가 되기에는 여전히 많은 난관이 예상된다.

직관적으로만 보더라도 모든 존재의 인식과 실천이 경계에서 시작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경계가 분화하여 마치 그물의 끈과 코처럼 상호 연관 관계를 이루게 된다.

여기서 끈인 경계가 코인 영역을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코가 탄생하면 끈을 제약하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영역이 거꾸로 경계를 제약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경계가 영역보다 먼저 탄생한 존재임을 부정할 수 없다.

바야흐로 전쟁과 영역이 지배하던 시대로부터 평화와 경계가 작동하는 새로운 시대로 이행하고 있다. 새 시대는 지금까지 영역의 지배 속에서 위태롭던 경계가 선차성을 다시 회복하고, 네트워크 형성이라는 새로운 역사 인식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영역국가’로부터 ‘경계국가’로의 이행이다. 필자의 고려 국경사 연구가 이같은 큰 역사의 흐름에 기여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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