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최종현 SK 회장 (사진=뉴시스)

[뉴시안=송범선 기자] 고(故) 최종현 SK 회장이 오는 26일로 타계 20주기를 맞는다.

최종현 회장은 세계 최초 CDMA 상용화로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의 기반을 닦은 '늘 10년을 내다본 기업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젊은 시절 최종현 회장은 석유가 나지 않는 대한민국 땅에서 석유사업을 시작하겠다고 선포했다. 이에 대해 많은 이들이 불가능한 꿈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최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최 회장은 장기적 안목과 중동지역 왕실과의 석유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1983년부터 해외유전 개발에 나섰다. 이는 성공확률이 희박하다며 주변에서 계속 만류했다. 하지만 최 회장은 뚝심있게 사업을 추진해 이듬해인 1984년 북예멘 유전개발에 성공했다. 대한민국이 무자원 산유국 대열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SK 관계자는 “현재 최 회장 20주기를 맞아 업적과 경영철학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에너지·화학·섬유·반도체 등 다양한 사업과 함께 종합 ICT기업을 지향하며 여러 사업 M&A를 진행하고 있다”며 “차원이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SK 관계자는 “최종현 회장 이후에도 순탄대로를 밟아왔다”고 말했다.

이어 “최태원 회장이 1998년 취임할 당시 SK그룹은 매출 37조4000억원, 순이익 1000억원, 재계 순위 5위였다. 그러나 현재는 매출 158조원, 순이익 17조3500억원, 재계 순위 3위 대기업으로 크게 성장했다”고 언급했다.

14일 최종현 회장 20주기 사진전이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사옥 1층 로비에서 개막했다. (사진=뉴시스)

최종현 회장, 어떻게 사업을 발전시켰나

최종현 회장은 자본, 기술, 인재가 없었던 1973년 당시 선경(현 SK)을 세계 일류 에너지·화학 회사로 키우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천명했다.

당시만 해도 섬유회사에 불과한 SK가 원유정제는 물론 석유화학, 필름, 원사, 섬유 등에 이르는 수직계열화를 선언했다.

또 최 회장은 미래설계가 그룹 총수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산업동향 분석을 위해 1984년 미국에 미주 경영실을 세운 이유다. 이후 정보통신 분야를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은 최종현 회장은 미국 ICT 기업들에 투자하고 현지법인을 설립해 이동통신사업을 준비했다.

앞선 준비 끝에 1992년 압도적 격차로 제2이동 통신 사업자에 선정됐다. 그러나 특혜시비가 일자 사업권을 자진 반납했다. "준비한 기업에는 언제든 기회가 온다"고 내부를 설득한 최 회장은 실제로 2년 뒤 문민정부 시절인 1994년 한국이동통신 민영화에 참여,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했다.

최근에는 제 4이동통신 사업자 얘기까지 나온다. 현재 업계 1위를 달리고 있지만 후발주자의 등장에 긴장을 놓치면 안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SK텔레콤 관계자는 “통신 사업에 있어서 제 4이동통신은 논의가 꾸준히 돼 왔던 내용으로 현재 상황에서는 크지 않은 이슈다. 우리의 역량에 최선을 다하면 후발주자에 대한 대처는 충분히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SK의 적극적인 인재 육성

최 회장은 1970년대부터 인재양성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당시는 대한민국이 아직 개발도상국이자 자원빈국 처지였다. 그러나 최 회장은 '일등국가가 되기 위해선 세계적 수준의 학자들을 많이 배출해야 한다'며 인재를 키우면 얼마든지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는 우선 1972년에 조림사업으로 장학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서해개발(現 SK임업)을 설립했다. 1974년에는 사재를 털어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은 당시 서울 집 한 채 값보다 비싼 해외 유학비용은 물론 생활비까지 파격적인 지원을 했다. 재단이 44년간 양성한 인재는 740명에 달하는 해외 명문대 박사가 나오고 이 중 80% 이상이 교수로 재직하는 등 국내외 곳곳에서 거목으로 자랐다.

화장(火葬)을 유언으로 실천...장례문화 개선 전기 마련

최 회장은 폐암으로 갑작스레 타계하기 직전 "내가 죽으면 반드시 화장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묘지 난립으로 좁은 국토를 효율적으로 활용 못하는 것을 평소 안타까워했기 때문이다.

그의 장례가 유언대로 화장으로 치러지자 큰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1998년 20%에 불과했던 화장률은 이듬해 30%를 넘는 등 매년 급증했고, 현재는 82%에 달할 만큼 대중화됐다.

최 회장이 남긴 경영 DNA는 대를 이어 고스란히 전해졌다. 장남인 최태원 회장은 2011년 하이닉스 인수 등을 통해 반도체와 바이오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또한, 최종현 회장이 남긴 사업보국과 사회공헌 경영철학은 최태원 회장의 사회적가치와 공유인프라 전략 등으로 진화 발전해 여러 이해관계자의 더 큰 행복을 키워나가고 있다.

저작권자 © 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