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현대를 K리그 2년연속 그리고 통산 6회 우승 금자탑을 쌓은 최강희 감독이 중국 텐진으로 떠난다. (사진=뉴시스)
전북 현대를 K리그 2년연속 그리고 통산 6회 우승 금자탑을 쌓은 최강희 감독이 중국 텐진으로 떠난다. (사진=뉴시스)

 

기영노 평론가
기영노 스포츠 평론가

[뉴시안 이슈추적=기영노 뉴시안 자문위원] 최강희 감독이 3년간 255억원(세금, 코칭스태프 연봉 포함)이라는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고 중국 슈퍼리그 텐진 취안 젠 팀과 계약을 맺었다.

최강희 감독은 전북 현대에서 국내 최고연봉 5억(플러스알파)을 받았었기 때문에 몸값이 무려 10배 이상 뛰었다.

더욱 파격적인 것은 3년간의 계약기간 도중이 성적 부진 등의 이유로 경질이 되더라도 나머지 연봉을 모두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요즘 중국 슈퍼리그는 국내 감독들은 물론 세계적인 명장들의 무덤이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최 감독은 ‘적어도 무덤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중국 슈퍼리그 팀들은 자신들이 한 약속을 뒤 짚는 경우가 허다하다.

FC 서울로 복귀한 최용수 감독은 그동안 중국에 진출한 감독 가운데 비교적 빅 클럽이라고 할 수 있는 장쑤 쑤닝 팀을 맡아서 첫 시즌에 슈퍼리그와 FA 컵에서 모두 준우승을 차지하는 성과를 냈었다.

그러나 이듬해에 슈퍼리그 8라운드까지 8경기에서 1승도 올리지 못하고, 상하이 상강과 AFC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16강전에서 패해 탈락하면서 지휘봉을 놓아야 했다.

 

중국 슈퍼리그는 외국 감독들의 무덤

국내에서 가장 이력이 화려한 홍명보 감독도 취임을 하기 전에는 항저우 팀에서 젊은 선수들 ‘육성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조건으로 감독직을 수락했다. 그러나 구단의 임원진이 교체 되면서 감독의 고유 권한인 주전 선수 선발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는 등 텃세를 부렸다. 홍 감독이 물러날 당시 항저우 팀은 4승2무4패 승점 14점으로 16팀 중 중위권(10위)에 놓여 있었다.

한국 감독 가운데 중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이장수 감독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장수 감독은 2016년 5월 당시 무 승에 그치던 장춘 야타이 팀을 13위로 끌어 올리며 결국 슈퍼리그에 잔류 시켰다. 그러나 2017년 시즌 초반 5경기에서 1무4패에 그치자 가차 없이 해고의 칼날을 받아야 했다.

한국에서 높은 인지도와 좋은 성적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던 감독들이 중국 무대에서 중도에 경질 되면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있다. 경질되는 과정도 좋지 않은 성적과 함께 구단수뇌부와의 불화설도 나온다.

최강희 감독이 중도에 경질이 되더라도 남은 연봉을 다 받기로 했다고는 하지만, 만약 최 감독이 중국에서 성공하지 못한다면 한국 K리그의 자존심마저 무너져 내릴 판이다. 최 감독은 한국 프로축구의 상징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최 감독이 중국행을 결심한 이유도 “올해 사상 최초로 상, 하위 스플릿으로 갈라지기 전에 (조기)우승을 결정짓는 순간 썰렁한 무엇을 느꼈다. 이제 전북 현대 팀에서 더 이상 올라 갈 곳이 없다는......”

최강희 감독은 과거 남자프로배구 삼성 화제를 이끌었었던 신치용 감독, 프로야구 김응룡 감독과 함께 국내 프로스포츠 ‘3대 감독’으로 꼽히고 있다.

 

남자배구의 전설 신치용 감독

남자배구 신치용 감독은 한전에서 15년간 코치로 있다가 1995년 삼성 화제 창단 감독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지도가 생활을 시작했다.

심치용 감독은 김세진, 신진식이라는 좋은 국내 선수, 가빈이라는 최고 외국 선수가 있기는 했지만 ‘슈퍼리그 7연패’라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성적을 올렸다. 그리고 모두 9번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남자프로배구 즉 V리그 챔피언 결정전에서 딱 세 번밖에 패하지 않았는데, 2005~6, 2006~7시즌 친구 김호철 감독이 이끄는 현대 캐피탈, 2014~5 제자 김세진 감독이 이끄는 OK 저축은행에게 패했다.

신치용 감독이 V리그에서 9번이나 우승을 차지하는 동안 강만수, 신영철, 김호철 등 명장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야 했다.

 

프로야구 불멸의 기록 김응룡 감독의 9전9승

김응룡 대한야구소프트볼 협회회장은 최초가 많다.

1977년 중미 니카라과에서 열린 사실상 세계선수권대회인 인터콘티넨탈 컵(대륙 간 배)대회에서 예선에서 두 번이나 패배를 안긴 미국과 결승전에서 고 최동원 투수의 호투로 5대4로 이겨 극적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야구의 사실상 첫 세계대회 우승이었다. 또한 2004년 12월1일 에는 선수출신으로 처음 프로야구단(삼성 라이온즈) 사장에 취임을 했다.

김응룡 감독은 1m90cm에 120kg의 큰 체중 때문에 현역시절부터 코끼리라 불렸는데, 해태 타이거즈 팀을 맡아서 1983년에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1986년부터 1989년까지 4연패를 했고, 1991, 1993년 그리고 1996년과 1997년 2연패 등, 해태 타이거즈 팀에서만 9번 한국시리즈에 진출해서 9번 모두 우승을 차지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2001년 삼성 라이온즈 팀 감독에 취임해서 2002년 삼성 라이온즈를 한국시리즈 첫 우승팀(1985년 우승은 전, 후기리그 통합우승)으로 만들었는데, 2012년 한화 이글스 팀 감독을 맡아 2014년까지 3년간 계속해서 최하위를 맴돌아 ‘해태와 삼성에서 쌓은 명성을 다 까먹었다’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었던 최강희 감독

프로축구 전북 현대 팀의 최강희 감독도 남자배구의 신치용, 프로야구 김응룡 두 감독 못지않은 성적을 올렸다.

최강희 감독은 2005년 전북 현대 모터스에 감독으로서 부임을 하며 그 해 FA컵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6년과 10년 후인 2016년 AFC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 2009년, 2011년, 2014년, 2015년, 2017년, 2018년 K리그 클래식을 6회 우승하며 전북이라는 팀을 중위권에서 K리그 클래식 신흥명문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최 감독의 트레이드마크는 ‘닥 공’이다. 2골을 내 주면 3골을 넣고 이긴다는 닥 공 축구는 상대 팀들의 공포의 대상이었다. 또한 역대 K리그 최고의 히트상품이기도 하다.

20일 전북 현대가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KEB 하나은행 K리그 통산 6회 우승을 달성하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20일 전북 현대가 2018 KEB 하나은행 K리그 통산 6회 우승을 달성하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강희대제’는 중국에서 붙여준 별명

최강희 감독이 이끄는 전북 현대는 지난 2006년 AFC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E조 예선에서 중국의 다렌 스터, 그리고 8강전에서 중국의 상하이 선화 팀을 물리치고 결승전에서 알 카라마 SC(시리아)를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중국 슈퍼리그 팀들은 겨우 ‘프로축구 감독 2년 차’였던 최강희 감독의 용병술을 높이 평가해 ‘강희대제’라 부르기 시작했고, 일부 팀에서는 감독제의를 해 오기도 했다.

중국 팀들은 그로부터 10년 후인 2016 AFC 아시아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전북 현대가 중국의 간판 팀이 상하이 상강을 닥 공 축구로 5대0으로 완파하자 공포감마저 느끼기 시작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시황제 이후 황제라는 칭호는 중국의 절대 권력자를 상징한다. 단 한명에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황제 자리에 강희대제는 불과 8살에 즉위했다. 청 태조 누루하치 부터 태종 홍타이지 그리고 아버지 순치제에 이어 4대 황제였다.

최강희 감독을 축구에 관한 한 ‘황제 급’으로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최 감독은 개인적으로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 읍에 있는 전북 현대 팀의 훈련장의 상징인 ‘봉동 이장’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톈진 취안 젠은 2017년 슈퍼리그 승격

톈진 취안 젠 팀의 모회사는 건강식품을 만드는 회사다. 슈퍼리그 16팀 가운데 광저우 헝다, 상하이 상강, 장쑤 쑤닝 같은 빅 리그 팀에 속하지는 못하지만 알차게 투자를 한다. 톈진에 있는 하이어 교육원구 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3만 명을 수용한다.

2016년 갑 급 리그(2부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 2017년부터 슈퍼 리그로 승격되었다.

2017 시즌 슈퍼리그로 승격되자마자 돌풍을 일으키며 3위를 차지해 2018 AFC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했다.

그러나 8강전에서 일본의 가시마 앤틀러스 팀에 0대2(원정), 0대3(홈), 0대5로 한골도 넣지 못하고 패해 탈락했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탈락이 파울로 소자 감독의 퇴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주요 선수로는 브라질 국가대표 출신의 루이스 파비아누와 알렉산드리 파투, 한국의 권경원 등이 있다.

루이스 파비아누는 브라질 국가대표 출신으로 2010 남아공월드컵 때 맹활약 했다. 2016년 브라질의 상파울루 팀에서 텐진 취안 젠 팀(연봉 35억원)으로 이적해 22골을 넣으며 팀을 슈퍼리그로 올려놓았다.

알렉산드리 파투는 2006년에 프로에 데뷔해 AC 밀란, 첼시, 비야레알 등 명문 팀을 두루 거쳤다. 빠른 스피드와 간결한 볼터치로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수준급 플레이를 펼친다.

권경원은 수비 형 미드필드와 센터 백을 모두 볼 수 있는 키 1m90cm의 대형 수비수다. 전북 현대 팀에서 프로선수생활을 시작했고, 2017년 톈진 취안 젠 팀이 알 아흘리에게 132억원의 이적료를 주고 데려왔다. 권경원의 연봉도 계약기간 5년에 37억원이나 된다. 신태용 호에 잠깐 승선해 대표 경력을 쌓았다. 아직 병역미필 상태다.

 

곳곳에 도사린 함정들

국내축구 K리그에서의 성공이 최강희 감독의 중국 슈퍼리그에서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앞서 이장수, 홍명보, 최용수 등 국내 내로라하는 감독들의 사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중국 슈퍼리그는 프리미어리그, 분데스리그 같은 유럽리그들에 비해 구단 운영 시스템이나 인프라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구단과 선수간의 파벌이나 텃세가 심해 외부에서 온 지도자가 팀을 장악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성적이 조금만 기대에 미치지 못해도 감독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 써야 하는 등 감독에 대한 인내심이 매우 부족하다.

20년 전인 1998년 산둥 루넝의 김정남, 우환 홍진룽의 박종환, 선전 핑안의 차범근 그리고 충칭 루신의 이장수 감독이 국내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대륙정벌에 나섰지만 이장수 감독만이 ‘충칭의 별’로 불리며 성적을 냈을 뿐 최근의 홍명보, 최용수 등에 이르기 까지 지난 20년간 성공한 감독은 극히 드물다.

더구나 최강희 감독에게는 아킬레스건이 2개 있다.

하나는 국가대표 감독 울렁증과 심판매수 사건이다.

최강희 감독은 지난 2011년 12월 전임 조광래 감독의 후임으로 국가대표 감독을 맡았었다. 당시 최 감독은 국가대표 감독을 여러 번 고사하다가 “2013년 6월, 최종예선 까지만 대표팀을 맡고, 브라질월드컵(2014) 본선은 다른 감독에게 맡긴다”는 이상한 조건을 내걸었었다.

지구상 모든 축구감독들의 마지막 꿈은 ‘월드컵 본선 감독’이다. 자신이 맡고 있는 팀이 브라질이나 프랑스건 베트남이나 네팔 팀이건 마찬가지다. 그런데 최강희 감독은 ‘월드컵 본선 감독’이라는 영광스런 자리를 차 버린 것이다.

축구계 일부에서는 최 감독이 ‘국가대표 울렁증’이 있는 것 아니냐, 아니면 신으로부터 ‘국가대표 팀을 맡으면 안 된다’는 계시를 받은 게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최 감독이 축구를 장기적으로 보고 팀워크를 다져나가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성적을 내야 하는 국가대표 감독이 성격상 맞지 않는데다 아시아권을 넘어서 유럽이나 남미 팀들에 대한 자신만의 트라우마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최 감독은 중국에서 성적을 내지 못하면 ‘강희대제’로 불리기는커녕 ‘봉동 이장’으로 돌아가라는 소리를 들을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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