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상의 민낯. 우리에겐 어떤 어워드가 필요한가?
대종상의 민낯. 우리에겐 어떤 어워드가 필요한가?
  • 뉴시안
  • 승인 2018.11.0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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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시사평론가
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

[뉴시안 전문가 칼럼=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  지난달 22일 개최된 제55회 대종상 영화제는 어이없는 촌극을 연출하며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었다.

귀빈석은 비었고, 19개 부문 중 11개 부문이 대리수상으로 진행되었다. MC가 두 개나 트로피를 대신 받느라 바빴고, 수상자와 일면식도 없을 뿐 아니라 해당 영화도 본 적 없는 대리 수상자가 단상에 올라가자 정작 해당 영화의 제작자 대표는 무대로 향하다 발길을 돌리는 해프닝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잡혔다.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러나 이는 '예고된 참사'였다. 한 매체는 관련 보도를 하면서 “예심 과정에서 영화인총연합회 산하 단체들의 의무적 참여가 보장되다 보니 대표 작품이 없는 사람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거나, 자신이 관여한 작품을 추천한 사람도 있었고, 영화제 프로그래머로서 자질 논란이 제기된 인물이나, 국내 영화계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인사들이 심사위원에 참여한 것은 특혜성으로 보인다는 지적이 내부에서 나오기도 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심지어 예심 과정에서 조직위원장이 특정영화를 후보작에 넣도록 종용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었다. 물론 수상 결과를 놓고 보면, 심사위원들은 이런 압력들이나 낡은 관행들을 극복하고 소신을 지켜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소문들이 떠돌아다니는 한 영화 관계자들이나 배우들은 대종상의 권위를 신뢰할 수 없게 되고, 영화제를 위해 스케줄을 비워두지 않게 되며, 대리 수상은 기정사실이 되고 만다. 

문제는 그렇게 참사가 예견되는 상황에서도 대종상 조직위원회가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는 점이다.

조명협회나 영화음악협회 등 산하 단체나 이벤트 실무자들에게 “대리수상자 마련하라”고 지시하는 일로 책임을 떠넘길 수 있다고 믿는 조직위원회의 권위주의적 태도는, 영화제 당일 날 참석치 않는 후보에게는 상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 상의 권위를 ‘출석상’ 수준으로 전락시킨 이전 조직위원회의 태도와 다를 바 없다.

모름지기 영화 시상식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라면 영화계 현장과 긴밀한 의사소통을 하며 끝까지 수상 후보들이 자리에 참석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그런 노력 가운데 무너진 신뢰가 되살아나기도 하고, 알아서 대리 수상자들이 결정되어 자리를 지키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55회 조직위원회는 수상 결과만 그럴싸하다면 우리끼리 행사를 치러도 된다는 식의 꼰대다운 인식을 버리지 않았고, 결국 영화제는 엉뚱한 희생양을 만들며 파행으로 치닫게 된 것이었다. 

 

대종상 홈페이지 이미지 그래픽 (화면 캡쳐)
대종상 홈페이지 이미지 그래픽 (화면 캡쳐)

이 모든 문제의 중심에 한국영화인총연합회가 있다.

명칭만 보면 모든 영화인들을 아우르는 단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영화계 원로들의 모임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총독부령에 의해 구성된 <조선영화인협회>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 단체는, 태생부터 조선의 영화인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겉으로는 지부와 산하 단체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지부와 산하 단체의 대표들이 이사회를 구성해서 모든 결정을 하고, 이들이 협회장을 뽑는 대의 구조는, 소수 친일 영화인들이 사실상 마음대로 모든 결정을 할 수 있는 구조였다.

일제는 이 협회만을 유일한 대의기구로 인정하고 돈과 힘을 모아 주었고, 협회를 장악하고 있는 친일 인사들은 이를 등에 업고 영화인들의 생사여탈을 결정했다. 이는 한국연극협회 등의 다른 예술협회들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이런 관행은 후에 권위주의 정부로 이어지면서 문화예술인들을 지배하는 구조가 되었던 것이다.

대종상은 이 구조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어워드였다. 애초에 돈이 되는 해외 영화의 개봉권을 나눠주기 위한 목적을 갖고, 이 이권을 향해 줄을 서도록 고안된 시상식이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가 성숙해지고 시장이 넓어지면서, 더구나 디지털과 모바일로 세상이 투명해 지는 상황 속에서, 정부는 더 이상 이권이나 혜택 등으로 문화예술계를 통제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를 주관하고 있는 협회는 여전히 그 관행에 젖어있는 원로들 손에 있으니, 갑질을 그치기 어려운 것이다.

더욱이 이런 적폐에 기생하는 사람일수록 더 큰 권력을 누리기 위해서 혼신을 다하기 마련인데, 그러다 보면 권력을 가진 자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되어, 결국 그가 소속된 단체나 그 단체가 주관하는 행사들을 희생시키게 되는 것이고, 대종상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지난 권위주의 정권을 통해서 협회는 잃었던 권위를 되찾을 수도 있다는 꿈을 꾸기도 했다.

권력을 잡은 자들은 좌파에 물든 영화계를 정화한다는 명목 아래 더 협소한 이너 써클에게 이권을 몰아주었고, 그 와중에 대종상의 지원금은 오히려 깎여나갔다.

블랙리스트를 제대로 관철시킨 후 다시 늘려줄 생각이었는지 모르지만, 이 조치는 조직위원회가 더욱 협찬 기업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고, 이로 인한 부작용이 지적되자 조직위원회는 디지털 기술을 인기투표 형태로 심사에 적용하는 꼼수를 내놓았다가 배제해야 할 영화에 무려 15개 부문을 몰아주는 해프닝을 연출하기도 했다.

입맛에 맞지 않는 수상 결과를 낸 이들이 정권의 눈 밖에 나면서 총연합회와 조직위원회에 분쟁이 생기고 소송이 난무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정해진 순서였고, 아이러니하게도 권력의 유한성을 웅변해 주는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했다.  

대종상을 살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한국영화인총연합회가 대종상에서 완전히 손을 떼야 한다. 그럴 의지가 없다고 한다면 정부가 나서서 철저한 감사를 한 뒤, 개최권을 박탈해야 한다.

이렇게 과거의 부조리와 완전히 손을 끊은 후 현장 영화인들과 학계가 주축이 되어 아예 대종상 조직위원회를 문화재단이나 문화법인으로 만들어 공적 영역에서 독립하게 한 뒤 충분히 지원을 해 줘야 한다.

단지 시상식을 치러내는 지원만이 아니라, 한국의 영화산업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며, 한국 영화예술의 미래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토론하고, 연구하고, 결과를 공유하면서, 시상식이 거대한 인큐베이터가 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더구나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4차 산업혁명이 숨가쁘게 진행 중인, 디지털 민주주의 시대가 아닌가!

제55회 대종상 영화제는 한국 영화계를 투사한 X선 사진이었다. 환부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으며, 어떤 곳들이 건강한지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하는.

진단과 치료는 전문 의료인들이 맡아야 하는 것처럼, 이제부터라도 진정한 전문가들에게 메스를 맡겨야 한다. 이 시간에도 이권 때문에 소송을 일삼는 동취(銅臭)에 꼬이는 무리들이 아니라.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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