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과 여성의 가사분담을 다룬 일러스트 (그래픽=뉴시스)

[뉴시안=홍소라 파리 통신원] 명절이 되면 타국살이를 하는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외롭고, 한편으로는 미안해진다.

한국의 사람들은 모두 일상에서 벗어나 가족의 품으로 향하는데 여전히 먼 곳에서 다른 날과 다름 없는 하루 하루를 보내는 것이 외로운가 하면, 같은 이유로 부모님께 너무나 미안한 것이다. 다행히 지난 추석에는 이모님 내외께서 부모님과 함께 추석을 쇠셨다 하여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추석 연휴가 끝난 이들의 표정이 다양하다. 모처럼 찾아온 휴가의 달콤함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이놈의 추석 따위 아예 없어졌으면 좋겠다'며 그동안 받은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언젠가부터 명절마다 이혼율 증가, 가족 내 불화 등의 키워드가 빠지질 않는다. 명절 음식과 차례상을 차리고 또 치우고 하는 등의 가사 노동의 강도가 최고치로 증가하고, 그 노동이 보통 여성을 향해 있다는 것은 그 주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프랑스에서도 가사 노동의 분담은 매년 거론되는 주제이다.

프랑스 통계청에 의하면 2010년, 프랑스에서 여성의 가사 노동 시간은 평균 일주일에 세 시간 26분, 남성의 경우는 두 시간으로 여성이 집안일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프랑스에서도 가사 노동은 여성이 훨씬 더 많이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불균형의 정도는 한국과 비교했을 때는 훨씬 낮았다. 

지난 2014년 OECD 조사에 의하면 한국의 남성이 가사를 분담하는 비율은 16.5%에 불과했다. 프랑스는 38%였다.  참고로 OECD 평균은 33.6%였고, 남성과 여성이 반반씩 가사를 분담하는 국가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여성의 가사분담률 62%, 남성은 38%. 이러한 프랑스의 현실은 한국보다는 조금은 나아 보인다. 하지만 설문에 응한 여성 중 38%가 남편이나 동거인이 집안일을 하는 동안 그 일을 얼마나 잘 해내는지 지켜본다고 답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정신 노동’을 담당하는 것도 대부분의 경우 여성

여성은 실제로 집안일을 하지 않는 동안에도 심리적으로는 그 일에 동참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여성의 가사 노동 분담은 수치로 나타난 62%보다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배경에서 프랑스에서는 작년부터 가사의 ‘정신적 노동(charge mentale)’ 담론이 점차 전파되고 있다.

쉽게 말해, 살림살이에는 요리, 설거지, 빨래, 청소기 돌리기, 걸레질, 화장실 청소, 쓰레기 비우기, 아이 돌보기, 장보기, 세금 및 공과금 내기 등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 활동을 언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계획하는 ‘정신적 노동’도 포함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녀 커플의 경우, 이러한 ‘정신 노동’을 담당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여성이기 때문에 현재 드러난 것보다 더욱 큰 불균형이 실제적으로 존재한다는 지점 또한 강조한다.

사실 ‘정신적 노동’ 담론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모니크 헤코(Monique Haicault)가 1984년, 학술지 <노동사회학 (Sociologie du travail)>에 기고한 논문에서 소개한 바 있다. 

하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아마도 표면적으로 보이는 가사 노동의 불균형이라도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였을 것이다. 프랑스 사회가 가사노동 중 ‘정신적 노동’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5월부터였다. 

작가 겸 일러스트레이터인 엠마(Emma)가 소셜네트워크에 ‘물어보지 그랬어(fallait demander)’라는 제목의 웹툰을 올린 것이 도화선이 되었다.

일러스트레이터 엠마(Emma)의 ‘물어보지 그랬어(fallait demander)’

엠마의 웹툰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아내는 일을 마치고 돌아와 저녁 식사 준비를 하며 동시에 아이들을 돌본다. 

아이들에게 정신이 팔려 있던 나머지 끓고 있던 냄비에서 내용물들이 넘쳐 흐르고 만다. 이에 놀란 남편은 “아 이런 ! 지금껏 뭘 한 거야?”라고 한 마디 한다. “뭘 했냐니? 내가 ‘다’ 했잖아! ‘다’ 내가 했다고!”라고 대답하는 아내. 남편은 “나한테 말하지 그랬어. 내가 도와 줬을 텐데 !”라고 말한다. 

프랑스 가정에서도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장면을 두고 엠마는 색다른 설명을 선보인다. 


가정은 사회처럼 돌아가지 않는다

위의 가정에서 남편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아내에게 물어 봐야 했다면, 아내는 가정의 운영을 담당하는 프로젝트 매니저와 같고, 남편은 그 임무를 집행하는 에이전트가 된다. 

하지만 가정은 회사처럼 돌아가지 않는다.

엠마는 웹툰에서 현재 프랑스 가정에서는 이 프로젝트 매니저가 에이전트의 역할도 함께 담당하기 때문에 과도한 업무가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결국 엠마에 따르면, 동거인이 “내가 할 일이 뭐야?”라고 물어보는 것운 ‘정신적 노동’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행동일 뿐이다. 
엠마의 웹툰이 나온지 1년이 넘은 2018년 10월 현재, 프랑스에서 정신적 가사 노동이라는 용어는 이제 전혀 생소하지 않다. 

신문, TV, 라디오 등 각종 미디어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이 되었다. 그 동안 프랑스 가정의 풍경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아직까지 수치로 나타난 바 없다. 

하지만 가사에 ‘정신적 노동’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사회 전반이 이야기하고 있는 현재는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을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도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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