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평론가
김성수 평론가

[뉴시안=김성수 편집 자문위원/시사문화평론가]  지난 24일 오전 11시 12분, 사상 최악의 통신대란이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졌다.

KT 아현지사 통신구에서 발생한 화재 때문에 마포구, 서대문구, 중구, 용산구, 은평구 등 서울의 5개 자치구와 고양시의 일부, 영등포 여의도 일대의 일부 KT 사용자들까지 통신 장애를 겪어야 했다.

KT를 애용한 소비자일수록 더욱 큰 피해를 입었는데 휴대폰과 인터넷, 유선전화, TV가 모두 KT에 가입되어 있는 사용자는 가히 원시사회로 돌아간 것과 같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재난 대비 문자까지도 받을 수 없었으니까. 특히 KT 통신망으로 결재시스템을 구축했던 소상공인들은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그야말로 천재지변에 준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이미 양심적인 탐사 기자들이 지적한 바대로,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국가 기간통신망의 민영화’라는 적폐이고, 그 주범은 낙하산으로 내려와서 회사를 점령한 뒤 업무효율화란 미명 아래 기지국들로 부동산 잔치를 벌여 경영실적을 부풀리고, 정규직을 내쫒은 뒤 안전을 외주화하고, 시설 투자를 도외시하면서 통신의 공공성을 해친 관피아들이다. 

한겨레 신문의 26일자 보도에 따르면 이석채 회장 시절 KT는 ‘국사 최적화’란 이름으로 전국 지사·지점을 재편해, 326개였던 지사를 236개로 축소했고, 현 황창규 회장 취임 뒤에도 236개를 182개로 축소했다는 것이다.

모두 부동산 개발과 인건비 절감이 목표였다. 재편 대상이 된 지점 가운데 상당수는 아현국사와 같은 ‘폐쇄형 전화국’이 되어 위험성을 키웠다는 것이다.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를 조사중인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사진=뉴시스)

또한 KT는 우회로 구축 등 통신망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해왔다.

2013년 3조 3130억 원에 이르던 연간 설비투자는 지난해 2조 2500억 원까지 줄었고, 올해는 3분기까지 집행된 금액이 1조 1080억 원에 그쳤다. 5만이 넘던 직원을 2만 3천 여 명으로 줄이면서 비정규직과 외주 용역을 남발했기에 화재 당시 관리 직원도 용역이었고, 현재 복구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사람도 ‘KT효율화’ 덕분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잃은 일용직 노동자들이다.

현장 기술직을 100% 외주화 했기 때문에, KT 정직원 중에는 통신선을 새로 깔 수 있는 직원조차 없는 이 한심한 상황은, 이번 통신대란이 결국 민영화에 의한 인재임을 증명해주는 방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T관계자는 화재가 난 뒤 통신대란의 이유를 설명하면서 당당하게 "아현지사의 기간망에는 백업시스템이 있고, 가입자망만 없다. 가입자망에 백업시스템을 갖추려면 비용이 두 배로 들기 때문에 고객 부담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희대의 몰상식을 시전했다.

해마다 1조 이상의 이득이 난다고 임원들끼리 성과급 잔치를 하는 회사가, 얼마 전에도 상무 28명, 상무보 43명을 승진시켜 임원 천국을 만들어 놓은 회사가, 돈이 많이 들어서 통신대란 위험을 방치했다는 주장을 서슴없이 하는 상황을 국민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로 휴무를 알린 자영업체 (사진=뉴시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은 단지 정부와 관피아, 적폐세력들만의 책임일까? 

이번 사태를 통해 언론들이 가장 많은 비난을 쏟아 부은 대상을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지금까지 쏟아진 기사들만 보면 이번 사태를 통해 가장 많은 비난을 받은 사람은 황창규 현 회장도, 이석채 전임 회장도, 이명박, 박근혜 등 전 대통령도 아니었다. 엉뚱하게도 탤런트 박은혜였다.  

박은혜는 통신대란이 발생하면서 먹통이 된 스마트폰 때문에 곤란을 겪고는 이 경험을 SNS에 올린다. 그런데 난데없이 악플이 쏟아진다. 

# 뭐 어디 재난 상황에서 통신불량 난 것도 아니고. 어이가 없네.
# 다른 것도 아니고 화재 때문인데...다들 불편한 것은 마찬가지.
# 두렵기까지 한 것은 좀 오바 아닌가 
# 누군가는 복구에 힘쓰고 있다. 공인이 이런 글 올리고 흥분하는 거 어리석은 일 같다.
# 사고인데, 불편은 하겠지만 유난인 것 같다.  

여기까지는 연예인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 피해의식이 된 일부 악플러들의 문제라고 치부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를 고스란히 긁어다가 연예지와 경제지에서 앞다투어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기사 내용을 보면 어디에도 박은혜의 소속사나 박은혜 본인에게 사실을 확인했다는 내용이 없는데도 기사는 계속 쏟아진다.

제목과 일부 표현들만 바뀐 기사들이 순식간에 수십 개가 쏟아지고 실시간 검색어에 박은혜란 이름이 뜨기 시작하고 악플은 더 심해지고 급기야 KT화재사고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 기획기사들은 자취를 감춘다. 그 후 모든 언론사에 보도자료가 제공된 듯 일제히 KT의 ‘파격적 보상 계획’에 대한 기사가 쏟아진다.

연예인이든, 비연예인이든, 이동통신사의 고객으로서 잘못된 서비스에 대해서는 문제제기를 할 수 있어야 옳다.

많은 비연예인 고객들이 상담센터의 비정규직 직원들에게 막말과 폭언을 쏟아놓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할 때, 조용히 경쟁사로 서비스를 옮긴 사람이 왜 이토록 가혹한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이런 희한한 상황에 대기업의 입김은 과연 없는 것일까?

언론은 자기 책임을 다하고 있는 것일까?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KT노조가 파업을 결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국가전복세력’이라비난하고 엄중한 법적 대응을 주문했으며 언론들은 대서특필했다.

노조의 파업은 ‘국가전복’시도가 되는데, 경영자들의 통신망 보안 훼손에 대해서는 극히 일부 언론 외에는 다루지도 않고 있다. 이석기 전 의원은 그가 참석한 집회에서 타인이 말한 전화국에 대한 접근 발언 때문에 내란음모죄라며 옥살이를 하고 있고, 하지도 않은 발언에 대한 책임을 아직도 언론들이 묻고 있다.

그런데, 통신의 통자도 잘 모르는 비전문가를 낙하산으로 꽃아도 아무런 비판을 안 한 의원들이나 위증을 일삼으면서 기간 통신망을 위험에 빠뜨린 경영진의 책임을 묻는 언론은 왜 이토록 찾기 힘든가?

연예인이 그렇게 영향력이 큰가? 아니면 그만큼 만만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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