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생라자르 역에 나타난 ‘노란 조끼’시위 (사진=뉴시안 홍소라)

[뉴시안=홍소라 파리 통신원] 2018년 12월 8일. 프랑스 전역에서 3만 천 여 명의 성난 시민들이 노란 조끼를 입고 거리로 나왔다.

파리에는 8천 여 명이 모였다. 오후 7시 현재, 프랑스 전역에서 1 385 명이, 파리에서만 737명이 연행됐다. 세 명의 경찰을 포함해 총55명이 부상당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연행자와 부상자의 수는 늘고 있는 중이다. 나는 그곳에 있었지만 연행당하지도, 부상을 당하지도 않고 무사히 귀가했다 오는 길에 지갑을 소매치기 당하긴 했지만.

‘노란 조끼 (Gilets jaunes)’ 시위에서 발생한 여러 폭력 사태에 대해서는 한국의 여러 매 체에서 ‘격렬 시위’, ‘최루탄 발사’, ‘경찰과 충돌’, ‘아수라장’ 등의 수사를 통해 발빠르게 다루는 바, 본 통신원은 조금 다른 시각으로 이 사건에 접근해 보고자 한다.

<뉴시안> 파리 통신원으로 활동하면서 이 곳에 중요한 사건들이 터지는 그 현장에 직접 가지 않는 것은 어쩐지 책임을 방기하는 것 같아 아침부터 분주하게 출동을 준비했다.

하지만 어쩐지 불안했다. 지난주 3차 ‘노란 조끼’ 시위 때 적지 않은 폭력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샹젤리제 상점의 유리창과 진열장이 파손되었고 주차된 차들이 화염에 휩싸였으며, 개선문이 훼손되었다.

지난 12월 3일까지 세 번에 걸친 시위에서 130여 명이 부상을 입고 4명이 사망했다. 이에 여러 소셜네트워크에서는 오늘의 4차 시위 준비물(방독면, 수경 등) 및 경찰 연행 시 대응 지침 등이 공개되기도 했다.

미디어는 일주일 내내 폭력 사태의 이미지를 지치지도 않고 내보냈다. 시위는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긴장은 전에 없이 높아만 갔다.

 

“프랑스는 더 이상 민주주의를 수호하지 않아”

오전 10시 30분, 집을 나섰다. 본래는 샹젤리제에 갈 생각이었지만 9시 40분 경에 그곳에서 경찰이 저지선을 뚫으려는 시위대에 최루탄을 던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긴급한 상황이 연출되어 가고 있는 듯 보였다.

또한 워낙 많은 사람들이 벌써부터 모여 있고, 샹젤리제 근처 지하철 역들이 모두 폐쇄되어 접근이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 하에 생라자르 역으로 향했다.

12월 8일 파리의 ‘노란 조끼’ 집회는 샹젤리제 외에도 여러 곳에서 신고가 되어 있었고, 생라자르 역은 그 중 하나였다.

생라자르에 모인 사람들은 30여 분 정도를 행진하여 샹젤리제의 ‘노란 조끼’들과 합류하고자 했다. 하지만 경찰은 시위대가 가는 길목을 미리 막아 놓았다.

결국 생라자르의 ‘노란 조끼’들은 방향을 틀어 라파예트 백화점을 지나 클럽으로 유명한 그랑 불바르(Grands boulevards)로 향했다.

시위대는 프랑스 국회와 정부를 “해산하라!”고 주장한다 (사진=뉴시안 홍소라)

백발의 프랑크(가명)와 동료들은 ‘해산(dissolution)’이라는 단어가 적힌 플랜카드를 들고 행진을 했다.

이들에게 있어 현재 프랑스에 가장 필요한 것은 국회와 정부의 해산이다. 제6공화국을 열어야 할 때가 왔다는 것.

네 차례의 ‘노란 조끼’ 시위에 모두 참여한 프랑크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시민의 이익을 위하여’ 거리로 나섰다.

프랑크에 의하면 마크롱 지휘 하의 프랑스는 더 이상 민주주의를 수호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시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마치 제왕이나 된 것처럼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사회 계급을 대변하는 정책만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마크롱은 ‘프랑스’라는 이름의 회사를 경영하는 사장에 불과하다. 프랑크는 또한 시위 중에 발생하는 폭력 사태만을 확대하여 보도하는 프랑스의 미디어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았다.

폭력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프랑스 사회에는 유창한 언어를 통하여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기 때문에 폭력 역시 그들의 분노를 표출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선택되었다고 본다.

반면, 미디어는 폭력 사태를 전방에 배치하여 보도함으로써 ‘노란 조끼’ 운동의 의의를 훼손시키며 마크롱 정부에 복무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노란조끼는 “부유세를 부활시키라!”는 요구를 강력히 제기하고 있다 (사진=뉴시안 홍소라)
“(서민의) 세금을 줄이고 월급을 인상하라”고 주장하는 시위대 (사진=뉴시안 홍소라)

프랑스 북쪽의 도시 칼래(Calais)에서 온 쥘(가명, 43)은 두 아이의 아버지이다. ‘노란 조끼’ 시위에는 처음부터 참여했지만 파리까지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쥘은 마크롱 임기가 시작되면서 서민의 삶이 더욱 팍팍해 졌다고 강조한다. 배우자와 함께 노동을 하지만 4인 가족이 살기는 너무 힘들어졌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마크롱이 대통령이 되면서 저축을 할 돈도, 아이들에게 가끔 선물을 사 줄 돈도 사라졌다.

한 달을 버티는 것마저 너무나도 팍팍해 졌다. 이러한 시민의 목소리를 마크롱에게 들려주기 위하여 20여 명의 동료들과 함께 새벽 4시에 칼래를 출발하여 파리까지 왔다.

한 시민이 시위대를 막고 있는 경찰들에게 꽃을 건내고 있다 (사진=뉴시안 홍소라)

 

마크롱 임기 이후 더욱 팍팍해진 서민들의 삶

시간이 가면서 시위대의 흥은 점차 높아져 갔다. 함께 노래를 하고 율동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엠마뉘엘 마크롱, 부자를 위한 대통령, 너희 집을 모두 부숴 버릴 거야”라는 식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샹젤리제로 향하던 중, 경찰에 의해 길이 또 다시 막혀 버렸다.

그때, 한 남자가 꽃다발을 들고 경찰에게로 다가갔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우리는 평화주의자입니다!”를 외치며, 그는 주머니를 털어 자신에게는 그 어떤 무기도 없음을 보여 주었다.

그에 의하면 정작 중요한 것은 시위 참가자 중 소수에 의하여 생기는 폭력 사태가 아니라, 자유롭게 시민들이 발언하는 것을 방해하고 시위대의 발걸음을 저지하는 정부의 행태이다.

꽃을 든 남자와 그의 동료들은 다음과 같은 메세지를 남겼다. “마크롱 대통령님,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곧 크리스마스이지만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우리는 끝까지 갑니다.”(사진=뉴시안 홍소라)
간호사들도 구급낭을 메고 거리로 나섰다. 그들의 구급 배낭엔 “연대는 우리가 가진 유일한 무기입니다”라는 글귀가 씌여 있다 (사진=뉴시안 홍소라)

멜라니(가명, 24)와 마릴린(가명, 46)은 모녀지간이다. 두 사람 모두 간호사. ‘노란 조끼’ 집회에는 처음으로 참가했다.

이들의 가방에는 의료용 밴드, 반창고, 지혈제, 소염제, 진통제 등 구급약품들이 들어 있다. 지난 주 ‘노란 조끼’ 시위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한 것을 보고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혹시 모를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필요한 물품들을 챙겨 거리로 나선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마크롱 임기 이후 서민들의 삶이 더욱 팍팍해졌다고 한다.

멜라니는 마크롱이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펼치면서 이를 숨기지도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결국 마크롱의 위정을 지켜보며 더 이상 이 사회의 존중받는 구성원이 아닌 것처럼 느끼게 되었다며,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해서는 적잖은 미디어의 경고와 같은 보도에도 불구하고 시위 참여를 결정했다고.

“사회 정의 아니면 전쟁이다!” (사진=뉴시안 홍소라)
경찰의 바리케이트 앞에서 스스로 무릎을 꿇은 시위대들. 이는 12월 6일, 파리 근교의 망트 라 졸리( Mantes-la-Jolie)에서 자행된 경찰의 고등학생에 대한 과잉 진압에 항의하기 위한 퍼포먼스였다. 200여 명의 고등학생들이 정부에 반대하여 시위를 했는데 그 중 일부가 경찰을 향해  돌을 던지는 등 폭력을 행사했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고등학생들은 네 시간 동안 위와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어야 했다. (사진=뉴시안 홍소라)

시위대 곳곳을 뛰어 다니며 만나서 인터뷰를 하거나, 혹은 대화를 나눠 본 모든 이들은 입을 모아 마크롱의 실정을 이야기했다. 유류세 인상이 하나의 계기가 되었으나, 그것만이 프랑스 전역에서 이 많은 사람들이 한데 나오게 된 이유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촉매제로 작용했을 뿐이다. 취임 전부터 마크롱에게 보내던 프랑스 시민들의 의심이 그가 펼치는 이른바 ‘부자친화적’ 정책과 베날라 사건으로 대표되는 측근 정치로 확신이 되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마크롱이 해당 조치를 철회했음에도 불구, 시민들의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다는 것이 그 증거라 하겠다.

또한 시위에 나선 이들은 미디어의 행태를 지적했다.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폭력 사태에만 집중하느라 시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고 있지 못한다는 것이다.

‘노란 조끼’ 시위를 다루며 프랑스 언론들이 주로 사용하는 수식어는 한국 언론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충돌, 방화, 긴장, 피 등의 언어 선택이다.

지난 대선에서 단 한 번도 마크롱에 표를 주지 않았다는 세 명의 20대 남성들은 마크롱 임기에 유난히 미디어가 모든 집회를 극좌 혹은 극우 성향을 띠는 것처럼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며 불만을 표했다.

 

폭력시위로만 매도할 수 없는 이유

몇 시간 동안 시위대와 함께 파리 거리를 행진하며 공산당(PCF) 피켓도 보았고, 검은 깃발로 대표되는 아나키스트들의 무리도 보았다.

이들은 언젠가부터 시위대에 합류하여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은 색 일색으로 방독면을 끼고 경찰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긴장감을 높이고 있었다.

급진적 페미니스트 단체도 있었다. 보라색 깃발을 든 페미니스트들은 “우리도 여기에 있다”며 흥겨운 노래를 불렀다.

극우로 분류되는 코르시카 깃발을 든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대학생도 있었고, 고등학생도 있었으며, 의료진들도 자발적으로 참가했다.

마크롱 정부에 반대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 ‘마크롱 퇴진’을 외치고 있었다.

‘노란 조끼’ 시위 동안 최루탄이 발사되는 장면도 보았고, 시위 참가자들 사이의 주먹다짐도 목격했다.

해가 저물면서 대부분의 시위 참가자들이 집으로 돌아간 이후, 일부가 거리에 남아 방화와 폭력, 파괴 등을 일삼는 중이기도 하다.

카스타네(Castaner) 내무부 장관은 지난주에 비해 폭력 사태가 훨씬 적었고 그나마도 경찰이 신속히 진압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우리의 전략이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축했다.

‘노란 조끼’ 시위를 폭력적인 것으로 단정한 것이다. 그의 말이 틑린 것은 아니다. ‘노란 조끼’ 시위는 절대로 평화 시위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폭력 시위라고 단정짓기에는 프랑스 시민들의 절망이 너무나도 깊고, 그들의 목소리는 위정자에 의해 무시되고 있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곳에 시민이 있다.

저작권자 © 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