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이 또 다시 도덕성 논란에 휩싸였다. 최근 일진그룹은 고용 승계작업을 위해 자녀회사 일감몰아주기, 차명계좌 논란, 유망 벤처기업 기술강탈 의혹 등 잇단 구설에 50년 간 쌓아 올린 명성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다. 본지가 上·中·下 3회에 걸쳐 일진그룹의 가계도를 살펴보며 금호, 영풍 등과 맺은 화려한 혼맥을 중심으로 오너일가의 민낯을 집중 조명해 본다.

왼쪽부터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 허정석 일진홀딩스 대표, 허재명 일진머티리얼즈 대표(사진=뉴시스·각사별자료)
왼쪽부터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 허정석 일진홀딩스 대표, 허재명 일진머티리얼즈 대표(사진=뉴시스·각사별자료)

[뉴시안=정동훈 기자]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일감 몰아주기 등 편법을 동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일진그룹이 이번에는 국세청이 공개한 조세포탈범 명단에 창업주 허진규 회장이 포함돼 망신살이 뻗쳤다.

14일 재계에 따르면 국세청이 지난달 20일 국세정보공개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조세포탈범과 불성실 기부금 수령단체, 해외금융계좌 신고의무 위반자 명단공개 대상자를 확정해 12일 공개했다. 특히 해외금융계좌 신고의무 위반자 공개 대상은 신고기간 내에 신고하지 않거나 과소 신고한 금액이 50억원을 초과한 자다. 허 회장이 이에 해당된다.

허 회장은 2013년 136억원, 2014년 131억원 등 해외금융계좌 신고의무를 위반했다. 지난 2013년 도입 이후 올해 다섯 번째로 그동안 공개한 인원은 2014년 1명, 2015년 1명, 2016년 2명, 2017년 1명, 2018년 1명으로 해마다 비슷한 수를 보이고 있다.

앞서 지난해 1월 허 회장은 홍콩 페이퍼컴퍼니 차명계좌에 묻어둔 1292만 달러(137억여 원)를 당국에 신고하지 않아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지난해 4월 1심에서 허 회장에게 벌금 7억 원을 납부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허 회장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1심에서 형이 확정됐다.

국세청 관계자는 "앞으로도 조세포탈범, 해외금융계좌 신고의무 위반자는 엄정하게 대응하겠다"며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명단을 공개하고 고의-악의적 탈세자에게는 엄정하게 조세범칙 조사를 실시해 관계기관에 고발하는 등 법에 따라 철저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 금호, 영풍 등과 혼맥 화려한 가계도…허 회장, 전 국무총리 처남으로 유명

일진그룹은 재계 순위 50위권의 중견기업이다. 올해로 창사 50주년을 맞았다. 특히 금호, 영풍 등과 혼맥을 맺어 화려한 가계도 또한 널리 알려져 있다.  허 회장은 대법관을 지낸 김황식 전 국무총리의 누나와 결혼해 김 전 총리와 매형, 처남 사이로도 유명하다.

일진그룹의 계열사는 상장사 일진홀딩스, 일진전기, 일진다이아, 일진머티리얼즈, 일진디스플레이 등 5곳을 포함해 모두 28곳이다. 이외 미국과 중국, 일본, 독일 등에 15개의 해외법인을 두고 있다. 그룹 매출은 2006년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해 현재는 3조원대 매출을 올리고 있다.

허 회장은 부인 김향식 여사와 슬하에 2남2녀(정석-재명-세경-승은)를 뒀다. 그룹의 모태이자 핵심사인 일진전기는 장남 허정석 일진그룹 부회장에게 대물림됐다. 장병희 창업주의 장남인 장철진 전 영풍산업 회장의 딸 장세경씨는 연을 맺었다.

그는 현재 지주사 격인 일진홀딩스를 통해 일진전기·일진다이아·아이텍 등 자회사와 마그마툴·일진복합소재·매직드림 등 손자회사를 지배하고 있다.

고 박정구 전 금호그룹 회장의 삼녀 박모씨와 혼인한 차남 허재명 일진머티리얼즈 대표는 일진머티리얼즈를 정점으로 한 소그룹을 맡고 있다. 그가 지분 56.36%를 보유한 일진머티리얼즈 아래 일진엘이디·일진유니스코·일진건설·오리진앤코·아이알엠 등 계열사를 거느린 구조다.

허 회장의 두딸과 사위들도 제각각 '한자리'씩은 차지하고 있다. 장녀 허세경씨는 일진반도체와 루미리치를 넘겨받았다. 세경씨의 남편이자 허 회장의 첫째사위인 김하철씨는 현재 일진반도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김씨는 2006년 8월 허 회장의 부름을 받고 삼성SDI 상무직을 내려놓으면서 일진그룹에 입성했다. 2007년 4월 일진디스플레이 사장을 거쳐 2010년 3월 현 대표이사 자리에 올라섰다. 일진반도체는 허세경씨(34.2%)와 남편 김하철 일진반도체 대표(8.1%)가 지분 42.3%를 보유하고 있다. 일진반도체가 48.9%의 자사주를 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허세경씨 부부의 지배력은 확고하다. 루미리치의 최대주주는 일진반도체(25.54%)이고 김하철 대표가 2대 주주(21.47%)다.

차녀 허승은씨의 남편은 일진자동차를 이끌고 있는 김윤동씨다. 허승은씨(55.56%)와 남편 김윤동 일진자동차 대표(44.44%)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 일진자동차는 혼다 차량 판매와 정비서비스 등을 주요 사업으로 삼고 있다.

◆ 일진그룹 일가 화려한 혼맺 뒤 부의 부당승계와 세습 전형 보여줘

일각에서는 이들 일가가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일감 몰아주기 등 편법을 동원했다는 지적을 제기하고 있다.

2세가 소유한 비상장사에 일감을 몰아줘 마련한 재원을 바탕으로 경영권 확보를 위한 지분을 매입하는 방식이었다. 특히 일감 몰아주기가 경영권 승계가 사실상 마무리된 이후까지도 계속되고 있어 강도 높은 재벌 개혁 의지를 보이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타깃’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세 승계의 창구로 지목된 것은 일진파트너스다. 허정석 일진그룹 부회장이 2010년 최대주주(100%)에 올라 대표이사로 나서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확장을 시작했다.

금융업을 영위하던 2005년 매출규모가 약 3000만원이었지만 2010년 업종을 물류운송업으로 틀면서 매출규모는 34억원, 2011년 90억원, 2012년 136억원으로 점증했다. 이 3년의 기간은 일진전기로부터 매출이 100% 발생하던 시기였다. 당시 허 부회장이 일진전기의 대표이사를 직접맡아 일진파트너스와 거래를 측면 지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진전기는 초고압전선·중고압전선 등 각종 전선과 개폐기·변압기 등 전력기기를 전문적으로 제조·판매하는데, 일진파트너스는 일진전기 제품의 물류운송을 주선했다. 이렇게 급격한 외형성장은 그룹차원에서 주요 계열사인 일진전기와의 내부거래를 늘렸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일진파트너스는 여전히 일진전기와 높은 내부거래비중을 유지하고 있다. 구조적인 틀에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일진전기는 일진홀딩스(종목홈) 가 지분 57%를 갖고 있는 종속회사다. 일진홀딩스의 최대주주는 허 부회장으로 지분 29.1%를 보유하고 있다. 일진홀딩스와 일진전기의 대표이사 모두 허 부회장이 맡고 있다.

일진파트너스는 일진전기와의 거래를 바탕으로 마련한 재원을 일진홀딩스 지분 매입에 활용했다. 일진파트너스는 2013년 허진규 회장이 보유한 일진홀딩스 지분 전량 15.27%를 매입했다. 허진규 회장은 자신의 일진홀딩스 지분을 일진파트너스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승계를 했기 때문에 상속세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일진홀딩스의 100% 자회사인 건물 임대업체 일진디앤코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매년 내부거래 비중을 40% 전후로 유지했지만 내부거래 규모는 계속 증가세를 보였다. 일진디앤코의 내부거래율은 2013년 40.76%(63억원-26억원), 2014년 38.46%(68억원-26억원), 2015년 40.05%(68억원-27억원), 2016년 42.82%(70억원-30억원), 2017년 41.80%(75억원-31억원) 등이었다.

◆ 일진다이아·일진디앤코 등도 내부거래 많아

공업용 다이아몬드 제조업체인 일진다이아몬드 역시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 회사의 최대주주는 일진홀딩스(55.59%)다. 허 부회장의 간접지배 아래 있는 계열사인 셈이다. 일진다이아몬드의 내부거래율은 2012년 47.33%(963억원-456억원), 2013년 48.66%(877억원-427억원), 2014년 57.12%(802억원-458억원), 2015년 57.28%(869억원-498억원), 2016년 63.68%(856억원-545억원), 2017년 64.79%(973억원-630억원) 등이었다.

이 밖에 ‘장녀 회사’인 일진반도체도 내부거래율이 높다. 이 회사의 내부거래율은 2010년 17.96%(195억원-35억원)에서 2011년 20.67%(206억원-42억원), 2012년 59.24%(152억원-90억원) 등으로 증가했다. 다만 이 회사는 2013년부터 매출이 급락했다. 또 다른 계열사인 일진엘이디에 주요 매출원인 LED패키징 사업을 영업양수도 방식으로 넘겼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후 일진반도체는 내부거래에 의존해 생존하고 있다. 2014년과 2015년에는 각각 10억원과 11억원의 매출 전량이 계열사들과의 거래에서 나왔다. 2016년과 지난해의 내부거래율도 66.74%(5억6600만원-3억7800만원)와 47.92%(7억4000만원-3억5500만원)였다.

이처럼 일진그룹이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것은 이른바 ‘일감몰아주기법’이 ‘자산총액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을 규제 대상으로 정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일감 몰아주기 조사 대상을 중견기업까지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일감 몰아주기가 일진그룹에 상당한 리스크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일진그룹이 B2B 기업을 이용해 도가 넘는 일감 몰아주기를 하면서 부의 부당승계와 세습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며 "상속세와 증여세 없이 세금 없는 부의 대물림으로 1세에서 2세로 이어지는 승계 작업을 마무리 한 상태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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