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투표를 마친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사진=AP/뉴시스)
대선투표를 마친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사진=AP/뉴시스)

[뉴시안 이슈추적=기영노 자문위원] 지난 10월28일(현지시간) 브라질 대선에서 올해 63살의 극우 사회자유당(PSL)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승리했다.

보우소나루는 브라질 대선 결선투표에서 55.13%의 득표율을 기록해 44.87%에 그친 좌파 노동자당(PT) ‘페르난두 아다지’ 후보를 누르고 브라질의 38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보우소라누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까지는 축구만큼은 아니더라도 엄청난 인기를 모으고 있는 격투기 스타들 즉 파울로 코스타, 반더레이 실바, 앤더슨 실바, 조제 알도, 하파엘 도스 안요스, 호이스 그레이시, 헨조 그레이시, 월리 알베스, 티아고 타바레즈, 파비오 말도나도, 호나우도 자카레 소우자 등의 지지를 끌어냈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종합격투기에서 굵직한 자취를 남겼거나 현역으로 있는 브라질의 파이터 들 대 다수가 극우 지도자를 향해 지지를 보낸 셈이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새 대통령은 2019년 1월1일부터 제38대 대통령으로서의 4년 임기를 시작하게 된다.

축구의 나라 브라질에서는 대통령이 축구를 바라보는 시각이 한결같다.

열렬한 축구팬임을 자처한다.

축구를 가장 잘 활용한 것으로 알려진 룰라 전 대통령은 지난 2000년 대통령 재임시절 브라질을 ‘세계 7대 경제 대국’으로 올려놓았다.

자원대국 브라질이 중국의 개발붐에 편승해 원자재를 수출해 특수를 누린 덕이다. 룰라는 벌어들인 달러를 바탕으로 파격적인 복지정책을 썼고, 고질적인 빈부격차도 어느 정도 해소했었다.

브라질 룰라 전 대통령 (사진=AP/뉴시스)
브라질 룰라 전 대통령 (사진=AP/뉴시스)

‘축구 팬법’ 만든 룰라 대통령

역대 브라질 대통령 가운데 가장 열렬한 축구 팬은 메디치와 룰라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다.

'열혈 축구팬'인 룰라는 브라질이 월드컵에서 마지막 우승을 차지했던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3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 되었다.

룰라는 브라질 최초의 좌파 대통령답게 노동자 계층에 의해 설립된 명문 축구 클럽 코린티안스의 팬이다.

룰라 대통령은 직접 그라운드에 나가 축구를 하기도 했었는데, 2003년 브라질 연금개혁안이 통과를 기념하기 위해 장관들과 축구 경기를 했었다. 룰라는 부패한 브라질의 축구계에도 개혁을 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결승전에서 브라질이 프랑스에 0-3으로 패하자 브라질은 엄청난 충격에 빠졌었다. 그 충격의 여파는 '카르톨라스'를 겨냥한 2년간의 의회 조사로 이어졌다. '카르톨라스'는 부패한 브라질 축구 클럽의 수뇌부를 뜻하는 말이다.

그들은 정치인들과 결탁해 브라질 축구리그의 경기를 조작하고, 어린 축구 스타가 나타나면 즉시 유럽 명문클럽에 그들을 팔아 막대한 이익을 챙겨 왔었다. 룰라 대통령은 2004년 브라질 축구 클럽의 투명한 경영을 근간으로 하는 이른바 '스포츠 도덕법'을 통과 시켰고, 브라질 축구팬들을 위해 '축구팬 법'도 만들었다.

'축구팬 법'은 축구 팬으로서 브라질 국민들의 권리를 보장해 주자는 것으로 경기 티켓 판매, 경기장 안전문제 등이 포함돼 있다.

특히 그 법에는 브라질 축구협회가 자국 프로리그의 상세한 경기일정 등을 출전 팀들이 미리 알 수 있도록 정확하게 공표해야 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줄리메컵 (사진=풋볼위키)
줄리메컵 (사진=풋케위키)

화끈하게 3일 동안 임시 공휴일을 공포한 메디치

브라질에서 축구는 단순히 스포츠가 아니라 종교에 가깝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은 ‘월드컵 역사상 가장 중요한 대회’가운데 하나였다.

당시 우승팀의 상징이었던 ‘줄리메 컵’은 최초로 3번 우승하는 팀이 영구히 보관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1970년 멕시코 월드컵을 앞두고 두 번 우승한 나라가 공격축구의 상징 브라질과 빗장수비 즉 가테나치오로 통하는 수비축구의 대명사 이탈리아 그리고 1회 우루과이 대회 개최국 우루과이 3개국 뿐 이었다.

그런데 브라질은 준결승전에서 우루과이를 3대1로 제압했고, 결승전에서 이탈리아를 4대1로 완파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월드컵의 상징 줄리메 컵을 영원히 갖게 된 것이다.

브라질이 우승을 차지하자 브라질의 메디치 대통령은 곧바로 멕시코로 선수 한명 한명에게 전화를 걸어 일일이 모두 치하했다.

결승전이 벌어진 1970년 6월21일(일요일)부터 다음 주 화요일인 23일까지 연속 3일이 임시 공휴일로 선포됐고 대통령도 대통령 관저를 개방하면서 관저의 발코니로 나와 군중들과 함께 어울려 ‘비바 브라질’을 외쳤다.

축제의 절정을 이룬 22일 밤 브라질 전역에서 있었던 각종 행사에서 무려 44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부상자만 1,800명이나 발생했다.

브라질 선수들이 줄리메 컵을 안고 귀국한 23일 리오의 갈레오 국제공항은 모든 비행기의 이착륙이 금지됐다. 줄리메 컵을 앞세우고 멕시코에서 돌아온 브라질축구팀을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혼잡을 우려한 경찰은 도심에서 공항까지 교통 차단 령을 내리고 준비했지만 경찰 경비대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저지선을 뚫고 5,000명이 넘는 브라질 축구팬들이 공항에 난입해 선수들을 얼싸안았고 리오의 200만 시민들은 열렬하게 브라질 선수들을 환영했다.

 

군부독재를 위한 아르헨티나 월드컵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비델라 육군총사령관은 쿠데타를 일으키고 자신이 직접 대통령이 되었다. 그가 대통령이 되자 전국에서 살육과 폭력, 고문이 횡행했다.

정통성이 부족한 정권에 필요한 것은 국민을 열광시킬 대규모 이벤트였다.

마침 아르헨티나에서 예정된 1978년 월드컵은 군부에는 그야말로 호재였다.

당시 군부에 저항하던 게릴라 조직인 ‘몬토네로스’도 감히 월드컵 보이콧을 선언하지는 못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88서울 올림픽‘을 위한 일이 마치 암행어사 마패처럼 통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타협으로 나온 구호가 고작 “아르헨티나 월드컵 우승, 비델라 총살”이었다.

세계의 내로라 하는 축구 스타들이 비델라의 독재에 항의하는 의미로 월드컵 출전을 보이코트 했다. 독일의 베켄바워, 파울 프라이트너와 네덜란드의 요한 크루이프 등이 아르헨티나의 인권 탄압에 항의하며 경기 불참을 선언한 것이다.

1978년 월드컵은 역대 월드컵 가운데 가장 부정부패와 승부 조작으로 얼룩진 대회였다.

아르헨티나와 맞붙는 팀들은 그저 아르헨티나 우승을 하는데 들러리에 지나지 않았다.

헝가리는 별다른 이유 없이 2명이나 퇴장을 당했다. 당시 세계 언론들은 아르헨티나 정부가 심판을 매수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페루와의 경기도 석연찮았다. 조별 리그를 통과하기 위해 큰 점수 차의 승리가 필요했던 아르헨티나는 이미 조 탈락이 확정된 페루를 6-0으로 대파했다. 아르헨티나와 페루의 객관적인 전력 차는 2골 내지 많으면 3골차 정도 였다. 그런데 마침 아르헨티나가 필요할 골 차이인 6골 차가 난 것이다.

당시 런던의 한 신문은 아르헨티나가 페루에 3만5천t의 곡물을 무상 원조하고 5천만 달러의 차관을 보장하고 6골을 허용하는데 가담한 선수들에게는 각각 2만 달러씩 준 대가로 승리를 샀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갖은 편법을 동원해 결승까지 진출한 아르헨티나 팀은 결국 요한 크루이프가 빠진 네덜란드를 1-0으로 이기고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시상대에 오른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감독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 감독은 군부 수장과의 악수를 거부해서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2013년 12월 10일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린 요하네스버그 부근 소웨토소재 FNB 스타디움의 전광판 (사진=뉴시스)
2013년 12월 10일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린 요하네스버그 부근 소웨토소재 FNB 스타디움의 전광판 (사진=뉴시스)

아프리카 최초로 월드컵대회를 유치한 만델라 대통령

제프 블레터 전 국제축구연맹(FIFA)회장은 2010 남아공 월드컵 개최를 발표하는 기자 회견장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만델라 대통령에게 월드컵 트로피를 전해주며 "당신은 진정 이번 월드컵의 창조자입니다. 당신의 존재감과 헌신이 이 대회를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아프리카 최초의 월드컵은 현실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남아공은 2006 월드컵 유치경쟁에서 간발의 차로 독일에게 패했다.

그러나 만델라의 격려를 받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유치위원회는 다음 대회인 2010년 월드컵을 유치하기 위해 더 노력했다. 나이 90살에 가까웠던 만델라는 남아공이 국제기준에 맞는 시설들을 보유하고 있어 월드컵을 유치할 능력이 있다며 국제 사회를 설득했고, 사실상 개최지 선정에 결정권을 쥐고 있는 피파 집행위원들에게는 “나의 조국에서 월드컵이 열리는 것을 보고 죽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호소했다.

한 때 세계 최고의 정치범이었던 그의 말은 국제 사회에 남아공 월드컵 개최에 대한 지지여론을 만들어내 결국 월드컵 유치 성공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남아공 정부는 만델라가 2010 남아공 월드컵 유치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포트 엘리자베스에 신축한 경기장의 명칭을 그의 이름을 따 ‘넬슨 만델라 베이 스타디움’으로 명명했다. 그 곳에서는 4강전을 비롯한 중요한 경기들이 벌어졌다.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의 진짜 축구 대통령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의 조지 웨아는 아프리카 최고의 축구선수 였었다.

1995년 국제축구연맹 FIFA의 올해의 축구선수로 뽑혔었고, 1996년에는 세리에 A의 AC 밀란 소속으로 한국을 찾아 우리나라 국가대표 팀과 친선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조지 웨이는 지난해 12월 라이베리아 대통령으로 당선 되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우리나라로 보면 차범근씨가 대통령이 된 셈이다.

그리고 지난 9월11일 나이지리아와의 친선경기에 52세의 나이를 잊고 출전, 79분간 뛰었다. 그 경기는 조지 웨아가 전성기 때 달았었던 14번의 영구결번식을 위한 경기 였었다.

조지 웨이는 당초 우려와는 달리 1년이 지난 지금 별 탈 없이 라이베리아를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러시아는 8강에 그쳤지만 푸틴은 우승 보다 더 큰 것을 얻어

러시아는 2018 월드컵 유치전에서 네덜란드-벨기에, 스페인-포르투갈 연합과 잉글랜드 등 난적들과 4파전을 벌였다.

피파 집행위원들은 1차 투표에서 러시아에 9표 스페인-포르투갈에 7표 그리고 네덜란드- 벨기엥 4표를 주었다. 잉글랜드는 2표로 탈락했고, 1차 투표에서 과반수(12표)를 얻은 나라가 없어서 2차 투표에 돌입했다.

2차 투표에서 러시아는 13표를 얻어 각각 7표(스페인- 포르투갈) 2표(네덜란드- 벨기에)에 그친 4개국을 제치고 개최권을 따냈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영어를 잘 하면서도 공식석상에서는 쓰지 않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기쁜 나머지 피파(FIFA)에 “진심으로 감사 합니다(From bottom of my heart, thank you)"라고 영어로 인사를 해서 화제가 되었었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푸틴의 통치하에 열리는 2018 월드컵은 러시아를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개최국 러시아의 성적에 상관없이 푸틴은 우승컵을 가져갈 것이라’고 평했었다.

러시아는 월드컵 본선에서 개최국이지만 세계랭킹이 70위에 그쳤기 때문에 8강전에서 크로아티아에 승부차기로 패해 탈락했다.

그러나 월드컵이 열렸었던 32일 동안 세계인의 시선이 러시아의 문화와 인프라에 쏠렸었던 것만으로도 푸틴 정부는 엄청난 홍보 효과를 봤다. 2014년 크림반도 병합과 시리아내전 개입 등을 강행해온 푸틴 대통령으로선 어느 정도는 축구를 통한 이미지 쇄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카타르 도하 웨스트베이 지역의 대형 고층건축물들 (사진=뉴시스)
카타르 도하 웨스트베이 지역의 대형 고층건축물들 (사진=뉴시스)

보우소나루 브라질 새 대통령의 과제는 2022월드컵 우승

2019년 1월1일부터 4년간의 임기를 시작하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재임기간 동안에 2022 카타르 월드컵을 치르게 된다.

브라질은 최근 월드컵 성적이 시원치 않다.

브라질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1회 우루과이 대회부터 2018 러시아월드컵 까지 한번도 빠지지 않고 본선에 오른, 명실공이 세계최고의 축구나라라고 할 수 있다.

기영노 스포츠 평론가
기영노 스포츠 평론가

그러나 2002 한일월드컵 우승 이후, 2006 독일월드컵 8강전에서 프랑스에 0대1로 패해 탈락했고, 2010 남아공월드컵 8강전에서 역시 네덜란드에 1대2로 패해 준결승전에 오르지 못했다.

그리고 절치부심 했었던 2014 브라질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독일에 1대7로 월드컵 역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했다. 그 대회 3,4위전에서도 네덜란드에 0대3으로 패하면서 두 경기에서 10골을 허용하는 씻기 힘든 치욕을 맛봤었다.

브라질은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설욕을 노렸지만 이번에는 복병 벨기에에게 8강전에서 1대2로 져서 최근에 치러진 4번의 대회 가운데 무려 3개 대회를 유럽 팀과의 8강전에서 패하는 ‘징크스’를 갖게 되었다.

보우소나루 새 대통령은 브라질 축구의 부흥을 위해 특단의 대책을 세울 가능성이 있다.

재선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4년 임기 마지막 해에 열리는 2022 카타르 월드컵(11월22일부터 12월18일)에서 우승을 하는 것 이상으로 유리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비록 브라질 차기 대통령 투표는 월드컵이 열리기 한 달 전인 10월에 열리지만 ‘월드컵 우승’의 가능성을 선거 전략으로 내세울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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