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 모습 (사진=조선중앙TV 캡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 모습 (사진=조선중앙TV 캡쳐)

[뉴시안=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작년까지만 해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단상에 서서 다소 딱딱하고 강한 톤으로 신년사를 낭독했다. 올해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진 액자가 걸려있는 서양식의 화려한 서재에서 매우 차분하고 안정적인 목소리로 신년사를 낭독하는 파격을 보여주었다.

김 위원장이 이처럼 올해 완전히 새로운 신년사 발표 모습을 보여준 것은 그가 작년의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과 최초의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통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평화와 번영의 길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대내외에 상징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올해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경제와 대남 및 대미 관계에 상당히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이는 김 위원장의 작년과 올해 최고 관심사를 반영하는 것이며, 김 위원장이 앞으로도 계속 경제발전과 대남, 대미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설 의지가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특히 남북관계와 관련된 부분에서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이 없는 평화시대를 열어놓으려는 확고한 결심과 의지”를 강조하면서 한미연합군사훈련과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배치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 북한이 비핵화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 한 한미가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군사행동을 자제할 것이기 때문에 이 같은 요구가 남북관계 발전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적다.

김 위원장은 평화체제 구축 문제와 관련해 “정전협정 당사자들과의 긴밀한 연계 밑에 조선반도의 현 정전 체계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협상도 적극 추진하여 항구적인 평화보장 토대를 실질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언급은 향후 평화체제 관련 협상에 ‘정전협정 당사자’인 중국을 포함시키겠다는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국이 매우 환영할 부분이다. 따라서 만약 올해 북한 비핵화가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게 되면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남?북?미?중의 4자회담 개최가 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 위원장이 남북경협과 관련해 신년사에서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만큼 올해 북한은 남북대화에서 한국정부에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적극적으로 촉구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올해 북한의 영변핵시설 영구폐기가 이루어지면 그것을 계기로 미국과 유엔안보리에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제재 완화를 요구할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이 통일문제와 관련해 신년사에서 “전민족적 합의에 기초한 평화적인 통일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한다고 언급했기 때문에 2000년 6.15공동선언에 언급된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 간의 공통성‘을 인정하는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하는 방안이 올해 남북관계에서 중요한 이슈로 대두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에 대한 우리 사회 일각의 부정확한 이해 때문에 이 주제가 남남갈등의 주요한 소재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정부는 6.15공동선언에서의 이 합의에 대해 그 내용을 국민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제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

김정은 위원장은 비핵화와 관련해 신년사에서 북한이 “이미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데 대해 내외에 선포하고 여러 가지 실천적 조치들을 취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북한이 핵실험 중단을 넘어서서 핵무기 생산도 중단했다는 주장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한국과 국제사회는 북한이 핵무기 생산을 계속함으로써 2020년에 가서 100개 정도의 핵무기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이고 북미 협상에도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하면서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올해 북남관계가 대전환을 맞은 것처럼 쌍방의 노력에 의하여 앞으로 좋은 결과가 꼭 만들어 질 것이라고 믿고 싶다”고 밝힘으로써 적극적인 북미관계 개선 의지를 드러냈다.

그리고 “언제든 또 다시 미국 대통령과 마주 앉을 준비가 되어있으며 반드시 국제 사회가 환영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제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런데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만약 미국이 북한 인민의 인내심을 오판해 일방적으로 북한의 양보만을 강요하고 제재와 압박에만 매달린다면 부득이하게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밝힘으로써 최악의 경우 북한이 경제· 핵 병진노선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는 김 위원장이 작년 9월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미국이 6.12 북미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다고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측에서 아직까지 영변핵시설의 영구 폐기를 위한 상응조치로 무엇을 제시할 것인지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북한 내부의 불만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의 신년사는 어디까지나 미국과의 대화와 공정한 협상에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에 북한이 과거의 경제-핵 병진노선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의 중요한 첫 단계 조치로 제시한 ‘영변핵시설 영구폐기’ 카드에 대해 미국이 어떠한 상응 조치를 취할 것인지 계속 적절한 답변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북미 대화의 지루한 답보 상태는 장기화되고 북한 내부에서 병진노선으로의 회귀 가능성에 대한 경고 메시지가 계속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한미 간의 전략적 대화와 공조를 통해 북한의 ‘영변핵시설 영구폐기’ 카드에 대해 한미가 무엇을 제시할 것인지 조기에 합의에 도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북한의 영변핵시설 영구폐기에 대한 국제사회의 ‘상응조치’에 남북 당국이 모두 희망하고 있는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관광 재개 그리고 남북한 철도도로 연결을 위한 공사 등을 포함시켜 대한민국의 이익이 최대한 반영되게 해야 할 것이고,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4자 협상 개시 등이 포함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한이 이미 지난 9월 남북정상회담에서 ‘영변핵시설 영구폐기’ 카드를 제시한 상황에서 북한에게 또 다른 중요한 추가 카드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이나 제2차 북미정상회담의 조기 개최 추진보다 김 위원장의 ‘영변핵시설 영구폐기’ 카드에 대한 한미의 ‘상응조치’ 카드를 신속히 마련해 제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만약 북한의 ‘영변핵시설 영구폐기’에 대한 한미의 상응조치 카드가 마련된다면 이후 김 위원장의 답방이나 제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는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고 북한에게 제2단계, 제3단계의 비핵화 조치도 요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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