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선수들을 상습적으로 폭행한 혐의를 받는 조재범 전 국가대표팀 코치의 지난해 6월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출석모습 (사진=뉴시스)
쇼트트랙 선수들을 상습적으로 폭행한 혐의를 받는 조재범 전 국가대표팀 코치의 지난해 6월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출석모습 (사진=뉴시스)

[뉴시안 자문위원=기영노 스포츠 평론가] 스포츠계의 조재범 전 코치 성폭력 사건 파문에는 한국 스포츠의 오랜 병폐가 집약 돼 있다.

“운동 그만두고 싶어!!!”

조재범 전 코치가 심석희 선수를 폭행 또는 성폭력을 행사 할 때 마다 했다는 이 말에는 한국스포츠의 슬픈 현실이 함축돼 있다.

심 선수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외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만약 운동을 그만두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그 약점을 파고들어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파렴치한 짓을 한 것이다.

조재범 전 코치가 그를 초등학교 때 발굴해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세계적인 선수로 키운 것은 사실이다.

이 과정은 한국스포츠의 비정상적인 과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심 선수는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금의 한국체육대학 까지 학교수업을 거의 받지 못했다.

학생선수가 아니라 선수학생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매년 절반 이상을 학교, 태릉(진철) 선수촌에서 합숙훈련을 하고, 또한 경기에 출전하면서 ‘운동기계’가 됐다.

조 전 코치가 성폭력을 행사했던 여러 장소 가운데 태릉(진천)선수촌 빙상 장 라커룸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이다.

또한 성적지상주의를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는 올림픽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대회 또는 월드컵에서의 목표를 정해 놓고 빙상연맹을 통해 독려를 한다.

지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은 8-4-8-4가 목표였다. 금메달 8개 은메달 4개 동메달 8개로 종합 4위를 차지하려고 했었다. 금메달 8개 가운데 무려 6할2푼5리에 해당되는 5개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이었다.

결국 한국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 3개에 그치는 바람에 금메달 5개로 종합 7위에 머무르고 말았다. 목표(금메달 등)를 위해서는 웬만한 수단과 방법은 눈감아 주는 풍토에서 폭력 등의 비인간적인 행위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조재범 사태를 만든 3가지 키워드

이번 사태에는 한국 스포츠의 총체적 문제점이 모두 녹아 있다.

첫째는 우리나라는 대부분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을 시작해서 이후부터는 거의 수업을 듣지 않고 운동만 하는 학생선수가 아니라 선수학생이 된다. 

두 번째는 장기합숙이다. 우리나라 운동선수들은 거의 모두 학교나 직장 스포츠부에서 장기 합숙을 한다.

그리고 국가대표가 되면 태릉선수촌 지금은 진천 선수촌에서 장기합숙을 한다.

일본의 아지노모도 내셔널 트레이닝센터, 미국의 콜로라도스프링스 올림픽트레이닝 센터 등 다른 나라도 국가대표 훈련원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처럼 몇 달씩 합숙훈련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올림픽이나 큰 대회를 앞두고 일주일 정도 잠깐 모여서 훈련을 하는 정도이고 평소에는 일반인들에게 5달러 3달러 등 소정의 요금만 받고 개장 한다. 어린이들에게는 무료로 개방을 해서 최고의 운동기구로 체험을 한다.

그리고 세 번째 성적지상 주의다.

좋은 성적을 위해서라면 구타ㆍ성추행 등 모든 것이 용서가 된다. 올림픽 또는 아시안게임이나 월드컵에서의 좋은 성적이 마치 ‘지상의 최고목표’처럼 웬만한 것은 수면아래로 묻히고 만다.

1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문화·체육·여성계 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조재범 성폭력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 진상규명, 재발방지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미국의 래리 라사르 사건은 개인적인 범죄행위

일부에서는 미국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터졌다고 한다. 그러나 '래리 라사르' 사건은 경우가 다르다.

래리 라사르는 미국의 체조전문 의사로서 성의식이 거의 없는 10살 안팎의 여자체조 선수들 300여명을 수 년 동안 성추행 또는 성폭력을 범해서 360년 형을 받았다.

래리 라사르 사건은 미국의 비정상적인 스포츠 문화라기보다는 체조전문의사 래리 라사르의 개인적인 사건으로 보는 게 맞다.

그러나 이번 조재범 성폭력 사건은 코치의 개인적인 일탈도 있지만, 한국 스포츠의 고질적인 병폐가 총체적으로 드러난 사건이다.

 

문체부, 대한체육회, 국회의 대처방안은 일시적일 뿐

이번 사건이 터지자 직ㆍ간접으로 책임이 있는 정부기관에서 대처 방안을 내 놓고 있다.

지난 1월8일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은 "현재 (성폭행 지도자의)징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거나 징계가 끝나면 가해자가 다시 복귀하는 문제가 있다는 것 알고 있다"며 "앞으로 영구 제명의 경우는 어떠한 경우에도 다시 활동할 수 없게 하겠다. 또 경기 단체나 체육회, 학부모 등을 통해서 징계 사실을 알리고 홈페이지에 (징계 내용을) 상시 게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라고 말했다.

대한체육회도 지난 1월10일 성폭력에 대한 방지책으로 "국가대표선수촌 훈련장·경기장 CCTV 및 라커룸 비상벨 설치 등을 통해 사각지대와 우범지대를 최소화하고 합숙훈련 개선 방안을 마련하여 선수들이 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훈련에 임하도록 하겠다"며, "선수촌 내 여성관리관과 인권상담 사를 확충하여 여성 선수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선수 보호 조치를 철저히 하겠다"라는 발표를 했다.

국회를 대표해서 문화체육관광위원장 안민석 의원을 포함한 당파를 초월한 19명의 의원들은 운동선수를 보호하자는 취지의 법안을 발의했다. 

세부 항목으로는 △한 차례라도 선수 대상 폭행·성폭행 혐의로 형을 받은 지도자의 자격 영구 박탈 △형 확정 이전에도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지도자 자격 무기한 정지 △스포츠 지도자가 되려면 국가가 정한 폭행 및 성폭행 예방교육 의무 이수 △기존 대한체육회 소속으로 징계 심의를 담당하던 위원회를 '스포츠윤리센터' 별도 기관으로 독립 등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체육회 그리고 국회의 스포츠 계 폭행 또는 성폭력 등에 대한 대처방안은 단기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예방을 하기에는 너무 미흡하고 더구나 스포츠 계를 영구적으로 정화시키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스포츠계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이번 기회에 한국 스포츠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정부 즉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체육회 그리고 국회 등 관련기관들이 머리를 맞대고 한국 스포츠의 패러다임을 바꿔서 백년대계를 만들어야 한다.

우선 선수들도 일반학생들처럼 공부를 하면서 운동을 하도록 해야 한다.

초ㆍ중ㆍ고 그리고 대학생까지 모든 선수들이 학교수업에 빠지지 않고, 일정한 학력이 갖춰져야 운동을 계속할 수 있고, 성적이 떨어지면 대회에 출전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러니까 운동선수도 일반학생 들처럼 공부를 하고, 만약 큰 부상을 당하거나 기량이 떨어져서 운동을 계속할 수 없을 때는 일반학생과 겨뤄서 진학을 하거나 취업을 할 수 있도록 기본소양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진천 선수촌을 개방하고 국민들에게 돌려 줘야 한다.

국가대표 선수들을 마치 수용자처럼 1년 열 두달 가둬서 훈련을 하는 시스템은 이제 벗어날 때가 됐다.

미국이나 독일 일본 등 선진국처럼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 종합스포츠대회를 앞두고 보름이나 한 달 정도만 합숙훈련을 하도록 하고, 평소에는 일반인들에게도 개방해서 모든 국민이 세계최고의 운동기구나 시설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금메달 지상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쇼트트랙스피드 스케이팅은 우리나라가 올림픽에서 무려 24개의 금메달을 따내 양궁을 제치고 동·하계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금메달을 따낸 종목이다.

기영노 스포츠 평론가
기영노 스포츠 평론가

이제 국가도 과거 통일이전의 동독이나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있었던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도록 선수들에게 당근을 제공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은 종합 스포츠 제전일 뿐, 국력을 과시하는 장이 아니다.

따라서 연금이나 병역특례 같은 당근책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 대신에 일시적인 포상금을 주거나 입대연기 등으로 대체하면 된다.

그리고 학원스포츠의 고질적인 병폐인 체육 특기자 입학 제도를 없애야 한다.

대학스포츠 계는 ‘대학스포츠 감독은 형무소 울타리위에 올라서는 것’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그만큼 대학이 고등학교 3학년 선수를 스카우트(진학)하는 과정에서 물밑에서 거액이 오갈 가능성이 항상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나라 스포츠는 모든 국민이 학원이나 클럽에서 직접 즐기면서 건강을 증진시키고 그런 가운데 소질이 있는 학생이나 일반인 가운데 자연스럽게 국가대표가 나올 수 있는 선순환으로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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