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1996년 5월 두산그룹 신규 CI 선포식에 참석해 새로운 로고가 새겨진 그룹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두산그룹 제공)

[뉴시안=조현선 기자]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3일 밤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7세. 

박 명예회장은 1932년 고(故)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의 6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1년 해군에 자원 입대해 한국전쟁의 참전용사로 활약했다. 군 제대 후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귀국해 1960년 한국산업은행에 공채로 입사했다.

1963년 동양맥주 평사원으로 두산그룹에 발을 들인 이후 이후 한양식품 대표, 동양맥주 대표, 두산산업 대표 등을 거쳐 1981년 두산그룹 회장에 올랐다.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은 한 번 일을 맡기면 상대방을 신뢰하고 오래도록 지켜보는 '믿음의 경영'을 실천했다. 사업적 결단의 순간 때도 실무진의 의견을 먼저 경청했고 다 듣고 나서야 입을 열어 방향을 정했다. 

그는 인화와 인재를 중요시했다. 박 명예회장은 "'인화'란 '공평'이 전제돼야 하고, '공평'이란 획일적 대우가 아닌 능력과 업적에 따라 신상필벌이 행해지는 것"이라며 "인화로 뭉쳐 개개인의 능력을 집약할 때 자기실현의 발판이 마련되고, 여기에서 기업 성장의 원동력이 나온다"고 말했다. 

故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

두산이 글로벌 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틀도 마련했다. 박 명예회장은 두산그룹 회장 재임시 국내 기업 처음으로 연봉제를 도입하고 대단위 팀제를 시행하는 등 인재를 중시한 경영으로 선진적인 경영을 적극 도입했다. 

그룹회장을 맡은 이후 1985년 동아출판사와 백화양조, 베리나인 등의 회사를 인수하며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1990년대에는 시대 변화에 발맞춰 두산창업투자, 두산기술원, 두산렌탈, 두산정보통신 등의 회사를 잇따라 설립했다. 1974년에는 합동통신(연합뉴스 전신) 사장에 취임했다. 

국제상업회의소 한국위원회 의장,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등을 지냈으며, 경영 성과를 인정받아 1984년 은탑산업훈장, 1987년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정원(두산그룹 회장), 지원(두산중공업 회장), 딸 혜원(두산매거진 부회장) 씨 등 2남 1녀가 있다.

빈소는 5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지며,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발인과 영결식은 7일이며, 장지는 경기 광주시 탄벌동 선영이다.

저작권자 © 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