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경제에 날이 갈수록 일명 ‘국뽕(국가+마약)’이 심해지고 있다. 영화를 비롯해 TV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유통산업에 이르기까지 어디 한군데도 빠지지 않고 난리다. 하지만 어설프게 애국 마케팅을 들먹였다가는 역풍을 맞기 십상이다. 실제 실력이 없는 기업과 상품은 국적을 불문하고 도태되거나 사라졌다.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긴세월 동안 한국 소비자의 안목과 식견은 이제 글로벌시장을 선도하는 수준으로까지 향상됐다. 어쩌면 이런 변화는 한국 경제를 위해서 긍정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기업들에게는 말초적인 자극수단 대신 현명한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정도(正道) 마케팅이 필요할 때다.<편집자 주>

셀트리온홀딩스의 서정진 회장 (제공=뉴시스)
셀트리온홀딩스의 서정진 회장 (제공=뉴시스)

[뉴시안=조현선 기자] 국뽕의 효과는 없었다. 지난 2월 27일 개봉한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은 극장에 걸린지 3주만에 희대의 폭망작(폭삭 망한 작품)이라는 오명을 쓰며 간판을 내렸다. 이 영화는 3.1절에 맞춘 개봉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호응도 얻지 못했다. 국민들의 애국심을 자극하지 못한 성적표는 참담했다. 고작 누적관객수 17만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약 150억이 넘는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에다가 정지훈(비)의 국내 복귀작으로도 화제를 모았지만 고작 누적 매출액은 13억에 불과하다. 손익분기점 관객수는 400만이었다.

이 영화는 제작단계부터 잡음이 일었다. 프로덕션 기간 중 감독이 하차를 선언했다가 다시 돌아오고, 개봉 직전 '엄복동'에 대한 미화 논란이 이는 등 여러 차례 곤욕을 치뤘다. 또 개봉 일주일을 앞두고도 CG작업이 마무리 되지 않았다는 등의 괴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를 반증하듯 전반적으로 허술한 만듦새에 관객들의 반응도 냉랭했다. 앞으로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은 역대 최악이라는 성적표와 함께 졸작의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은 서정진 회장의 바이오의약품 기업인 셀트리온의 자회사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가 첫 제작·배급을 맡아 야심차게 내놓은 첫 영화라는 점에서 제작 단계에서 부터 업계의 큰 이목을 끌었다.

셀트리온 그룹은 바이오의 약품을 개발, 생산하는 셀트리온을 비롯해 헬스케어 마케팅 전문기업 셀트리온헬스케어, 화학의약품 전문기업 셀트리온제약, 화장품 유통 마케팅을 담당하는 셀트리온스킨큐어, 영화·드라마 제작 및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진행하는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셀트리온 엔터테인먼트는 서정진 회장이 최대 주주(지분 94% 보유)로 있는 셀트리온홀딩스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2012년 설립됐으며 서 회장의 사실상 개인 회사나 마찬가지다. 셀트리온홀딩스는 2018년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에 300억원을 출자한 바 있다. 이 작품은 제작비 150억원이 투입됐다. 보통의 경우 외부 투자사가 참여해 진행하는 방식과 달리 지주사인 셀트리온홀딩스와 화장품 계열사인 셀트리온 스킨큐어가 제작비 전액을 투자했다. 흔치 않은 케이스다.

서 회장은 이전에도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공을 들여왔다. 2016년 30억원을 투자한 '인천상륙작전'이 누적 관객수 707만명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하면서 제작자로서 순탄하게 길을 여는 듯 했다. 당시 이 영화도 '국뽕' 논란이 일었다. 심지어 인터넷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영화를 놓고 국뽕 영화냐, 아니냐를 두고 설전이 오가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는 닮은 부분이 많다. '국뽕 영화', '뻔한 이야기', '스타마케팅'까지 오명에도 불구하고 서 회장의 남다른 나라 사랑의 표현은 끝나지 않을것으로 보인다.

당시 서 회장은 "현 시대를 살면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그래도 우리는 살만하다, 행복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싶어 150억원을 썼다"며 "돈을 벌려고 만든 영화가 아니다. 위로와 치유의 영화로 내가 품은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느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강조했다.

성적보다 '진정성'에 중점을 두고 만들었다는 서 회장의 진심은 관객들에게 전해지지 못했다. 사실 이 영화는 언론시사회 때 부터 논란이 됐다. 엄복동의 생애와 '애국주의 마케팅', '국뽕' 논란 등에 휩싸였고 개봉 후에는 부족한 개연성과 영화의 완성도에 관객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악평이 이어지자 서 회장은 VIP시사회를 직접 챙기며 영화 살리기에 나섰지만 이마저도 관객들로부터 호응을 얻진 못했다.

반대로 같은날 개봉한 10억원의 저예산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는 일찌감치 손익분기점 50만명을 넘어서 누적관객수 100만명을 넘어섰다. 저예산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항거'는 전 세대별 고른 지지를 얻으며 흥행 조짐을 보였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단순히 스타마케팅이나 '국뽕' 소재의 문제가 아니라, 흥행 참패의 요소에 완성도가 큰 몫을 차지했다는 평가를 내놓고있다.

그러나 이번 흥행 참패 속에서도 서 회장의 엔터 사업은 기존대로 추진될 전망이다. 셀트리온 엔터테인먼트 측은 흥행 결과와 상관 없이 향후 영화 사업은 계획대로 진행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다만, 셀트리온에서 차기작에 대해 자체 투자로 진행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정해진 것이 없다.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홍보 포스터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홍보 포스터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은...

이 영화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최초로 ‘전조선자전차대회’에서 승리를 거둔 실존 인물인 엄복동을 재조명한 영화다. 엄복동은 출전하는 자전차 대회마다 일본의 대표 선수를 물리쳐 조선 민중의 영웅으로 떠오른 인물이다. 영화 관계자들은 '엄복동'을 두고 대한민국 근대사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최초의 대중적인 스포츠 스타라고 전했다. 

반면 관객의 반응은 싸늘했다. 개봉 전부터 영화 주인공이자 실존인물인 엄복동이 과거 자전거 수십대를 '절도한 혐의'를 받은 인물이라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사실 왜곡에 대해 의심을 품는 의견이 터져나왔다. 결국 국민들의 애국심을 자극하기 위해 과도한 역사 왜곡으로 완성된 '국뽕' 마케팅은 대중을 돌아서게 만들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전문 훈련을 거친 선수들을 제치고 승리하는 것만으로도 어지간한 상업 영화의 요소로서는 충분하다. 빛나는 챔피언의 이면엔 도둑이라는 이중성을 가진 개인의 스토리에 집중했어도 풀어나갈 이야기가 많았다. 그럼에도 실화 중심의 영화가 가져야 할 고증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만들어진 영화의 형편 없는 완성도에 시사회 직후부터 호평이 쏟아졌다. 덕분에 '자전차왕 엄복동'의 마이너스 수익률은 최근 3년간 100억 이상의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 중 최악 수준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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