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이상화의 은퇴식 모습 (사진=뉴시스)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이상화의 은퇴식 모습 (사진=뉴시스)

[뉴시안=기영노 편집국장/스포츠 평론가] 빙상 여제 이상화 선수가 지난 16일 공식은퇴를 선언했다.

이상화 선수는 국내 여성스포츠맨 가운데 최고의 업적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국내 여성 스포츠맨 가운데 척박한 종목을 개척해서 올림픽 금메달을 따거나, 동, 하계 올림픽에서 4개의 금메달을 딴 선수도 있지만, ‘여자스피드스케이팅 500’라는 상징적인 종목에서 10년 가까이 세계정상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여자스피드스케이팅 500m는 하계 종목 여자 100m와 비교할 수 있는 기본종목이다. 기본종목은 모든 종목을 대표하는 종목이다.

여자 육상 100m 한국신기록은 1994년에 이영숙 선수가 세운 11초49다. 미국의 플로렌스 그르피스 조이너 선수가 1988년 7월16일 미국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세운 11초49의 세계신기록에 꼭 1초 뒤진다.

100m에서 1초 차이는 거의 10m 가량 뒤진다는 얘기다. 한국 여자육상 100m는 올림픽에 한번도 출전해보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권에서도 메달을 딴 적이 없다.

◆ 한국의 여자스피드스케이팅은 이상화 선수 이전과 이후로 구분

한국의 여자스피드스케이팅은 이상화 선수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여자스피드 스케이팅 500m도 이상화 이전까지는 여자 육상 100m 만큼 열악한 환경이었다.

이상화 이전에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를 대표하는 선수로는 유선희 선수가 있었다. 유선희 선수는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때 5위를 한 것이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은 500m 뿐만 아니라 1000m 1500m 그리고 3000m와 5000m에서도 5위 이상의 성적을 올린 적이 한번도 없었다.

이상화 선수도 5위로 출발했다.

이상화는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때 5위를 하면서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고,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 때 비로소 금메달을 땄다. 그리고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다시 한번 세계정상임을 입증 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는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에 이어 은메달을 목에 걸면서 피날레를 장식했다. 세 번의 올림픽에서 연속해서 메달을 목에 건 것이다.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 올림픽 연패는 미국의 보니 블레어(1988, 1992,1994 3연패)와 캐나다의 카트리나 르메이돈(1998, 2002)에 이어 이상화가 사상 세 번째다. 아시아선수로는 처음이었다.

이상화 선수는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1회 우승), 세계종목별선수권대회(3회 우승) 동계유니버시아드(2회 우승) 등 세계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올렸지만, 동계아시안게임 금메달은 한번도 목에 걸지 못했다. 2007(장춘), 2017(삿포로)에서 각각 은메달에 그쳤었다.

이상화 선수가 지난 2013년 11월17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벌어진 월드컵 2차 대회에서 기록한 36초36의 세계신기록은 당분간 깨지기 어려울 것이다.

이상화 선수는 “기록은 언제나 깨지기 마련이지만 1년 정도는 더 유지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현재 이 종목 최고선수인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 선수도 내리막길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새로운 스타가 나타나지 않는 한 깨어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남자선수로는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때 김윤만 선수가 스피드스케이팅 1000m에서 은메달을 따면서 후배들에게 희망을 줬다. 이어서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이강석 선수가 동메달을 따면서 본격적으로 남자 스피드스케이팅이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을 앞서가기 시작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 모태범이 이상화와 함께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꽃을 피웠다. 그러나 모태범은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4위에 그치면서 올림픽을 2연패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입증 했다.

◆ 슬럼프는 마음속의 꾀병

이상화는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서 올림픽 2연패를 이룬 이후 한 때 깊은 슬럼프에 빠졌었다고 고백했다.

이상화는 슬럼프를 극복한 과정을 설명하며 “슬럼프는 자기 내면에 있는 꾀병이라고 생각한다”며 “슬럼프를 슬럼프라고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생각 하냐에 따라 달라진다. 야간훈련까지 하며 노력했더니 미세하게 좋아지더라”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이상화는 올림픽 2연패를 했고, 비쥬얼도 뛰어나고 이미지도 좋은데 왜 CF를 많이 찍지 않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놀라운 답변을 하기도 했다.

“CF를 찍으면 하루 훈련을 못해요”

그녀가 그동안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었는지 그 한마디로 입증이 됐다.

의정부시청 김민선 선수 경기모습 (사진=뉴시스)

◆ 김민선, 제2의 이상화

이상화 선수는 의정부시청의 김민선 선수를 자신의 후계자로 꼽았다.

1999년 생으로 올해 20살인 김민선은 지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38초534의 기록으로 15위를 차지했다.

김민선은 37.70의 세계 주니어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김민선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때는 여자 스프린트의 전성기인 23살에 이르게 된다. 이상화 선수도 김민선이 베이징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상화는 은퇴 이후 새로운 길을 걷게 된다. 지난 2월22일 스포츠맨들이 많이 소속 돼 있는 ‘본부이엔티’와 전속계약을 맺은 바 있다.

본부이엔티는 스포츠선수 출신 및 방송인을 다수 보유한 매니지먼트사로, 김동훈, 정대세, 추성훈, 강경호 등이 소속 돼 있다.

최근 ‘스포테이너(스포츠인 출신 엔터테이너)’라는 신조어가 생겼듯이 스포츠맨 출신들이 연예 프로에 얼굴을 많이 내밀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씨름의 강호동, 축구의 안정환, 농구의 서장훈, 격투기의 김동현 등이다. 프로야구의 양준혁 마라톤의 이봉주 등도 심심치 않게 방송에서 모습을 볼 수 가 있다.

그런데 일부 스포테이너는 매니저를 내세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전화도 받지 않는 등 이기적인 처사를 해서 비난을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상화 선수가 빙판에서 쌓아온 좋은 이미지를 ‘제2의 인생’에서도 유지하기를 바란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