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조현선 기자]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우대국 명단)’ 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2일 일본 정부는 오전 아베 신조 총리 주재로 각의를 열어 한국을 수출 절차 관리에서 우대하는 ‘화이트 리스트’에서 배제하는 수출무역 관리령 개정안을 처리했다. 2004년 리스트 지정 이후 16년 만이다.

이번 조치는 지난달 4일 한국에 대한 반도체 핵심소제 수출 규제에 발동한 데에 이은 것으로 한국은 관련 절차에 의거해 개정안이 공포일로부터 3주 후인 28일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화이트 국가에서 제외될 경우 국내 기업은 공작기계와 탄소섬유 등 규제 대상에 해당하는 군사 전용 가능성이 있는 물자를 일본서 수입할 때마다 원칙적으로 개별적인 허가를 받아야 한다. 지금까지는 3년 포괄허가를 통해 개별 수출품목 심사를 면제 받았다. 

이와 같이 적용될 경우 수출 허가 심사에 앞서 서류 준비에 들어가는 기간만 1~2주가 소요된다. 일본 수출업체는 국내 기업에게 제공 받은 자료를 기반으로 양식에 맞춰 서류를 작성하고 일본 경제산업성에 제출하게 된다. 이후 심사 절차에는 최대 90일이 걸린다.  

이어 일본 정부가 식품과 목재 등을 제외한 수출 품목을 대상으로 무기로 이용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개별 허가를 요구할 가능성도 우려되고 있다. 

사실상 대부분의 물자에 대한 한국 수출 절차에 깐깐한 기준을 세워 한국 경제에 유효한 타격을 던지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 수출규제 대상 품목 현재 3개에서 1100여개 늘어…개별 허가 요구 가능성 우려

일본 정부는 전략 물자로 1120개를 지정했다. 이중 263개의 ‘민감 품목’이 백색 국가를 포함한 모든 국가에 수출시 개별 허가를 필요로 한다. 미사일, 핵물질, 생화학 무기 등 직접적인 무기류가 해당된다. 

한국이 백색 국가에서 제외되면서 간소화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는 나머지 857개의 '비 민감 품목'에 대해 적용된다. 공작기계 및 집적 회로, 통신 장비등이다. 

이에 수출규제 대상 품목은 현재 3개에서 1100여개로 늘어난다. 비전략물자를 포함하는 캐치올 규제까지 감안하면 규제 대상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캐치올 제도는 비전략물자라도 대량파괴무기(WMD) 등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큰 물품을 수출할 때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제도이다.

일본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수출 규제에 나설지 구체적으로 발표된 바는 없지만 국내 경제에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의 불안감도 커질 전망이다. 구체적인 규제 품목이 파악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캐치올 규제는 일본 정부에서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원활한 수입은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시행된 반도체·디스플레이 필수 소재 수출 규제 이후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허가는 현재까지 단 1건도 없다는 점에서 우려는 더 커지는 분위기다.

다만 앞서 수출규제에 들어간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허가는 현재까지 단 1건도 없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등 반도체 생산을 위한 핵심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를 지난달 4일부터 시행한 바 있다.

■ IT 업계·은행권, 영향력 미미

IT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미미하다. 간편결제, 콘텐츠, 게임 등은 현물이 아닌 서비스 영역이라 한일 갈등으로 인한 이용자들의 반감이 눈에 띄게 나타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일본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사업을 진행중인 한국 IT 업체들은 혹시 모를 변수를 우려하고 있다.  

2일 IT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와 카카오는 별도의 환전이나 수수료 부담 없이 간편결제를 통해 일본에서 바로 결제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각각 지난 6월 17일, 7월 16일 잇따라 개시했다. 이들은 화이트국가 배제 결정으로 인한 자사의 서비스 악영향 및 계획 변경 질문에 전혀 없다며 말을 아꼈다. 

네이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본 자회사 라인을 통해 현지 사업을 활발히 진행중에 있다. 라인은 일본에서 메신저 성공을 바탕으로 간편결제, 금융, 콘텐츠 등으로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아울러 네이버 라인의 '라인망가'와 카카오 일본법인 카카오재팬의 ‘픽코마’는 일본 현지 웹툰 플랫폼중 나란히 매출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오랜 기간 공을 들여 일본 웹툰 시장에 안착했으나 한일 갈등으로 역풍을 맞을 경우 타격이 불가피해져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 네이버·넥슨 등 속앓이 촉각 곤두세워

게임사들도 속앓이를 하고 있다. 넥슨은 일본 지적재산권(IP)을 활용한 게임 '시노앨리스'를 당초 지난달 18일 글로벌 시장에 내놓을 예정이었으나 연기한 바 있다. 출시 시점은 미정이다. 연기 이유에 대해서는 현지화 강화 측면에서 준비가 더 필요하다고 밝혔으나 최근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고려한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한일 갈등 국면이 장기화될 경우 부정적 영향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최대한 자사 서비스가 이슈화 되지 않도록 방지하는 게 최선의 방책이라고 판단해 대응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은행권에서는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는 않을 전망이다. 일본 금융부문 보복조치가 나오더라도 은행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부분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다만 피해기업 지원을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는 입장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제투자대조표에서 대출 등 기타투자 둥 대일 비중은 6.5%(약13조6000억원)이었다.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국내에 들어온 일본계 자금 규모는 최대 52조90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국내 은행과 카드사가 조달한 일본계 외화차입금은 지난 6월 말 기준 20조2000억원 상당이다. 

하지만 일본 규제로 인해 제때 대출 상환을 하지 못하는 기업이 늘어날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일본 수출 규제에 따른 영향으로 영업 이익에 타격을 받아 대출 만기시 제때 상환하지 못해 은할 경우 건전성이나 매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재계, 소재·부품 산업의 경쟁력 강화 정부 협력할 것

재계는 단기적으로 일본의 의존도가 높은 항목에 대한 점검에 나서는 한편, 중장기적으로 소재 국산화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하지만 일시적인 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한다.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5개 경제단체(한국무역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일본의 한국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를 강력하게 규탄하고 철회를 촉구했다. 재계는 일본의 이같은 조치가 한일 경제와 교역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뿐만아니라 글로벌 경제에서 일본의 위상도 떨어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재계는 "한국과 일본은 글로벌 밸류체인의 핵심 국가로 한국은 일본의 주요 소재와 부품을 수입해 중간재를 생산하고 글로벌 기업들은 이를 토대로 최종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세계 경제 발전에 기여해왔다"고 강조하면서 "우리 경제계는 비상한 각오로 소재·부품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제조업 강국으로서의 위상 제고를 위해 정부와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 靑 "깊은 유감, 단호히 대응해 나가겠다"

청와대는 이날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기로 한 일본 아베 내각의 각의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오전 춘추관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우리정부는 문제 해결을 위해 외교적 협의와 대화 의사를 지속적으로 표명해 왔다"라며 "대화와 소통을 통한 문제 해결을 통해 우리 정부는 끝까지 열린 자세 임해왔음을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우리 정부는 이번 일본의 부당한 조치에 대해 단호한 자세로 대응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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