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LG그룹 회장.(사진=뉴시스)
구광모 LG그룹 회장.(사진=뉴시스)

[뉴시안=박재형 편집국장 대행] 최근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그룹 사장단에게 “제대로 그리고 빠르게 실행하지 않는다면 미래가 없다”며 전례 없는 위기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LG가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근본적이고 새로운 변화를 위해 사장단이 몸소 ‘주체’가 돼 실행 속도를 한 단계 높여야 한다”고 당부한 바 있다. 

구 회장의 이 같은 위기의식은 내부적으로는 과감한 인적쇄신과 사업구조 개편을 단행하고 대외적으로는 경쟁사와의 소송도 마다하지 않는 등 강도 높은 혁신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9월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이 실적 부진 책임을 지고 퇴진했다. 구 회장은 곧바로 LG디스플레이의 새로운 수장으로 정호영 LG화학 사장을 선임했다. LG그룹이 연말 인사철이 석달 가량 남은 시점에서 주력 계열사 수장을 교체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LG디스플레이는 한 부회장이 액정표시장치(LCD)에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사업구조를 전환하는 과정에서 실적이 악화되는 책임을 지고 용퇴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LG디스플레이는 상반기 5007억 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중국발 LCD 공급 과잉과 미중 무역분쟁으로 인한 IT 수요 감소가 실적에 악영향을 끼쳤다.

LG디스플레이는 수장 교체에 이어 바로 인력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LG디스플레이는 이날 경영환경 설명회를 열고 근속 5년차 이상의 기능직(생산직)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OLED로의 전환 가속화를 고려해 사무직에 대해서도 LCD 인력을 중심으로 희망퇴직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반면 대외적으로는 LG그룹의 경영 기조가 공격적으로 바뀌고 있다.

최근 LG전자는 경쟁사인 삼성전자의 QLED TV 광고를 문제 삼으며 ‘허위·과장’ 광고라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한 바 있다. 지난 5일에는 중국업체가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LG전자의 최신 스마트TV 기술 4건을 중국 가전업체 하이센스가 침해했다고 미국 캘리포니아 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후발주자인 하이센스가 저가 LCD TV를 무기로 세계 4위까지 점유율을 높이자, 적극적인 견제에 나선 것이다. 

여기에 더해 최근 LG화학은 핵심인력을 빼내 배터리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SK이노베이션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에 제소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구 회장의 위기의식을 자극해 조용한 경영을 추구해오던 LG그룹을 내적으로는 혁신을 가속화하고 대외적으로는 공격적인 경영을 강화하도록 만들었는가.

LG그룹은 이와 관련 금융위기 이후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수요 위축, 보호무역주의에 따른 시장 축소 등 구조적인 문제로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전례 없는 경영환경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진단이 나왔다고 설명한다.

이에 대한 대비로 사업모델, 사업방식 등의 근본적인 혁신을 통해 차별화된 고객가치 창출 역량을 확보하고, 그룹 차원에서 추진 중인 이른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에 속도를 내자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것이 LG그룹의 진정한 속내일지는 살펴봐야 할 것이다. 

최근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LG전자가 3분기 기준 역대 최고의 매출액과 10년 만의 최대 영업이익을 내며 시장 예상 전망치를 웃도는 깜짝 실적을 냈다. 여기에는 생활가전 부문이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생활가전은 트렌드에 민감한 사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 흐름을 놓치면 2~3등으로 밀려나 위기에 빠지기 쉽다. 삼성이 반도체 부문에서 초격차 기술로 안정적인 사업을 영위하는 반면 LG그룹의 주된 캐시카우인 LG전자가 이같은 위기에 노출돼 있다는 인식 때문에 구광모 회장의 위기의식은 더 커진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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