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조현선 기자]세계 최대 통신칩 제조업체 퀄컴이 공정거래위원회의 1조원대 과징금 부과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사실상 패소했다. 시정 명령 일부에 대해서만 취소됐을 뿐 1조원이 넘는 과징금은 그대로 유지됐다. 

서울고법 행정7부(부장판사 노태악)는 4일 오전 퀄컴 본사 등이 공정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등 취소 청구 소송 선고기일을 열고 "공정위가 2017년 퀄컴에 대해 의결한 시정명령 5항, 6항과 7·8항 중 5·6항에 해당하는 부분을 취소하고, 나머지 청구는 기각한다"고 밝혔다.

앞서 공정위는 퀄컴이 지난 2009년부터 경쟁 칩셋 제조사에 특허 사용권을 주지 않고, 칩셋 공급을 무기 삼아 스마트폰 제조 업체들의 라이선스 계약을 강제했다고 봤다. 이 부분에서 퀄컴이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재판부는 퀄컴이 CDMA, LTE 등 이동통신 표준필수특허 라이선스 시장과 모뎀칩셋 시장에서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지위를 갖고 있다고 확인했다.

하지만 포괄적 라이선스를 휴대폰 제조사에게 불이익 거래를 강제한 것이라 볼 수 없고, 휴대폰 판매 실시료와 크로스 그랜트 조건도 불이익을 강제한 행위가 아니라고 봤다. 이에 경쟁제한성이 인정되지 않으며 이에 대한 공정위 처분은 위법하다고 결론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공정위가 퀄컴에 부여한 시정명령 1~10항 가운데, 세 번째 행위와 관련되 5항과 6항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공정위가 부과한 약 1조300억원의 과징금은 100% 그대로 유지됐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스마트폰 업계는 이번 판결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지 않았다. 이들은 공정위가 지적한 '퀄컴의 횡포'의 가장 큰 피해자이지만, 여전히 이들의 주요 고객사이자 파트너이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번 사안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애플, 인텔, 삼성전자, 화웨이, LG전자, 미디어텍 등은 소송의 보조참가인이 되어줬다. 다만 삼성과 애플은 중도에 퀄컴과 라이선스 계약을 확대 체결하면서 철회했고, LG전자와 인텔, 화웨이 등이 공정위를 위해 보조 참가했다.

이를 미루어 보아 국내외 스마트폰 업계에선 퀄컴의 과거 부당한 갑질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퀄컴은 모뎀칩 독점 공급자로서 국내 뿐 아니라 미국,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에 대한 갑질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퀄컴은 중국, 대만 EU에서도 과징금을 부여받은 바 있다. 사실상 이번 판결에 대해 '예상했던 결과' 라며 수긍하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또 소송 결과에 따라 로열티 인하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관련 업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하지만 서울고등법원은 자사 기술을 제공하고 휴대폰 제조사로부터 로열티를 받는 퀄컴의 사업방식에 대해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온 뒤 로열티 관련 문제에 대해 방향성이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는 공정위가 지난 2017년 1월 퀄컴에게 약 1조300억 원의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불이 붙었다. 당시 공정위는 휴대폰 제조사에 라이선스와 관계 업싱 모뎀칩을 제공하고, 제조사와 라이선스를 체결하도록 하는 등 시정명령을 내렸다. 

당시 공정위는 퀄컴이 지난 2009년부터 경쟁 칩셋 제조사에 특허 사용권을 주지 않고, 칩셋 공급을 무기 삼아 스마트폰 제조 업체들의 라이선스 계약을 강제했다고 봤다. 이 부분에서 퀄컴이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고 알려졌다.

이에 퀄컴은 "공정위의 처분은 사실관계 및 법적 근거의 측면에서 모두 부당할 뿐만 아니라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며 제재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시정명령 등에 대한 효력정지도 함께 신청했지만 2017년 9월 서울고법에서 기각됐다. 이에 퀄컴은 대법원에 재항고했으나 역시 기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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