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파괴 1심 판결 선고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뉴시안=조현선 기자]삼성이 오랜 기간 고수해 온 ‘비(非)노조 경영’ 방침을 사실상 폐기했다. 그간 노조를 바라봤던 회사의 시각에 대해 반성하고 향후 노조와의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가겠다고 선언했다. 법원이 삼성 노조 와해 사건으로 기소된 임원들에 대해 유죄를 선고하는 등 사회적 시선이 과거와 크게 바뀐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것과 같다. 

앞서 서울중앙지법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에 대한 선고 공판을 열고 이상훈 의장을 비롯한 삼성전자 전현직 임직원 5명과 외부 인사 2명 등 7명에 대해 1심에서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이에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은 18일 입장문을 통해 “과거 회사 내에서 노조를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이 국민의 눈높이와 사회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는 임직원 존중의 정신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이고 건강한 노사문화를 정립해 나가겠습니다”고 말했다.

삼성이 노조 문제와 관련해 노조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에 대한 사과를 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삼성은 고(故) 이병철 회장이 이끌던 시절부터 비 노조 경영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건희 회장에도 이 같은 방침에는 변화가 없었다. 

앞서 삼성의 비노조 정책은 ‘임직원의 권익과 복리 증진에 대한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보장’의 취지가 컸다. 삼성은 노조 결성 여부를 떠나 회사 성장의 과실을 주주와 임직원들과 공유하고 다른 기업과 차별화되는 복지 정책을 제공해 임직원을 배려하고 있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직원들도 이를 받아들이긴 했으나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비민주적인 정책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이를 의식한 듯 삼성은 지난 2012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기재되어 있던 ‘노조를 조직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이라는 ‘'비노조 정책’ 표현을 ”근로자 대표를 경영 파트너로 인식한다"는 내용으로 바꾸기도 했다. 

삼성은 노조 결성 여부를 떠나 회사 성장의 과실을 주주와 임직원들과 공유하고 다른 기업과 차별화되는 복지 정책을 제공해 임직원을 배려하고 있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업계에서는 삼성의 이번 행보에 큰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대법원의 판결을 남겨두고 삼성이 입장문을 낸 것은 향후 판결과 무관하게 회사의 입장을 바꾸겠다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또 입장문으로 하여금 노조문제가 제기된 일부 회사 차원을 넘어 삼성 계열사 전체로 노사 문제에 관한 혁신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이 창립 이래 고수해온 ‘비노조 경영‘을 사실상 포기한 선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노조에 대한 방침을 바꾼 것에 대해 그간 근로자와 생긴 갈등을 겪으면서 생각해 둔 게 있지 않겠냐는 의견이 나온다. 이에 적절한 시기를 찾았다는 분석이다. 삼성은 반도체 공장 백혈병 발생 문제로 근로자와 10년간 분쟁을 끌어온 바 있다. 여기에 창립 이후 노조 와해 사건으로 사상 초유의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법정 구속되는 사태를 겪으며 과거의 방식을 더이상 고수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이 공식적으로 노조를 인정하는 데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결단이 있었을 것이라고 보고있다. 앞서 이 부회장은 11월 열린 삼성전자 창립 50주년 행사에서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자”며 경영의 중요한 키워드로 ‘상생’을 제시했다. 

한편 삼성의 이와 같은 변화에 따라 앞으로 삼성전자 뿐만 아니라 계열사 전체의 노조 활동이 힘을 받게 될 전망이다. 현재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하에는 지난달 16일 출범한 삼성전자 노조를 비롯 삼성SDI, 삼성증권, 삼성생명, 에버랜드, 에스원 등도 노조가 설립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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