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서울 노원구 을지대학교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故김원종님 추모 및 CJ대한통운 규탄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고인의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를 방지하기 위한 정부와 본사의 책임을 요구했다.(사진=박은정 기자)
12일 서울 노원구 을지대학교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故김원종님 추모 및 CJ대한통운 규탄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고인의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를 방지하기 위한 정부와 본사의 책임을 요구했다.(사진=박은정 기자)

20여 년을 택배노동자로 근무해왔던 김원종 씨, 그는 지난 8일 배송 도중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사망했다. 48세의 젊은 나이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추석 연휴까지 더해지면서 사상 유례없는 택배 물량 앞에 그는 과로사로 목숨을 잃었다. 그의 사망에는 정부의 탁상행정과 모기업의 안일함이 원이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분류작업 인력 '꼼수' 투입, 희생자는 결국 택배노동자

12일 오전 서울 노원구 을지대학병원 장례식장 앞.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개최한 '故 김원종님 추모 및 CJ대한통운 규탄 기자회견'에서 고인의 아버지는 아들의 유니폼을 손에 쥔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원통함을 호소했다.

아버지는 "밥 먹을 시간도 없이 하루에 택배 400개 배송이 말이 되느냐"며 "우리 아들의 죽음이 마지막이 되게 해달라"며 분노를 표했다.

고인의 죽음은 택배 현장이 처한 현실을 가장 집약적으로 표현해 더욱더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대책위 박석운 대표는 "하루 벌어서 하루 살며 아버지를 전심으로 모시던 착한 직원이었다"며 "택배 물량 폭증으로 택배회사에서 분류인력을 지원해 과로사를 방지하겠다고 했지만, 재벌 택배 회사 CJ대한통운은 꼼수를 썼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코로나19로 폭등한 택배 물량에 추석 연휴까지 앞두고 대책위는 정부에 택배 노동자 과로사 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이에 국토노동부와 고용노동부는 분류작업 인력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추석 성수기에 서브터미널 분류작업을 위해 2067명을 투입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치 대타협을 이뤄낸 것 같았던 정부는 양치기 소년이 됐다. 약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책위는 "노동조합 조합원이 있는 터미널에만 분류작업 인력을 투입하는 꼼수로 일관해왔다"며 "고인이 일했던 터미널엔 단 한 명도 분류작업에 투입되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산재 적용제외 신청서 쓰게 했다"…유가족 보상은?

더구나 고인은 산재 적용제외 신청서를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유족들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이는 고인뿐만이 아니라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대다수의 현실이라고 한다. 

실제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임종성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CJ대한통운의 올해 7월 입직자 4910명 중 64.1%(3149명)가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6명 이상이 위험한 택배업에 종사하면서 위험 사각지대에 내몰린 것이다.

박 대책위 대표는 "CJ대한통운의 방조와 대리점 소장의 강요가 있었음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며 "(고인이 있던 대리점은) 지난여름 고인을 포함한 택배기사 13명을 모아놓고 산재 적용제외 신청서를 쓰게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유족들은 산재보상 조차 받지 못해 앞으로 살길이 막막하다"면서 "노동부는 한 특정 사업장에서 산재 적용제외 신청서가 접수되면 조사하고 심사해야 하는데 무엇을 했느냐"며 분노했다. 노동부의 묵인이나 유착없이는 이런 비상식적인 행태가 방치되고 있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CJ대한통운은 소중한 생명이 주검이 된 상황에서도 강 건너 불구경하는 자세로 일관해 비난을 받고 있다. 올해 한 해 만 과로로 사망한 택배노동자 8명 중 5명이 CJ대한통운 소속이지만, 본사 차원의 대책마련은 미흡한 실정이다. 

박 대표는 "CJ대한통운은 국민들 앞에 무릎을 꿇고 유족들에게 사죄해야 한다"며 "산재 제외 신청을 강요했던 점을 책임져야 하며, 유족들에게 위로금을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책위 한 관계자는 "CJ대한통운이 '택배상생위원회'라는 명칭으로 유족들에게 500만원을 지급했다"며 "보상금을 안 받은 유족들도 있다"고 말했다. CJ대한통운 택배상생위원회는 택배기사, 집배점, 운송 간선사, 인력 도급사 등 택배 산업을 이끄는 5개의 주요 주체가 상생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설립됐다. 

이에 대해 CJ대한통운 측은 "현재 고인의 사인과 관련해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라면서 "필요한 부분에 대해 최대한 협력하고 있다"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전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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