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마트가 최근 예비 안내견 출입을 제재하면서 논란이 일자 사과문을 게시했다. (사진=뉴시스 인용/디자인=조현선 기자)
롯데마트가 최근 예비 안내견 출입을 제재하면서 논란이 일자 사과문을 게시했다. (사진=뉴시스/디자인=조현선 기자)

[뉴시안=조현선 기자]지난 6월, 김예지 국회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섰다. 시각장애인인 그의 곁에는 안내견 조이가 함께했다. 이날 조이는 낯선 환경에서도 짖거나, 돌발 행동 없이 듬직한 모습으로 김 의원의 곁을 끝까지 지키다 회의 후 함께 의사당을 나왔다.

조이는 국회 본회의장에 입성한 최초의 안내견이다. 그간 국회는 본회의장과 상임위 회의장 등에 안내견의 출입을 제한했다. 국회법상 ‘해(害)가 되는 물건이나 음식물’로 분류돼 반입을 금지해 왔기 때문이다.

고리타분하던 국회마저 문턱을 맞춘 일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건이 벌어졌다. 롯데마트 잠실점의 한 매니저(직원)로 추정되는 사람이 훈련 중인 '예비' 장애인 안내견의 입장을 제지하며 언성을 높였다는 목격담이 올라오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공개된 사진에는 '안내견 공부 중'이라는 주황색 퍼피코트를 입고, 잔뜩 겁먹은 채 숨어있는 강아지의 모습이 담겼다. 생후 7주부터 일반 가정집에 위탁돼 1년간 사회화 교육을 받는 '예비 안내견'이라는 뜻이다. 평범한 '애기 댕댕이'가 아니다.

예비 안내견과 동반한 이들도 견주가 아니라 퍼피워커다. 이들은 예비 안내견의 사회화 교육을 돕고, 더 나아가서는 안내견이 은퇴한 이후의 삶을 책임지기도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뮤지션 정재형은 세 마리의 예비 안내견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퍼피워커다. MBC '놀면뭐하니'에 출연해 유재석의 구둣발을 배고 얌전히 잠만 자고 갔던 해듬이와, '무한도전' 시절 정형돈의 귀를 핥고 간 축복이도 그와 함께 퍼피워킹 중인 예비 안내견이었다. 방송에 비춰진 두 안내견은 모두 소란 없이 얌전했다. 사랑스러운 천사들이었다.

그 안내견도 그랬을 테다. 소리를 지르는 직원을 향해 짖거나 물지 않았고, 그저 앉아 있었다고 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은데도 당황하지 않고 보호자 뒤에 숨었다고 했다. 천성이 온순하고, 사람들과 잘 섞일 수 있게 전문가들의 번식 회의를 거쳐 태어난 예비 안내견이니 의심할 여지가 없다.

어처구니없는 사건에 대중은 함께 분노했다. 롯데마트는 결국 사과문을 내놨다. '퍼피워커'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단다. 안내견의 겁먹은 눈동자와 축 늘어진 꼬리를 봤을 텐데도 겨우 '배려'라는 게 최선이었는지 묻고 싶다.

롯데는 각종 홍보영상을 통해 '함께 가는 친구'라는 점을 늘 강조해 왔다. 모순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존중은커녕 그들의 눈이 되어주는 안내견이 '해를 끼치는 물건'이라도 되는 양 언성을 높였다. 누구보다 외부 환경 요인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도록 교육된 예비 안내견을 두고, 사실상 왜 장애인이 아니냐며 소리친 행위에 대해 견주를 배려하지 못한 것으로 일단락하겠다는 것이다.

당시의 무례함은 제쳐두고 후속 조치마저 실망스럽다. 현장에서도 안내견과 동행한 이가 장애인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했고, 논란이 불거지면서 그들이 퍼피워커라는 사실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을 텐데도 단순히 견주로 치부했다. 색안경을 끼고 예비 안내견이 아닌 단순히 대형 반려견으로 본 데서 온 논란인데도 여전했다.

그래서일까. 사과문에는 직원에 대한 문책 조치도, 후속 조치로 납득할 수 있을 만 한 어떤 메시지도 없었다. 이마저도 숨기듯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밝혔다. 짧은 메시지 안의 궁서체는 화룡점정이다. 눈을 의심했다. 합성이길 바랐다. 차라리 그 수모를 겪은 것이 시각 장애인이 아닌 퍼피워커이며, 상처받은 예비 안내견이 글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울 지경이다.

안내견들은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걷는다. 천천히 걷고 싶은 파트너의 목소리를 듣고 걸음 속도를 맞춘다. 시각장애인의 친구로서, 나와 함께하는 친구의 눈을 자처한다. 계단이나 횡단보도, 장애물을 맞닥뜨리면 멈춰서 신호를 준다. 빛이 사라져 어둡고 캄캄한 길이겠지만 함께 가고 있다는 신호다.

지난 5월, 국회는 시각장애인과 한 몸인 안내견과 기꺼이 함께 가겠다며 응답했다. 깨어있는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함께 가자던 친구들은 국회의 시계도 멈추려 하고 있다. 그들이 언제쯤 우리의 속도를 맞출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세상의 모든 빛을 잃은 '친구'들과, 그와 함께하는 천사 같은 '친구'들을 응원하는 '친구'로서 묻고 싶다. 함께 갈 친구는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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