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HDC그룹 회장.(사진=뉴시스)
정몽규 HDC그룹 회장.(사진=뉴시스)

[뉴시안= 정창규 기자] M&A 전략을 펼치며 경영 보폭을 넓혀 온 정몽규 HDC그룹 회장의 경영 셈법에 또 한 번 빨간불이 켜졌다.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무산되면서 마련해둔 인수 자금을 복합리조트 사업에 쓰려고 했던 계획마저 접으면서 그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평가다.

4일 일부 언론과 재계에 따르면 지난 9월 HDC리조트는 강원도 원주시 소재 토지 24만9353㎡(약 7만 5000평)를 HDC현대산업개발(이하 HDC현산)에 253억9400만원을 받고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최근 HDC현산과 HDC리조트 간의 토지 매매계약이 취소됐다. 

일각에서는 사업 다각화를 통해 항공-호텔-유통-건설 등을 잇는 '종합 모빌리티그룹'으로 도약을 꿈꿨던 정 회장의 경영 입지가 좁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정 회장은 현대그룹 창업주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넷째 동생인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HDC그룹은 원주 땅을 구입해 생활형 숙박시설과 관광휴양 부대시설을 개발할 예정이었다. 또 HDC리조트는 매각을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골프장 공사 재원을 확보할 계획이었다.

HDC리조트는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리조트 오크밸리 운영 법인으로 2019년 HDC그룹이 한솔그룹으로부터 인수했다.

인수 당시 HDC그룹은 “시설 현대화와 함께 부티크 호텔, 아트 빌리지 등을 새롭게 개발하고, 포레스트 어드벤처 등 체험형 액티비티를 확충해 고객들이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복합 레저 리조트로 만들 것이다”고 밝혔다. 

계열사인 HDC리조트는 “이 자금을 통해 골프 코스를 90홀 규모로 확장해 오크밸리를 국내 최대의 골프 코스를 갖춘 매머드급 골프리조트로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달 양사는 돌연 토지 매매계약을 해지해 버렸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번 일은 정 회장의 과욕이 빚어낸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점은 과욕이 향하는 방향이다"고 지적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항공업이 직격탄을 맞고 아시아나항공의 경영도 어려움을 겪자 갑자기 소극적 자세로 돌아선 것처럼 리조트 사업 역시 수익성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리조트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가 급하게 손을 뗀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HDC그룹이 금호산업에 금호리조트 매각 중단을 요구한 것이 계약금 반환 소송과 관련한 문제도 있지만 리조트 사업에 대한 관심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정 회장이 토지를 매입하려 했던 이유도 HDC리조트 대신 자본력이 되는 계열사 HDC현대산업개발이 직접 리조트를 개발하기 위해서였다는 해석이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정 회장은 기업 인수·합병(M&A)에 관해서는 파격적인 광폭 행보를 이어 왔다. 지난 1999년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으로 취임한 뒤 회사의 장기적으로 성장을 위해 2005년 파크 하얏트 서울을 통해 호텔업에 뛰어들었다. 이어 2006년에는 영창악기도 인수했다. 2015년에는 호텔신라와 HDC신라면세점을 설립해 면세사업에 진출했다. 또 2018년에는 부동산114를 인수해 프롭테크 시장 뛰어들었다. 이어 2019년에는 한솔개발을 인수해 리조트·레저사업으로도 보폭을 확대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 회장이 워낙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고 포트폴리오가 다양해야 회사가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하지만 최근 회사 내부에서도 정 회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HDC그룹은 지난해 12월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합병(M&A)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같은 속도는 2월 이후 코로나19 사태로 제동이 걸렸다. 이후 금호·아시아나와 산은 등의 거듭된 인수 요구에도 HDC그룹이 인수를 마무리 짓지 않자 9월 노딜(인수 무산)로 1년을 허비하고 말았다.

현재 HDC현산은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이 제기한 2500억원 규모 계약금 몰취 소송에 집중하고 있다. HDC현산이 패소하면 계약금을 모두 잃게 된다.

한 재계 관계자는 “‘미다스의 손’으로 불린 정 회장은 이제 ‘마이너스의 손’이라는 오명을 쓸 위기에 놓였다”면서 “거시적인 목표를 갖고 장기간 사업 다각화를 구상해왔던 정 회장이 앞으로 어떤 경영 행보를 펼칠지 재계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본지는 HDC그룹 측에 여러 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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