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HDC그룹 회장.(사진=뉴시스)
정몽규 HDC그룹 회장.(사진=뉴시스)

[뉴시안= 정창규 기자] “부산 아이파크는 초상집 그 이상의 분위기다.”

프로축구 부산 아이파크의 기영옥 대표가 취임 보름 만에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힌 가운데 구단주인 정몽규 HDC그룹 회장의 셈법에 또다시 빨간불이 켜졌다. 내년 1월 예정된 대한축구협회 회장 선거에서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16일 축구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기 대표는 최근 구단 모기업 고위층에 자진사퇴 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으나 14일과 15일에 출근하지 않았다.

앞서 지난 1일 취임한 기 대표는 취임 1주일 만에 광주시의 특정감사 결과가 공개되면서 논란이 됐다.

광주시 감사위원회는 기 대표가 광주FC 단장 재직 시절, 구단 예산 3억원 가량을 빼돌려 사적으로 사용한 사실을 공개했다. 이에 광주시가 경찰에 수사 의뢰했고, 광주 서부경찰서는 지난 11일 업무상 횡령 혐의로 기 대표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이에 기 대표는 “개인적으로 급히 쓸 일이 있어서 구단 계좌의 돈을 인출했다가 모두 상환했다”면서 “예산 집행과 절차 등에 대해 잘 몰라서 그랬던 일이지만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는 일부 사실을 인정했다. 

기 대표는 아이파크가 1년 만에 다시 2부로 강등당한 상황에서 혼란을 잠재울 구원투수였다. 축구계 일각에서는 이번 불미스러운 사태를 놓고 정 회장의 잘못된 인사검증의 대참사로 보고 있다.

한 스포츠계 관계자는 “축구계 안팎에서는 기 대표와 관련한 의혹이 과거에 근무하던 구단에서 일어난 것이지만, 리더십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 업무를 계속 수행하기가 어렵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앞서 부산 아이파크는 지난 2015년 2부리그로 강등됐다. 지난 2012년 승강제가 도입된 이후 기업 구단이 2부리그로 강등된 것은 아이파크가 최초다. 이어 지난 2019년 4년 만에 승강 PO를 거쳐 1부리그로 복귀했지만, 2020시즌은 최하위에 그치며 1년만에 또다시 2부로 강등됐다. K리그 역사상 기업구단이 두 번이나 강등당한 것은 사상 최초다.

하필이면 부산의 구단주가 한국축구의 수장이자 프로연맹 총재까지 역임했던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라 ‘회장사’의 연이은 강등은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1월에 치러질 대한축구협회장 3선 도전을 앞두고 있어 정 회장에 대한 축구계 안팎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한 스포츠계 관계자는 “정몽규 회장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구단주로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면서 “축구행정과 경영에 있어 최고의 전문가라 할 수 있는데 정작 자기 구단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서 협회장 선거에 또다시 나가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6년 대한민국 축구를 빛낸 선수 및 관계자들을 위한 축하 자리에서 기영옥 대표와 정몽규 회장의 모습.(사진=뉴시스)
지난 2016년 대한민국 축구를 빛낸 선수 및 관계자들을 위한 축하 자리에서 기영옥 대표와 정몽규 회장의 모습.(사진=뉴시스)

사실 정 회장의 축구 사랑은 유명하다. 지난 2011년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에 이어 2013년에는 대한축구협회 회장 자리까지 올랐다. 현대그룹 시절부터 울산 현대 호랑이 축구단 구단주를 역임하는 등 축구에 많은 관심을 가져온 정 회장은 지난 1999년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에 취임 이후 현대그룹에서 완전히 독립해 지난 2000년 대우 로얄즈를 인수 부산 아이파크(당시 부산 아이콘스) 축구단을 창단했다.

정 회장은 기업경영에서도 두각을 보였다. 최근까지 기업 인수·합병(M&A)에 관해서도 파격적인 광폭 행보를 이어 왔다. 지난 2005년 파크 하얏트 서울을 통해 호텔업에 뛰어들었고, 2006년에는 영창악기도 인수했다. 2015년에는 호텔신라와 HDC신라면세점을 설립해 면세사업에 진출했다. 2018년에는 부동산114를 인수해 프롭테크 시장에 뛰어들었다. 2019년에는 한솔개발을 인수해 리조트·레저사업으로도 보폭을 확대했다.

이같은 속도는 2월 이후 코로나19 사태로 제동이 걸렸다. 이후 금호·아시아나와 산은 등의 거듭된 인수 요구에도 HDC그룹이 인수를 마무리 짓지 않자 9월 노딜(인수 무산)로 1년을 허비하고 말았다. 현재 HDC현산은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이 제기한 2500억원 규모 계약금 몰취 소송에 집중하고 있다. HDC현산이 패소하면 계약금을 모두 잃게 된다.

그 사이 ‘전통의 강호’로 통하던 부산 아이파크 축구단은 추락을 거듭했다. 일각에서는 기업구단에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구단주로 두고 있었음에도 재정은 넉넉지 않은데다가 구단 재정을 위해 팔아치우는 선수만 있고 전력 보강은 이뤄지지 않은 현실을 감안하면 성적 향상은 애초 불가능한 일이다라는 평가다. 그 와중에 선수영입은 꼬였으며, 부상자도 속출했으며, 늘 감독 선임을 두고 갈팡질팡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가운데 기 대표는 혼란을 잠재울 적임자였다. 하지만 이젠 모두 물거품이 됐다. 국가대표 출신 미드필더 기성용(FC서울)의 아버지로 잘 알려졌지만, 금호고와 광양제철고 등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고 대한축구협회 이사 등을 역임한 축구행정가다.

이번 사태로 정 회장의 경력과 이미지에도 많은 오점을 남겼다.

특히 대한축구협회 회장으로서의 정몽규 회장은 쉽게 말해 ‘한국 축구의 구단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내년 1월 6일 예정된 대한축구협회 회장 선거에서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앞서 정 회장은 2013년 1월 제52대 축구협회장 선거에서 경선을 거쳐 처음 당선됐고, 2016년 7월 치러진 제53대 축구협회장 선거에 단독 출마해 투표에 참석한 대의원 만장일치로 연임에 성공한 바 있다.

체육회 규정에는 회원종목단체 임원은 한 차례 연임만 가능하지만 재정 기여, 주요 국제대회 성적, 단체평가 등 기여도가 명확하면 3번째 임기에 도전할 수 있도록 예외 조항을 뒀다. 정 회장은 지난달 28일 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로부터 3선 도전을 승낙받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인 정몽규 회장에게는 올해 아시아나항공 인수 실패에 이어 2500억원 규모 계약금 몰취 소송에, 구단주로서는 있는 부산 아이파크 2부리그 강등에 기영옥 대표의 불명예 사퇴설까지 매우 힘든 한 해를 보내고 있다”면서 “축구행정과 경영에 있어 최고의 전문가라 할 수 있는데 최근의 일들을 보면 악재가 겹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음 달에 있을 축구협회장 선거에 정 회장의 ‘대항마’로 나설 후보군이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변수는 늘 있는 법인지라 어떻게 마무리될지도 눈여겨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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