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KBS,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라
[기자수첩] KBS,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라
  • 조현선 기자
  • 승인 2021.02.01 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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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사옥 (사진=뉴시스)
KBS 사옥 (사진=뉴시스)

[뉴시안= 조현선 기자]"KBS를 시민의 품으로, KBS의 주권은 시민과 시청자에 있고 모든 권력은 시민과 시청자로부터 나온다"

KBS가 수신료를 인상한다. KBS는 지난달 27일 이사회에 현재 월 수신료 2500원에서 약 53.6%를 인상한 3840원으로 조정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인상안은 이사회의 심의·의결을 마친 뒤 방송통신위원회의 검토와 국회의 승인을 거쳐 확정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KBS가 홍보한것 처럼 '주권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던 '시민과 시청자'의 반응은 싸늘하다. 41년째 동결됐던 수신료를 이제 좀 올리겠다는데도 인상 소식이 들려온 이후부터 줄곧 시끄러웠다.

방송법 제64조에 따라 텔레비전 수상기가 있는 가정은 모두 '텔레비전방송수신료'를 내야 한다. 현재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는 KBS의 수신료를 전기세에 합산해 위탁 징수하고 있다.

한전 측은 세대마다 수상기의 보유 여부를 모두 확인할 수는 없으니 일단 TV 수신료를 자동 부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신료 선청구 후 TV가 없는 곳은 미소지 신청을 통해 말소하는 식으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IPTV 가입, 스마트TV를 통한 OTT 서비스만을 이용할 때에도 무형의 전파를 수신하고 있다고 보고 수신료를 부과한다. 단, 월 사용량 50kWh 미만의 세대에는 자동 면제해 준다. 알다가도 모를 기준이다.

수신료 인상 계획이 알려지자 시청료를 지불하는 주체인 국민들은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지난 6월 한 언론이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공영방송의 수신료 인상에 찬성하는 입장은 6%에 불과했다. 오히려 '폐지해야 한다(46%)', '인하해야 한다(14%)' 등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KBS 수신료와 전기요금을 분리 징수해달라'는 글이 21만명의 동의를 얻기도 했다. KBS를 공영방송으로 인정할 수 없으며, 수신료 징수 방식도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7월, 부산·울산·경주 등 경남 지역에 폭우가 쏟아졌다. 온라인 커뮤니티엔 재난방송 및 민방위 방송 주관방송사인 KBS를 향한 비판이 쏟아졌다. "국민의 방송이라던 공영방송조차 참담했던 밤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면서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이다"라고 비판했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재난 전문 방송사라더니 뉴스에서 한두 꼭지가 전부다. 수신료의 가치를 전혀 못하는데 왜 강제 징수하나"라는 불만이 게재됐다. KBS는 익일 밤 재난방송 편성 명세를 공개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했다고 항변했으나 그마저도 부족하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KBS는 수신료가 인상되면 재난방송의 강화, 저널리즘 공정성 확보, 지역방송 서비스 강화, 교육 방송과 군소·지역 미디어에 대한 지원 등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사실상, 이 시국에 수신료 인상을 강행하기 위한 '명분'인 셈이다. 이쯤 되면 수신료가 부족해 재난 방송에 소홀했나 의구심이 든다. 또 수신료가 부족해서 저널리즘의 공정성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자인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지난 2019년 KBS가 이렇게 거둬들인 수신료 수입은 약 6705억원이다. 전체 재원(1조4566억원)의 46%에 달한다. 1가구의 수신료에서 EBS 배분금(3%)과 한전에 납부하는 위탁수수료(약 6.15%)를 제외하면 약 2300원을 KBS가 가져간다.

앞서 KBS는 2018년 585억, 2019년 759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2015년 5000억원에 달했던 광고 수입이 4년 만에 반 토막이 난 것이 주요인으로 꼽힌다. 일부 자산을 처분하며 버티고는 있지만, 최근 10년 새 최대 규모의 적자라는 분석이 나온다. KBS의 수신료 인상 시도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7·2010·2013년에 이어 네 번째다. 여론의 동정심을 얻을 법도 한데 쉽지 않은 이유는 뭘까.

KBS는 여러 차례 정권이 바뀌어도 '국영·관영방송'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했고, 최근 '검언유착' 오보 사태를 겪고 사과했다. 적자라면서 2019년 말 기준 상위 직급으로 분류되는 2급 이상 직원 숫자가 여전히 과반(56.6%)을 차지하는 구조도 여전하다. 지난 2018년 방송통신위원회가 KBS에 재허가를 내어주며 해당 문제 해소 조건을 걸고 시정명령까지 내렸지만 제자리걸음이다.

수신료 수입이 절반에 해당하는데도 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다. 수신료 외의 수입과 수신료를 통합해 방송사업비, 판매·관리비, 시청자사업비 등 항목으로 지출 내역을 제출하고 있다. 수신료의 수입 및 지출을 구분하는 회계 분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한두 해의 이야기가 아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41년 동안 수신료가 동결됐다는 점은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굳이 '이 시국'에 수신료 인상을 추진해야 했는지도 의문이다. 여당이 과반 이상의 의석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 통과라는 난관이 줄었다고 생각한 걸까.

금액이 얼마든 역사상 전무후무한 전염병 사태에 국회에서 각종 세금 감면안이 숨 가쁘게 돌아다니는 것을 생각하면 참 가혹하다. 최근 EBS가 '수능 전문 교재 출판사'에서 연령 불문 어른이들을 위한 슈퍼스타, 펭수를 낳은 '소속사'로 변모해 적자 청산 활로를 찾은 선례가 있어 더욱 아쉽다. 

2021년, MZ세대(15~39세 사이 연령층의 생산과 소비 능력이 가장 좋은 세대)는 모든 서비스와 재화의 주요 이용 주체로 꼽힌다. 이들 중 대다수는 어릴 적 일요일 밤이면 모두 모여 KBS를 시청했다. 이들은 '시청률의 제왕'이었던 개그콘서트 밴드의 익숙한 멜로디를 듣고 나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이면 교실이 떠나가라 유행어를 읊으며 왁자지껄 떠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곧 현재 넷플릭스, 유튜브 등 주요 콘텐츠 서비스의 주요 이용층이다. 이들에게 KBS는 어떤 의미일까.

아쉽게도 KBS는 트렌드에 맞는 양질의 콘텐츠를 통해 '수신료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수신료 인상과 CPS 협상을 통해 자금 끌어모으기에 혈안이다. 위기의 원인은 따로 있는데 애써 눈을 감고 귀를 막는다. 위기를 외부에서 찾고, 기회 또한 외부에서 찾는 셈이다. 공영방송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수신료 분담이라는 국민의 의무를 다해달라 호소한다. 공감할 수 없는 대목이다. 

"'수신료의 가치를 더욱 높이며'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겠습니다". KBS가 약속한 올해의 방송지표다.

격변하는 방송 통신 환경에서 길을 잃은 것도 이해한다. 주요 정착지였던 그날의 영광과 달리 여러 콘텐츠 사업자에 밀려 스쳐 가는 정류장으로 전락했다는 설움도 이해한다. 그러나 '국민의 방송'이다. IPTV, 유료 구독 서비스와 달리 모든 이들을 쉽게 끌어모을 수 있는 힘을 가졌다. 그토록 찾던 기회는 이미 마련돼 있다는 소리다. 

양승동 KBS 사장의 호소대로, 수많은 종편과 PP(방송채널사용사업자) 채널과 넷플릭스·유튜브 등 상업 매체가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이들 업체와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우수 콘텐츠의 개발이 선행과제다. 수신료의 가치를 다하는 국민의 방송을 위해 기꺼이 수신료를 부담할 수 있는 쇄신을 먼저 약속해야 한다.

수천만의 눈과 귀가 KBS를 향해 있다. 함께 울고 웃던 그때와 달리 날카로운 손가락 끝이 무섭다. 다시 시민의 품에 안긴 KBS를 향한 손가락질 대신 박수와 찬사가 쏟아지는 날이 머지않았기를 바란다. 그때 그 시절 우리가 그랬듯, '넷플릭스 봤어?' 대신 'KBS 봤어?'라는 아침 인사를 주고받는 날이 돌아오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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