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로라 부시가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장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로라 부시가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장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시안= 기영노 편집위원]대통령들은 힘이 세다. 막강한 힘을 가진 최고의 권력자임은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는 2차 대전을 일으켜 600여 만 명의 유태인과 그 열 배에 이르는 6000여 만 명 가량의 군인과 민간인을 사망케 했고, 존 F. 케네디(구 소련의 후루시초프)는 쿠바 봉쇄로 3차 세계대전을 막아 수억 명의 생명을 구했다.

넬슨 만델라는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 ‘아파르트헤이트 시대(the Apartheid era)를 ‘용서와 화해’로 풀어냈고, 군부독재의 상징 전두환은 86, 88 때 스포츠 장려정책으로 체육인들로부터는 크게 미움을 받지 않고 있다.

리처드 닉슨과 마오쩌둥은 탁구를 매개로 냉전 관계의 미국과 중국(공)의 관계를 녹여내 인류 평화에 막대한 기여를 했고, 조지 웨아는 축구에서 얻은 명성을 바탕으로 스포츠인 최초로 라이베리아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도 인간이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은 ‘코로나 19’에 감염되었다가 회복됐다. 일본의 아베 총리와 김영삼 대통령은 골프를 치다가 엉덩방아를 찧는 촌극을 벌였고,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병인 알츠하이머를 앓다가 사망했다.

스포츠는 그 나라 대통령들의 관심, 그리고 정책 변화에 따라 활성화 되거나, 침체되곤 했었다.

지구촌의 현역, 역대 대통령(수상)들은 그동안 어떠한 스포츠 정책을 폈었고, 그래서 그 나라의 스포츠는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알아보았다.

<이 연재물은 기자(시간의 물레 간 2013년, 대통령과 스포츠)의 저서를 보강한 것이다>

◆ 김병현과의 인연

김병현은 2001년 애리조나 다이마몬드백스 팀에서 뛰었을 때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를 끼었었다. 아시아 선수로는 1999년 뉴욕 양키즈 팀 소속으로 우승을 차지했었던 일본의 이라부 히데키 선수에 이어 두 번째 였다.

김병현은 2004년에는 보스턴 레드삭스 팀 소속으로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를 끼어 두 개를 갖게 되었는데, 수 십 만 달러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는 그 반지는 모두 광주은행에 보관되어 있다.

김병현이 부시 대통령과 처음 만난 것은 2001년 첫 번째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를 끼었을 때였다.

2001년 12월14일, 김병현이 월드시리즈 우승팀의 일원으로 관례에 따라 백악관을 방문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환영을 받았다.

그런데 그 때 부시 대통령이 김병현에게 다가가 살며시 어깨를 두드리며 먼저 아는 채를 해서 화제가 되었다.

메이저리그 우승팀이 백악관을 방문 했을 때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는 선수는 수퍼스타이거나 그가 평소 눈여겨봤던 선수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팀의 선발 투수도 아니고, 그렇다고 체격도 크지 않은 아시아권 선수에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건냈 다는 것은 김병현의 플레이와 홈런을 얻어맞고 애처로워 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김병현이 뉴욕 양키즈 팀과의 월드시리즈 때 2개의 홈런을 얻어맞고 주저앉았던 것을 상기하면서 ‘힘을 내라는 뜻’으로 어깨를 두드려 준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그 해 월드시리즈를 1차전부터 7차전까지 모두 봤었다, 특히 뉴욕 양키즈 팀의 홈인 양키즈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3차전 경기에서는 미국으로서는 치욕적인 9.11 테러가 났는데도 불구하고 사전에 약속했던 대로 시구를 하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은 작은 체격의 김병현이 메이저리그에서는 흔하지 않은 언더 핸드로 강한 공을 던지는 것을 보고 퍽 인상에 남았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홈런을 얻어맞고 주저앉는 모습이 퍽이나 애처로웠었던 모양이다.

◆ 야구단 구단주 출신

부시는 대통령이 되기 전 한 때 야구단을 갖고 있었을 정도로 야구광이다.

그는 1989년 텍사스 레인저스 팀을 인수해 구단주가 됐다.

부시는 알링턴 시에 ‘새로운 야구장을 지어주지 않으면 텍사스 레인저스 팀의 연고지를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있다’는 협박성 발언을 하는 등으로, 알링턴 시가 텍사스 레인저스 팀에게 새로운 야구장을 지어주도록 집요하게 설득하기 시작했다.

결국 부시는 자신의 정치력을 이용, 알링턴 시를 부추 켜서 새로운 구장을 만들도록 했다. 알링턴 시의 주도로 시민들의 돈을 각출, 즉 세금인상이 그것이었다.

그의 용의주도한 로비와 직·간접적인 압력을 받은 알링턴 시는 시민들의 투표를 거쳐, 야구장을 짓기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한 판매세를 올리는 방안을 통과시켜서 무려 1억3500만 달러에 달하는 재원을 마련했다.

새 구장을 만드는데 반대를 하는 세력도 생겨났다. 하지만 반대파 들은 반대캠페인을 제대로 펼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모금액이 고작 3000달러 밖에 안됐기 때문이었다.

1991년 1월19일, 알링턴 시는 새 구장 건설을 위해 판매세를 높이는 주민투표 법안을 거의 2대1의 비율로 통과시키게 된다. 당시 부시의 텍사스구단은 판매세 인상으로 확보한 1억3500만 달러 외에 알링턴 시로부터 각종 조세감면혜택을 받고 또 경제적 지원도 받아 시와 시민들로부터 받은 보조금은 총 2억 달러(약 2000억원)를 넘어섰다.

텍사스구단의 새 주인이 된 부시와 그 투자자들은 1994년 4월1일 개장된 새 야구장 알링턴 볼 파트의 건립으로 엄청난 이익을 얻었다.

스카이박스 및 스위트 룸 판매, 각종 광고판 판매, 음식과 라이센스 판매, 주차장 티켓판매 등으로 떨어지는 수익은 대부분 텍사스구단에 귀속됐다. 또 구장 이름을 판 수익도 모두 구단으로 들어갔다.

텍사스 구단은 갖가지 부대 수입으로 돈을 벌어서 좋고, 또 구단은 새 야구장을 홈으로 사용하게 됐기 때문에 시장 가치도 그만큼 높아져서 한 마디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됐다.

◆ 텍사스 레인저스 '먹튀' 원조

부시와 그의 파트너들은 1998년, 텍사스 구단을 단물만 쪽 빼어 먹은 뒤 톰 힉스 씨에게 팔아 치웠다.

톰 힉스는 부시대통령과 오래전부터 막역한 관계에 있던 사람이다. 힉스 구단주는 당시 부시에게 정치 헌금을 4번째로 많이 낸 사람이었다. 힉스 구단주가 텍사스구단을 영입하며 지불한 돈은 무려 2억5000만 달러였다. 부시와의 막역한 관계도 관계이지만 고수익이 보장되는 스타디움을 갖고 있으니 충분히 그만큼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부시대통령이 텍사스구단에서 손을 떼며 만진 돈은 약 1500만 달러로, 초기투자비용 약 60만 달러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무려 25배가 되는 엄청난 장사를 했다.

박찬호 선수가 LA 다저스 팀에서 텍사스 레인저스 팀으로 올 때 5년 동안 6500만 달러의 거액을 받았지만, 별다른 성적(4년 동안 22승23패)을 내지 못해 ‘먹튀’ 선수로 불렸지만, 사실 텍사스 구단주 부시가 ‘먹 튀의 원조 격’인 셈이다.

이제는 전 기아 타이거즈 에이스 양현종 선수가 텍사스 레인저스와 스플릿 계약을 맺고 메이리그 진입을 위해 시범경기를 앞두고 있다.

부시는 텍사스 레인저스 팀의 구단주라는 대중의 인지도를 등에 업고 구단주 시절이었던 1994년 텍사스 주지사가 됐다. 이어 2000년엔 아버지 조지 부시에 이어 8년 만에 대통령까지 됐으니 텍사스구단을 사서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쥔 셈이다.

부시 부자는 모두 야구를 좋아해서 아버지 부시는 예일 대학교 재학시절 야구부 주장까지 했다. 두 차례나 칼리지 월드시리즈 무대에도 섰었던 정통 야구인이었고, 그 보다는 못했지만 아들 부시 역시 리틀 야구팀에서 나름대로 야구선수 생활을 해서 자칭 야구인이라고 불리는 걸 좋아한다.

부시 대통령 부자와 한국의 박정희, 박근혜 부녀와는 비슷한 점이 많다.

한국의 박정희, 박근혜 부녀 대통령인데 비해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와 조지 워커 부시도 부자 대통령이다. 그리고 박정희 조지 부시, 조지 W. 부시 모두 공화당 당적으로 박근혜는 공화당의 후신인 새누리당 당적으로 대통령이 됐다.

두 아버지 대통령(박정희, 허버트 부시)은 모두 고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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