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은 중고거래 서비스 뿐만 아니라 지역 내 커뮤니티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사진=조현선 기자)

[뉴시안= 조현선 기자]“저… 당근?” “당근?” “당근?!” “당근!” 유재석도 하고, 박명수도 했다. 대한민국 방송가에서 모른다면 서러울 이들이 본인의 시간을, 재능을 나눴다. 중년의 여성에게 자전거 타는 방법을 가르쳐 줬고, 전남 영광에서 굴비집을 한다는 이모를 위한 노래도 만들어줬다. 

스타트업 아닌 스타트업. 당신 근처의 마켓, '당근마켓'의 일화다. 

지난 2015년 카카오 출신 김용현, 김재현 공동대표는 동네 이웃 간의 연결을 돕고 활발한 교류가 있는 지역 사회를 만들겠다며 '당근마켓'을 선보였다. GPS를 통해 사용자의 지역을 인증하고, 최대 반경 6km 이내에서만 거래할 수 있도록 해 지역 사회 활용의 의미를 살렸다. 

2021년 2월 기준 전국 누적 가입자 수는 2000만명, 월 이용자만 1400만명에 달한다. 이같은 성공의 배경으로는 1인 가구 증가와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한 재활용 등이 꼽힌다.

내게는 필요 없는 물건이지만 누군가는 애타게 찾고 있을 수 있으니 일단 한 번 올려보는 이들이 늘었다. 비싼 돈을 주고 새 물건을 살 필요 없다는 인식 변화도 한몫했다. 광고와 기업들이 가득한 포털 등에서 피신해 온 이들도 모여들었다. 덕분에 "이게 팔린다고?" 싶었던 물건들을 처분할 수 있다며 입소문을 탔다.

그래서일까.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시대에도 당근은 멈출 줄 몰랐다. 지난해에만 1억2000만 건의 이웃 간 거래와 무료 나눔이 성사됐다.

당근마켓으로 이어진 이들의 만남은 짧게는 1분, 길게는 5분 안에 끝난다. 물론 유재석과 박명수처럼 때와 경우에 따라 간혹 더 길어지는 경우도 있다. 짧은 만남이 끝나면 '시간 약속을 잘 지켜요', '상품 상태가 설명한 것과 같아요' 등으로 마음을 나누며 서로의 '매너 온도'를 올린다. 

우리 모두의 삶이 퍽퍽해졌던 지난해 이웃들과 나눔을 실천하는 무료 나눔은 210만 건을 넘어섰다. 2019년 대비 약 5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그야말로 '당근 이펙트'이다.

유재석도 마찬가지다. 혼밥이 익숙치 않은 청춘을 위해 시간을 들여 맞고기 상대가 되어준 그가 청년과 나눈 첫인사는 "당근?"이었다. 부가 설명 없이도 두 글자면 충분했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학연·지연·혈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심리를 관통하기라도 한 걸까. 같은 지역으로 묶인 이들의 친밀감은 기타 중고거래 서비스를 넘어서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단순한 중고거래 서비스를 넘어서 지역사회를 한 데로 묶고 있다.

지난 2월에는 베란다에서 이불을 털다 인형을 떨어트렸다는 이를 위해 낚싯대를 들고 나타나 이를 구출해 준 강태공이 화제가 됐다. 오래된 자개장을 구매한 이 덕분에 서랍 한켠에서 준 돌아가신 어머니의 600만원과 메모도 발견했다. 구매자에 의해 다시 쓰이지 않았더라면 언젠가 버려져 어머니의 흔적을 영영 놓쳐버릴 수도 있던 사연이다.

중고거래 서비스 넘어 지역 경제 활성화 1등공신으로

최근에는 당근마켓 내 커뮤니티에서 길거리에 떠도는 애완견을 임시 보호 중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곧 가족을 애타게 찾던 중년 여성이 한달음에 찾아왔다.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킨 부부에게 남은 13살 막내 아들이라며 고맙다는 장문의 사연이 훈훈하게 했다.

회사와 학교를 이유로 타지에 혼자 남게 된 사연을 남기면 함께 산책이라도 하자며 지역 내 소모임으로 들어오라며 초대된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소개팅마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사랑의 오작교도 되어줬다. 중고거래 이후 서로의 이상형을 만나 결실을 보게 됐다는 '당근커플'의 사례도 알려졌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게임용 컴퓨터의 추천해 주고, 조립까지 무료로 해 주겠다는 한 고등학생에게 도움을 받아 길고 길었던 지난겨울을 집에 콕 박혀 보낼 수 있었다. 

물론 익명성이 보장된 커뮤니티에서 실제 만남으로 이어지는 경우 위험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한다.

당근마켓을 통해 나눔 받은 에어팟 케이스. 예쁜 키링이 함께 있었지만 먼저 가버렸다. 사진에 있는 키링은 서울 용산구 소재 국립중앙박물관 내 기념품 샵에서 구매한 것. (사진=조현선 기자)

그러나 당근마켓에게도 질량 보존의 법칙은 적용됐다. 훈훈한 이야기만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어디서든 튀는 이들이 있어서다.

이미 뜨겁게 화제가 되기도 했던 자신을 판매한다는 20대 여성, 자신의 담임 선생님을 입양해 달라는 초등학생 등이 당근마켓 내 빌런을 맡고 있다. 서로 뜻이 같다면 다행일 텐데 한쪽의 일방적인 구애 아닌 스토킹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도 종종 알려졌다. 

중고거래 중 흑심을 품고 있는 이들에게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내가 허술하고 똑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빌런들의 야비한 수법이 날로 진화하는 탓이다.

기존 중고거래 서비스 이용자 1020 남성…당근마켓 주 이용층 '3040 여성'

앞으로도 전국 곳곳에서 "당근?"이라는 인사는 점점 더 잦아질 전망이다.

당근마켓에 대한 국민들의 친밀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괜히 복잡한 것 같은 중고거래 앱 대신 최초의 동네 인증 후 사진과 품목을 입력하면 끝난다. 최고의 접근성을 자랑한다. 

이용 연령대가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2020년 기준 타 중고거래 서비스인 '번개장터' 이용객 성비는 남성 46%, 여성 53%인 반면 주 이용객도 20·30세대가 50.1%로 가장 많았다. 

반면 당근마켓의 이용자 비율은 여성 60%, 남성 39.9%이다. 3040 이용객이 전체 60.1%를 기록해 가장 많았다. 당근마켓의 20대 미만~20대 비율은 17%에 그치는 수준이다.

3040 주부들의 파워 덕분일까. 지난해 하반기 리서치 전문기업 엠브레인의 조사 결과, 당근마켓은 브랜드 인식 조사에서 2번 연속 '소비자가 가장 신뢰하는 서비스' 1위를 기록했다. 이용객들은 당근마켓을 떠올릴 때 '이웃 간의 교류를 돕는', '실용적인', '친근한' 앱이라고 답했다. 

누군가에겐 이모, 언니, 누나의 친근함과 꼼꼼함이 오늘날 당근마켓의 이미지를 완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유다.

당근마켓은 국내 6577개 지역뿐만 아니라 영국·미국·캐나다 등 해외에도 진출했다. 파란눈의 외국인에겐 'KARROT'으로 통한다. 지난 2월 말, 일본 요코하마를 시작으로 일본 내에서도 시범 서비스도 시작했다.

우리를 가까워지게 해 준 당근마켓은 우리에게서 멀어져 더 높이 가고 있다. 최종 목표를 묻자 글로벌 시장으로 시장을 확대해 국경을 뛰어넘는 지역생활 커뮤니티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최근에는 지역 내 커뮤니티를 활용해 소상공인의 광고를 저렴한 비용의 광고비를 받고 송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구 스타에서 글로벌 스타로 발돋움하면서도 지역 경제 활성화를 지향하겠다는 본래 임무도 허투루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비춰진다.

어린 시절, 엄마의 귀가가 늦어질 때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랫집에 가 있으라는 그 아랫집을 찾아보긴 힘든 세상이다. 이웃이라는 이유로 인사를 건네면 오지랖이라는 소리를 듣진 않을까 걱정부터 앞선다.

참 고맙게도 당근마켓이 지향하는 것은 '우리 동네'다. 빨갛고 파란 전화번호가 덕지덕지 붙은 업체의 광고 없이 우리끼리 모여 있으니 함께 울고 웃는 사연도 덩달아 많아졌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 냄새가 그리운 지금 이보다 더 반가울 수가 없다. 

앞으로도 우리 동네를 끈끈하게 이어 줄 '당근 이펙트'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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