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이 27일 질병으로 별세했다. (사진=농심그룹)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이 27일 질병으로 별세했다. (사진=농심그룹)

[뉴시안= 박은정 기자]'신라면', '새우깡', '짜파게티' 등의 국민 간식을 출시하며 식품업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던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이 영면에 들었다.

농심그룹은 27일 "신춘호 회장이 오전 3시 38분 지병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향년 92세.

지난 25일 열린 농심 주주총회에서 신 회장의 장남 신동원 부회장은 그에 대해 "몸이 안 좋다"며 "병원에 입원해 계신다"고 말한 바 있다. 

신 회장은 지난 1992년까지 대표이사 사장직을 맡아 오다가 그룹 체제로 전환되면서 농심그룹 회장을 이어갔다.

그러나 최근 56년 만에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나며 농심그룹의 2세대 막이 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었다. 실제로 최근 주총에서 신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이 상정되지 않은 채, 신 부회장이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이에 차기 회장은 자연스럽게 신 부회장이 맡을 것으로 보인다. 

신 회장은 부인 김낙양 여사와 신현주(농심기획 부회장)·신동원(농심 부회장)·신동윤(율촌화학 부회장)·신동익(메가마트 부회장)·신윤경(아모레퍼시픽 서경배 회장 부인) 3남 2녀를 두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에 차려졌다. 발인은 30일 오전 5시다.

'라면쟁이' 신춘호 회장, 그는 누구인가

신 회장은 1930년 12월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에서 태어났다. 1958년 대학교 졸업 후 일본에서 성공한 故 신격호 회장을 도와 제과 사업을 시작했으나 1963년부터 독자적인 사업을 모색했다.

그는 일본에서 쉽고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 '라면'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당시 신 회장은 "한국에서의 라면은 간편식인 일본과는 다른 주식이어야 한다"며 "값이 싸면서 우리 입맛에 맞고 영양도 충분한 대용식이어야 먹는 문제 해결에 큰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의 브랜드 철학은 매우 확고했다. 반드시 우리 손으로 직접 개발해야 하며 제품의 이름은 간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적인 맛이 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신 회장은 스스로를 '라면쟁이', '스낵쟁이'라고 부르며 직원들에게 장인 정신을 주문하곤 했다. 

신 회장은 회사 설립부터 연구개발을 중요시했다. 이에 연구개발 부서를 따로 설립하며, 농심만의 특징을 담아내 한국인 입맛에 맞는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그는 브랜드 전문가로도 이름 높다. 유기그릇으로 유명한 지역명에 제사상에 오르는 '탕'을 합성한 '안성탕면'이나 짜장면과 스파게티를 조합한 '짜파게티', 어린 딸의 발음에서 영감을 얻은 '새우깡' 등 농심의 역대 히트작품에는 신 회장의 천재성이 반영됐다.

신춘호 회장의 대표작 '신라면'. (사진=농심)
신춘호 회장의 대표작 '신라면'. (사진=농심)

신 회장의 대표작은 역시 신라면이다. 지금은 익숙하지만 출시 당시에는 파격적인 이름이었다. 당시 브랜드는 대부분 회사명이 중심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 회장이 "발음이 편하고 소비자가 쉽게 주목할 수 있으면서 제품 속성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는 네이밍이 중요하다"며 임원들을 설득했다.  

그의 통찰력 덕분일까. 신라면은 1991년부터 국내시장을 석권하는 국민라면이 됐다. 이제는 세계 시장을 공략하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신 회장은 해외진출 초기부터 신라면의 세계화를 꿈꿨다. 한국인의 맛으로 만들어진 신라면이 세계인에게도 충분한 만족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라 자부했다.

그 결과 신라면은 월마트 등 미국 주요 유통채널에서 판매 중이다. 중국에서도 한국 특유의 얼큰한 맛이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신 회장의 노력은 세계가 인정했다. 2018년 중국의 인민일보가 신라면을 ‘중국인이 사랑하는 한국 명품’으로 선정한 것이다. 그리고 지난해 미국 뉴욕타임즈(The New York Times)가 신라면블랙을 '세계 최고의 라면 1위'로 꼽았다. 당시 신 회장은 그 누구보다 환하게 웃었다고 전해졌다.

신 회장의 노력과 헌신은 국민들의 삶과 깊숙하게 연결돼 희노애락을 함께한 국민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그의 끊임없는 도전의 역사는 앞으로도 한국을 넘어 세계 시장까지 계속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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