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의 판교테크노밸리 전경. (사진=경기도)

[뉴시안= 조현선 기자]판교에 노조 설립 바람이 불고 있다. 높은 연봉과 상상을 뛰어넘는 복지로 문과생들에겐 선망의 주인공이 됐던 곳이다. 어딘가 어색했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판교테크노밸리에 입주한 기업들의 노동조합 설립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판교테크노밸리는 IT·게임 관련 기업들이 밀집한 곳이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은 '뮤', 'R2M' 등을 서비스하는 게임사 웹젠이 노조 '웹젠위드'를 설립했다고 지난 5일 밝혔다. 지난달에는 카카오뱅크도, 한글과컴퓨터에서도 노조가 설립됐다. 

수평형 조직문화와 성과평가 체제를 강조하던 IT 업계에서 3년간 총 9개의 노조가 설립됐다. 웹젠은 창립 21년 만에, 한글과컴퓨터는 약 17년 만에 다시 노조가 설립됐다. 설립 시기는 다르지만 이들 노조는 뜻을 같이했다. 회사 실적이 크게 성장했지만, 개개인에 대한 보상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왜 지금일까. 

지난해 대부분의 IT·게임 관련 기업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비대면 경제로의 전환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관련 수혜를 톡톡히 봤다. 공교롭게도 카카오뱅크, 한글과컴퓨터 모두 지난해 최대 실적을 내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넥쏘공(넥슨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의 힘은 과히 대단했다. 넥슨은 지난 2월 게임 업계 최초로 개발 직군 신입사원 초봉을 5000만원으로 올리며 연봉 대란의 신호탄을 쐈다. 기존 직원의 연봉은 800만원씩 일괄 인상했다. 뒤를 이어 엔씨소프트·넷마블·컴투스·게임빌·크래프톤·펄어비스까지 모두 파격적인 연봉을 내세우며 개발자 모시기에 나섰다. 

이런 소식은 IT 업계를 넘어 '월급쟁이' 노동자들 모두에게 이슈다. 누군가에겐 아이를 낳으면 코딩학원부터 보내야겠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반면, 누군가에겐 '불공평'을 떠올리며 노동조합 가입을 결심하게 되는 배경이다. 

사실 이런 노조 설립 붐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8년, 주 52시간 초과 근무를 금지하는 노동법 시행 등을 계기로 네이버와 카카오, 안랩에 노조가 들어섰다. 게임 업계에서는 넥슨·스마일게이트·엑스엘게임즈 등이 노조를 두고 업계 처우 개선을 위해 노동자들을 대신하고 있다.

실제로 게임 업계의 첫 스타트를 끊었던 넥슨의 노조는 고용 불안 해소, 복지 개선뿐만 아니라 포괄임금제를 폐지하는 방안을 합의하는 등 노사 간의 훌륭한 소통 창구가 되어주고 있다.

통상 포괄임금제는 탄력근무제 등 근무시간이 불규칙한 업종에서 주로 써온 제도지만 인력이 전부인 IT 기업에서는 노동한 시간 만큼 추가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제기돼 왔다. 실제로 대다수의 IT 기업이 여전히 포괄임금제를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노동부가 이를 규제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지 3년이지만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IT·게임 기업 내 비 개발 직군의 고충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업계 특성상 개발 직군 위주일 수밖에 없는 형편을 알고 있지만, 뒷전으로 밀리는 것 같아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렇듯 노조 설립 소식 자체만으로도 사측에는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주로 급여·복지 등 처우 개선 요구를 따르다 보면 회사 전체에 재정적 부담으로 확대되고, 이는 곧 필요한 곳에 자금이 투입되지 못하는 원인이 돼 공멸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그 입장이다.

판교에서 들려오는 노조 설립 소식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IT·게임 기업이 막 출범하던 당시와는 달리 근속연수가 길어지면서 존재감도 커지는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자연스러운 순서라는 것이다.

실제로 IT 업계 노조 내에서도 귀족노조, 강성노조 등 부정적인 측면부터 떠올리지 않도록 스스로 개선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IT 업계 노조들은 스스로 '달라야 한다'고 되새기고 있다"며, "기존 일부 노조의 극단적, 저항적 모습을 부각시키지 않고 긍정적인 방향에서 다 같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단결권을 행사하는 데 초점을 맞춰 자중하는 분위기"라는 설명이다. 

지난 2019년 네이버 노조가 '블랙아웃' 대신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개봉일에 맞춰 조합원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는 등의 단체 행동에 나섰던 것이 그 예다. 인력이 가장 중요한 IT 업계에서 사측이 놓칠 수 있는 부분을 노동자를 대변해 목소리를 내주는 역할이라는 설명이다. 

사측에서도 무작정 감추고 피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조심스럽긴 하나, 시대적 흐름에 따른 현상으로 본다는 입장이다.

한글과컴퓨터 한 관계자는 "서로 간의 합의를 위해 양보하며 소통하는 '채널'이 생겼다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며 "당사는 노동조합 출범과 향후 노조 활동을 존중할 것이며, 구성원들과 더욱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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