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 배터리 공장(좌)과 SK이노베이션 배터리 공장(우). (사진=뉴시스)
LG화학 배터리 공장(좌)과 SK이노베이션 배터리 공장(우). (사진=뉴시스)

[뉴시안= 조현선 기자]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2년여 간의 배터리 전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SK이노가 LG엔솔에 총액 2조원(현금 1조원+로열티 1조원)을 지급하고, 관련 국내외 쟁송을 모두 취하하기로 했다. 향후 10년간 추가 쟁송도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시한을 하루 앞두고 배터리 분쟁에 극적 합의하는 데 성공했다. LG에너지솔루션(구 LG화학)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SK이노베이션을 제소한 지 714일 만이다.

양사 배터리 전쟁은 지난 2017년 LG화학 전지사업본부의 직원 80여 명이 SK이노베이션으로 대거 이직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LG 측은 업계 후발주자인 SK이노가 이직한 직원들을 통해 핵심 기술을 빼갔다고 의심했다. 연구개발(R&D), 생산, 품질관리, 구매, 영업 등 전 분야에 걸친 대규모 인력을 의도적으로 빼 왔고, 이 과정에서 영업 비밀을 훔쳐 갔다고 주장했다.

SK이노는 2018년 말 폭스바겐의 배터리 수주 계약을 따냈다. LG에너지솔루션은 SK이노베이션이 이직한 직원들을 통해 자신들의 납품가를 파악하고 최저가격으로 입찰해 수주에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LG에너지솔루션이 2019년 4월 29일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미국 ITC에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제기하면서 배터리 분쟁이 시작됐다.

그러자 SK이노베이션은 같은 해 6월 서울중앙지법에 LG에너지솔루션이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고, 9월에는 미국 ITC에 LG에너지솔루션을 상대로 특허 침해소송을 제기하며 맞불을 놨다.

LG에너지솔루션은 ITC에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특허침해 맞소송을 제기했고, 델라웨어주 연방지법에 손해배상 소송을 걸기도 했다.

그 결과 LG에너지솔루션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 ITC는 지난해 2월 "SK이노베이션이 영업비밀을 침해한 것이 맞다"며 조기패소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같은 해 6월 LG에너지솔루션은 서울중앙지검에 SK이노베이션을 '산업기술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등의 혐의로 고소했고, 법원은 SK이노측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원고 패소를 결정했다. LG에너지솔루션의 완승으로 가는 듯했다.

그러나 ITC는 올해 3월 양사가 각각 제소하고 맞소송한 '특허권 침해' 소송에 대해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예비 결정하면서 판도가 뒤집히는 듯했다. ITC는 LG에너지솔루션이 제기한 'SK 측 특허 소송 취소' 요구를 기각했다. 이 과정에서 SK이노베이션의 고객사인 포드, 폭스바겐 등은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올해 2월 ITC는 결국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고 최종 판결하고,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부품·소재에 대해 10년 동안 미국 내 수입금지를 명령했다. 단, 미국 고객사들을 우려해 포드와 폭스바겐 일부 차종에 대해서는 각각 4년과 2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그러나 ITC의 결정에 상관없이 미국 행정부가 '비토(veto·거부권)'를 행사할 수 있어 최종 판결의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바이든 행정부의 거부권 행사와 관련해서는 미국 내에서도 SK이노베이션의 공장이 위치한 미국 조지아주(州)를 둘러싸고 의견이 갈린 것으로 알려졌다. SK이노베이션은 만약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조지아주 공장을 그대로 두되, 거부권 행사 없이 ITC 결정이 확정될 경우 조지아주 생산 설비를 헝가리로 옮기겠다는 계획을 보이기도 했다.

앞서 조지아주 주지사는 바이든 대통령에 3차례에 걸친 거부권 행사를 요구했다. SK이노베이션은 미 조지아주에 위치한 배터리 1, 2공장에 1조5000억원을 투자해 최소 2600여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홍보한 바 있다.

미 행정부는 대통령의 거부권 없이 양 사 합의를 유도하는 데 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SK이노가 조지아주 공장을 철수해 전기차 배터리 공급에 차질이 있으면 중국 배터리 수입 등 바이든 행정부의 기조와는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국내에서도 양사에 합의하라는 압박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올해 1월 "부끄럽다"며 합의를 촉구한 바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양사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ITC의 '영업비밀 침해' 최종 판결과 관련해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시한인 11일(현지시각, 한국시간 12일 오후 1시)을 하루 앞두고 극적으로 합의했다.

합의 직후 SK이노베이션은 "이번 분쟁과 관련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친환경 정책, 조지아주 경제의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더 큰 책임감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합의를 통해 ITC의 '미국 내 SK 측의 배터리 10년간 수입 금지' 판결은 모두 무효가 된다. 현재 미국 델라웨어 연방법원에서 진행 중인 '영업비밀 침해' 관련 실질적인 손해배상 관련 재판도 취하되며, 국내에서 진행 중인 모든 고소 건도 취하하겠다는 방침이다.

양사는 이번 합의를 계기로 사업 가치·기업가치 제고에 전념하겠다는 방침이다. 배터리 분쟁으로 피해를 입은 고객사들도 안정적인 배터리 공급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은 "한미 양국 전기차 배터리 산업의 발전을 위해 건전한 경쟁과 우호적인 협력을 약속했다"며 "특히 미국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배터리 공급망 강화 및 이를 통한 친환경 정책에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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