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플라스틱 없이도 잘 산다' 사이트에 게시된 사진. 이니스프리가 지난해 6월 출시한 그린티 씨드 세럼 페이퍼 보틀의 포장지를 벗기자 플라스틱 용기가 보인다. (사진=페이스북 캡처)
페이스북 '플라스틱 없어도 잘 산다' 페이지에 게시된 사진. 이니스프리가 지난해 6월 출시한 그린티 씨드 세럼 페이퍼 보틀의 포장지를 벗기자 플라스틱 용기가 보인다. (사진=페이스북 캡처)

[뉴시안= 박은정 기자]최근 '친환경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화장품 업계도 친환경 마케팅에 열을 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아모레퍼시픽그룹 자회사 이니스프리가 '친환경'을 내세운 상품을 출시했지만, 겉과 속이 다른 모습에 소비자들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14일 화장품업계에 따르면 지난 6일 페이스북 '플라스틱 없어도 잘 산다' 페이지에 "작년에 산 이니스프리 세럼"이라며 "'플라스틱 최소화 종이 보틀'을 내세우며 적극 판촉하길래 샀는데 다 쓰고나서 안쪽이 궁금해 갈라보니 떡하니 플라스틱병이 나왔다"는 글이 게재됐다. 이어 글쓴이는 "완전 그린워싱(greenwashing·친환경위장술) 아니야? 배신감에 소비자 고발센터에 접수했다"고 덧붙였다. 

논란이 된 제품은 지난해 6월 이니스프리가 출시한 '그린티 씨드 세럼 페이퍼 보틀 리미티드 에디션'이다. 이름 그대로 이니스프리는 '페이퍼 보틀(종이 용기)'로 제품을 만들었다. 제품 겉면에도 'Hello, I’m Paper Bottle(안녕, 나는 종이 용기야)'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러나 종이 소재로 만든 줄 알았던 제품을 갈라보니 플라스틱 통이 등장하자 소비자들은 분노를 표하기 시작했다. 제품명에도 '페이퍼 보틀'을 내세워 친환경 면모를 강조했던 터라, 소비자에게 오해의 소지를 야기시켰다는 것이다. 이에 제품 설명을 충분히 듣지 못한 소비자 입장에서는 과대광고로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다.

환경운동연합 백나윤 자원순환 활동가는 "이니스프리에서 '나는 종이 용기야'라는 문구를 내세워 제품을 홍보했는데, 용기를 뜯어보니 플라스틱이 있었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은 배신감이 들었다"며 "기업은 소비자들에게 보다 정확한 사실을 알리며 마케팅을 펼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니스프리 '그린티 씨드 세럼 페이퍼 보틀 에디션' 온라인 상세페이지. (사진=이니스프리)
이니스프리 '그린티 씨드 세럼 페이퍼 보틀 에디션' 온라인 상세페이지. (사진=이니스프리)

◆ 이니스프리의 '꼼수'라고 볼 수 있을까

이니스프리는 논란에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니스프리 관계자는 "해당 제품은 화장품 제조 과정에서 사용되는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고 재활용율을 높이기 위해 무색 PE 재질의 용기를 사용해 겉면에 종이 라벨을 씌운 플라스틱 저감 제품"이라며 "이같은 노력으로 기존 제품 대비 51.8%의 플라스틱을 절감해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품 패키지 박스와 홈페이지 상세 페이지에 기획 의도와 분리배출 방법을 상세히 표기해 안내했지만, 제품 네이밍으로 용기 전체가 종이 재질로 인식될 수 있다는 부분을 간과했다"며 "고객에게 보다 정확하게 정보를 전달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이니스프리는 제품 출시 당시 페이퍼 보틀 폐기방법 등에 대해 홍보해 왔다. 화장품 상자 표면에도 '분리배출 시 재질에 따라 플라스틱과 종이를 분류해 버려달라'는 안내문을 담았다.

◆ '페이퍼 보틀' 용어 알아야…종이로만 만든 것 아냐 

일각에서는 '페이퍼 보틀'이라는 용어가 국내에서 생소하기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이라는 관측도 있다. 통상적으로 '페이퍼 보틀'은 일반적으로 종이로 구성되진 않았지만, 종이의 비중을 높이고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해 개발된 제품을 의미한다.

윤순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는 "'페이퍼 보틀'이라고 하면 소비자들은 '종이로만 만들어졌구나'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데, 기대와 달리 현실에서 다른 모습을 접하게 되자 소비자들의 반발이 일어난 것 같다"며 "아직까지 100% 종이로 화장품 용기를 만드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이니스프리는 오히려 솔직하게 100% 종이로 제작한 것은 아니지만, 종이 함량을 높이고 플라스틱 비중을 낮추는 데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소비자들에게 보여줬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번 논란을 통해 화장품 업계는 용기 사용에 대해 주의할 것으로 보인다. 윤 교수는 "화장품 업계는 소비자들이 화려한 케이스를 즐겨 구매하기 때문에 재활용이 가능한 용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정부 입장에서 재활용이 가능한 용기를 사용하도록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백 활동가 역시 "식품업계에서는 플라스틱 용기를 투명색으로 바꾸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지만, 화장품 업계에서는 규제가 없어 플라스틱 사용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하다"며 "화장품 생산 단계부터 플라스틱 사용률을 줄이기 위한 정부의 규제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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