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연재] ‘대통령들의 스포츠’…5.18 배후 인물로 사형선고 받은 김대중, 취임 후 모두 용서하고 골프 장려
[2021 연재] ‘대통령들의 스포츠’…5.18 배후 인물로 사형선고 받은 김대중, 취임 후 모두 용서하고 골프 장려
  • 기영노 편집위원
  • 승인 2021.05.18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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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9년 김대중대통령이 김미현 골프선수에게 체육훈장맹호장(2등급)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국가기록원)
지난 1999년 김대중대통령이 김미현 골프선수에게 체육훈장맹호장(2등급)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국가기록원)

[뉴시안=기영노 편집위원]대통령들은 힘이 세다. 막강한 힘을 가진 최고의 권력자임은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는 2차 대전을 일으켜 600여만 명의 유대인과 그 열 배에 이르는 6000여만 명 가량의 군인과 민간인을 사망케 했고, 존 F. 케네디(구소련의 후루시초프)는 쿠바 봉쇄로 3차 세계대전을 막아 수억 명의 생명을 구했다.

넬슨 만델라는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 ‘아파르트헤이트 시대(the Apartheid era)를 ‘용서와 화해’로 풀어냈고, 군부독재의 상징 전두환은 86, 88 때 스포츠 장려정책으로 체육인들로부터는 크게 미움을 받지 않고 있다.

리처드 닉슨과 마오쩌둥은 탁구를 매개로 냉전 관계의 미국과 중국(공)의 관계를 녹여내 인류 평화에 막대한 기여를 했고, 조지 웨아는 축구에서 얻은 명성을 바탕으로 스포츠인 최초로 라이베리아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도 인간이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은 ‘코로나 19’에 감염되었다가 회복됐다. 일본의 아베 총리와 김영삼 대통령은 골프를 치다가 엉덩방아를 찧는 촌극을 벌였고,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병인 알츠하이머를 앓다가 사망했다.

스포츠는 그 나라 대통령들의 관심, 그리고 정책 변화에 따라 활성화되거나, 침체되곤 했었다.

지구촌의 현역, 역대 대통령(수상)들은 그동안 어떠한 스포츠 정책을 폈고, 그 나라의 스포츠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알아보았다.

<이 연재물은 기자(시간의 물레 간 2013년, 대통령과 스포츠)의 저서를 보강한 것이다>

 

김대중, 신군부로부터 사형 선고받다

또다시 5.18이 돌아왔다. 지금으로부터 41년 전인 1980년 5월, 신군부가 본격적으로 정치 관여에 대한 움직임을 보이자 그에 대한 반발로 학생들의 시위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당시 실세로 떠오른 전두환은 물러가라며 목소리를 냈다. 

국회에서는 계엄 해제와 개헌 등의 정치 현안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 됐다. 신군부는 자신들이 정국 운영에 방해가 될 세력들을 제거하기 위해 준비된 시나리오에 따라 5월 17일 밤 24시를 기해 전국으로 비상계엄을 확대했다. 이에 신군부는 계엄 포고령 10호를 선포하여 휴교령, 정치 활동 금지령, 주요 신문과 방송국 보도의 언론 보도검열 강화 같은 조처를 내리기에 이르렀다.

신군부는 5월 17일 밤 '3김'.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등을 포함한 정치인과 재야인사를 감금하고 군 병력으로 국회를 봉쇄했다.

5월 18일, 날이 밝자 광주 지역 대학생들은 '김대중 석방', '전두환 퇴진', '비상계엄 해제'를 요구하며 한 데 모였다. 신군부는 계엄군(공수부대 주축)을 파견, ‘상무충정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유혈진압을 하기 시작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은 그로부터 열흘 뒤인 28일까지 진행됐다. 신군부는 열흘 동안 학생뿐만 아니라 무고한 시민까지 무력으로 진압했다. 사망자 166명, 행방불명자 54명, 상이 후유증 사망자 376명, 부상자 3139명 등에 달하는 등 엄청난 인명피해를 냈다.

그 후 신군부와 5공화국 정부는 ‘5.18 민주화 운동’을 불순분자 또는 김대중의 사주로 발생했다고 왜곡했다. 1980년 9월 17일, 육군본부 대법정에서 열린 19회 공판에서 김대중은 내란음모, 국가보안법, 반공법, 계엄법, 외국환관리법 등에 대한 위반 혐의에 따라 사형을 선고받는다.

당시 김대중 씨는 법정 최후진술을 통해 "이 땅의 민주주의가 회복되면 먼저 죽어간 나를 위해서 정치보복이 다시는 행해지지 않도록 해 달라”고 말해 국제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 후 미국 정부와 세계 각국 지도자와 인권단체들이 구명운동에 나선다. 이에 전두환은 김대중의 형을 감해 주는 대신 자신을 레이건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해 달라고 제안하고, 미국은 이를 받아들인다. 신군부는 1981년 1월 23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김대중 및 그와 연루된 11명의 감형에 대해 의결했다.

김대중 씨는 사면복권 된 후, 1997년 12월,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나서 당선되었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은 당선 직후인 12월 20일, 김영삼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회동 후 내란 목적 살인,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각각 무기징역과 17년 형을 받고 복역 중이던 전직 대통령 전두환과 노태우에 대한 특별사면과 복권을 발표했다.

12월 22일, 전두환과 노태우는 2년 남짓의 수형 생활을 마치고 석방됐다.

김대중 대통령, 골프 장려

김영삼 전임 대통령이 ‘골프 중단’을 선언하면서 그의 재임 동안 골프계가 암흑기에 빠졌었다면 김대중 대통령 재임 기간(1998-2003)은 골프가 엘리트 스포츠와 생활 스포츠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몸이 불편해서 비록 골프를 하지 않았지만, 골프를 스포츠로 인정했다. IMF 외환위기 때 국민에게 희망을 준 박세리는 물론, 최경주와 박지은, 김미현 등 미국 남자프로골프 PGA와 미국여자프로골프 LPGA에서 맹위를 떨친 선수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베풀고 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골프 대중화를 위해 퍼블릭 골프장을 늘려야 한다”는 말은 골프계에 구원과도 같은 말이었다.

김대중 대통령과 주요 국제대회들

김대중 대통령의 재임 동안에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2002 한, 일 월드컵 그리고 방콕 아시안게임과 부산 아시안게임이 치러졌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남북한이 공동 입퇴장을 했다. 남한과 북한이 한반도기를 들고 아리랑에 맞춰 손에 손을 잡고 행진을 한 것이다.

고 사마란치 당시 국제올림픽 위원회 IOC 위원장이 “내가 IOC 위원장 재임 동안 가장 감격스러운 장면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시드니 올림픽의 남북한 공동 입, 퇴장은 올림픽 역사와 세계 평화를 위해서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2002 부산 아시안게임에는 북한 선수단이 참가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미녀 응원단’까지 동원해 전 세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2002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한국이 이탈리아를 물리치고 16강 진출이 확정되자 한국 팀 선수들이 있는 라커룸까지 직접 내려와서 축하해 주었고, 당시 한국 축구 대표팀의 홍명보 주장이 “16강의 대 위업을 달성한 우리 선수들에게 병역면제 혜택을 주십시오”라고 건의하자 즉석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고 대답한 후 실제로 모든 선수에게 병역면제 혜택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김 대통령 재임 시절에, 정부 내의 체육 기구가 더 축소됐다.

체육 업무는 문화관광부 속으로 흡수됐고, 부처 명칭에서도 아예 ‘체육’이라는 말이 빠졌다. 체육 담당 부서도 1개국으로 줄었다.

지금의 문화체육관광부로 ‘체육’이란 말이 들어간 것은 이후 정부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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