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대 KT 위즈의 경기, 6회초 2사 1, 3루에서 KT 3루주자 강백호가 1루주자 알몬테가 도루를 하는 사이 득점한 뒤 하이파이브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KT 위즈 강백호. (사진=뉴시스)

[뉴시안=기영노 편집위원 ]

“어린이에게는 꿈을, 젊은이에게 정열을, 온 국민에게 건강한 여가선용을.”

1982년 프로야구 출범당시 슬로건이다. 지난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KBO)가 어느덧 4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숱하게 많은 선수가 그라운드에서 울고 웃었고, 관중들과 시청자들이 그들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200승 이상을 올린 투수와 400홈런을 넘긴 타자, 메이저리그에서도 드문 40(홈런)-40(도루)을 달성한 선수, 심지어 30승을 올린 투수도 있었다. 또한 세계신기록인 9경기 연속홈런의 자랑스러운 기록도 나왔다.

KBO리그에서 쌓은 실력을 바탕으로 지구촌 최고의 야구 무대 메이저리그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선수,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다가 KBO리그로 컴백한 선수도 생겨났다. 

초창기 선수들은 일반 직장인의 10년 치 연봉 2400만원이 최고였지만, 지금은 150억원(4년 동안) 몸값을 자랑하는 선수도 나올 정도로 파이가 커졌다.

프로팀은 6팀에서 10팀으로 늘었고, 1998년 이후 외국 선수들도 합류해 프로야구의 ‘양과 질’이 매우 높아졌다. 명실상부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은 프로야구 40주년을 맞아 매주 수요일, 재미있고 의미 있는 40개의 스토리로 찾아뵐 예정이다. [편집자주]

 

이제까지 4할 타자는 13명뿐

메이저리그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타격 이론가 찰리 로는 그의 저서 “3할의 예술‘에서 3할 타율의 어려움을 썼다.

스포츠에서 가장 어려운 기술이라는 타격에서 3할을 기록하는 것은 예술의 경지에 이르러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통산 타율이 3할을 넘어설 확률은 1%도 안 된다. 4할 타율은 그야말로 ‘신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처음 4할 타율을 기록한 선수는 1894년 빌리 해밀턴 선수였고, 1941년 테드 윌리럼스가 마지막 4할 타자로 남아있다. 그 사이 11명의 선수가 17번의 4할을 기록했다.

1950년에 시작된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4할 타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1986년 외국 타자 랜디 바스가 기록한 0.389가 최고 타율이다.

한국 프로야구는 1982년 백인천 플레잉 코치가 기록한 0.412가 유일한 4할 타율이고, 대만은 왕보룽 선수가 2016년(0.414), 2017년(0.407) 2년 연속 4할을 기록했다.

따라서 지금까지 4할을 기록한 선수는 메이저리그 11명(17회), 한국 프로야구 1명(1회) 대만 프로야구 1명(2회)으로, 모두 13명이 20번 기록했다. 4할을 기록하려면 규정 타석을 넘어서야 하는데, 규정 타석은 자신이 속한 리그의 경기 수에다 3.1을 곱해야 한다. 

현재 한국 프로야구 규정 타석은 144 곱하기 3.1 즉 447번 이상 타석에 들어서야 한다. 

kt 위즈 강백호 4할 유지

강백호는 2018년 신인왕, 2020년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상 수상 등 해를 거듭할수록 무섭게 성정하고 있다.

이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타자로 자리매김한 kt 위즈 강백호 선수가 팀이 67경기를 치른 현재까지도 4할 타율을 유지하고 있다.

강백호의 파워는 워낙 뛰어났다. 특히 손목 힘은 역대 최고급이라고 할 정도로 강하다. 이제 프로야구 4년 차가 되면서 노련미까지 갖춰 무결점 타자가 되었다.

강백호는 카운트 별, 주자 유무에 따라 풀 스윙을 하거나 컨택에 집중하거나 한다, 최근에는 상대 수비의 시프트를 역으로 이용해, 3루가 빈 것을 알고 번트안타를 터트리곤 한다. 그래서 지난해 까지는 타구가 3루 쪽 방향으로 16% 밖에 가지 않았었는데, 올 시즌에는 25%로 많이 늘었다.

강백호는 이제 kt 위즈 팀과 K리그를 넘어서 올림픽 대표 4번 타자로 한국야구 대표 팀 타선을 이끌어야 한다.

야구계에서는 강백호 선수가 결국 4할대 타율을 달성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과연 언제까지 4할을 유지하고, 결국 3할 몇 푼의 타율을 칠 것인지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제까지 4할에 도전했었던 선수 가운데는 1994년 이종범 (0.093)의 타율이 가장 높았었고, 1987년 장효조(0.387), 에릭 테임즈(2015년 0.281), 2016년 최형우(0.376)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이종범, 한여름 ‘육회’가 발목

우리나라 프로야구가 40년이 되는 동안 많은 명언이 나왔는데, 그 가운데 김응룡 감독의 ”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이라는 말이 매우 의미가 있다.

그만큼 이종범의 야구 센스가 뛰어났다는 말이다. 이종범은 100m를 11초대에 뛰었고, 전형적인 ‘5툴 플레이어’로 주루, 장타력, 컨택 능력, 수비, 어깨를 모두 갖춘 선수였다. 아마 야구선수가 되지 않았다면 축구로도 충분히 국가대표까지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고 할 정도로 운동감각이 뛰어난 선수였다.

이종범이 절정의 컨디션을 보였었던 때가 프로 데뷔 이듬해인 1994년이었었다.

1994년 프로 데뷔 2년 차였었던 이종범은 0.393의 타율로 타격왕, 196안타로 최다안타 1위, 113득점으로 득점 1위, 출루율 0.452로 역시 1위, 0.581로 장타율 1위, 19홈런으로 4위 그리고 불멸의 기록으로 남아 있는 84도루로 역시 1위를 기록했다.

이종범은 1994년 시즌 줄곧 4할을 유지하다가 3할대 후반으로 떨어진 후 8월 21일 광주에서 있었던 쌍방울 레이더스와의 경기에서 4타수 4안타를 쳐서 타율을 다시 4할로 끌어 올렸다.

그러나 육회를 먹은 것이 문제였다. 아마 상한 육회를 먹은 것인지, 심한 배탈에 시달리며 3일을 고생해야 했다. 결국 이종범은 8월 23일, 24일 한화 이글스전, 8월 26일 롯데 자이언츠전 까지 3일 동안 3경기에서 13타수 1안타를 기록, 타율이 3할 8푼대로 떨어지면서 다시 4할에 도전할 수 있는 동력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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