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연재] 강백호와 김상훈의 번트 안타
[수요연재] 강백호와 김상훈의 번트 안타
  • 기영노 편집위원
  • 승인 2021.07.07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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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열린 2021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대 KT 위즈의 경기, 6회초 1사에서 KT 3번타자 강백호가 안타를 친 뒤 1루에서 세리머니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KT 위즈의 강백호가 안타를 친 뒤 1루에서 세리머니 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뉴시안=기영노 편집위원 ]

“어린이에게는 꿈을, 젊은이에게 정열을, 온 국민에게 건강한 여가선용을.”

1982년 프로야구 출범당시 슬로건이다. 지난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KBO)가 어느덧 4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숱하게 많은 선수가 그라운드에서 울고 웃었고, 관중들과 시청자들이 그들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200승 이상을 올린 투수와 400홈런을 넘긴 타자, 메이저리그에서도 드문 40(홈런)-40(도루)을 달성한 선수, 심지어 30승을 올린 투수도 있었다. 또한 세계신기록인 9경기 연속홈런의 자랑스러운 기록도 나왔다.

KBO리그에서 쌓은 실력을 바탕으로 지구촌 최고의 야구 무대 메이저리그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선수,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다가 KBO리그로 컴백한 선수도 생겨났다. 

초창기 선수들은 일반 직장인의 10년 치 연봉 2400만원이 최고였지만, 지금은 150억원(4년 동안) 몸값을 자랑하는 선수도 나올 정도로 파이가 커졌다.

프로팀은 6팀에서 10팀으로 늘었고, 1998년 이후 외국 선수들도 합류해 프로야구의 ‘양과 질’이 매우 높아졌다. 명실상부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은 프로야구 40주년을 맞아 매주 수요일, 재미있고 의미 있는 40개의 스토리로 찾아뵐 예정이다. [편집자주]

 

4할 타율 노리는 강백호의 ‘번트 안타’

KT 위즈 강백호가 1982년 백인천 플레잉 코치 이후 39년 만에 4할 타율을 노리고 있다.

강백호는 극단적으로 당겨치는 풀 히터다. 지난해까지 타구의 84%가 오른쪽으로 갔고, 16%만이 왼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올해는 왼쪽으로 가는 타구가 9%포인트 늘어 25%나 된다.

강백호를 상대하는 팀들이 자신의 타구를 막기 위해 시프트(3루 쪽을 비워놓고 오른쪽으로 치우친 수비)를 걸자, 이를 역이용 해서 3루 쪽으로 번트를 대서 내야안타(번트안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지난 5월 15일 사직구장에서 벌어진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는 한 경기에 두 번이나 번트안타를 성공시키기도 했었다.

1회 초 첫 타석과 4회 두 번째 타석에서 모두 3루 쪽으로 번트를 대고 1루에서 살아나, 올 시즌 처음으로 연타석 번트안타를 성공시키기도 했다.

100kg에 육박하는 큰 체구의 선수가 재빨리 3루 쪽으로 번트를 대고 1루 쪽으로 내 달리는 모습은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강백호는 번트 기술도 좋아서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번트 타구를 보내, 거의 100% 성공을 하고 있다.

아마 강백호가 4할을 친다면 ‘번트 안타’의 비중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강백호가 4할을 치지 못하고, 타격왕을 차지하는 데 그친다고 하더라도 번트안타 덕을 적잖이 보게 될 것이다.

수비하는 쪽에서는 강타자 강백호를 1루타(내야안타)로 막아서 시프트의 본래 목적을 달성한 셈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1988시즌 '번트안타'로 타격왕 된 MBC 청룡의 김상훈

1982년 프로야구 원년(MBC 창룡 백인천 0.412)에서부터 지난해 기타 타이거즈의 최형우(0.354)에 이르기까지 모두 39번의 타격왕을 배출했는데, 유일하게 번트 안타로 타격왕이 된 선수가 있다.

1988년 MBC 청룡(LG 트윈스 전신)의 김상훈 선수다. 

1988시즌은 신생팀 빙그레 이글스까지 7개 팀이 전, 후기로 나누어서 리그를 진행했는데, 팀당 108경기(전반 54경기, 후반 54경기)를 치른 마지막 해였다. 전반기까지는 태평양 돌핀스의 김동기(0.392)와 삼성 라이온즈 김성래(.372) 두 선수가 치열하게 타격왕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당시 김상훈의 타율은 0.276으로 3할대 후반을 쳤었던 김동기, 김성래 두 선수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이었다. 

그러나 후반기 들어 김상훈은 전혀 다른 선수로 변했다. 7월 한 달 타율이 무려 0.463(80타수 37안타)였다. 따라서 타율이 0.342로 치솟았다.

전반기 무섭게 4할에 육박하던 김동기는 6월 20일 OB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발목 상처를 입어 타격왕 경쟁에서 밀려났고, 김성래는 후반기 들어 타율이 약간 떨어져(0.352), 이제 1위 김성래와 2위 김상훈이 타격왕을 놓고 다투게 되었다.

페넌트레이스 종료 3게임을 남겨 놓고 김상훈의 타율은 0.348, 김성래는 0.346으로 김상훈이 2리 앞서 있었다.

그때부터 김상훈이 타격왕을 향한 번트안타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9월 4일 태평양 돌핀스와의 경기 2회 초 번트안타, 9월 6일 롯데 자이언츠전 2회 초 번트안타, 6회 초 다시 번트안타, 7일 롯데 자이언츠전 번트안타까지. 김상훈은 시즌 마지막 3게임에서 4개의 번트안타를 성공시켜서 0.354의 타율로 0.350에 머문 김성래를 제치고 타격왕을 차지했다.

1988시즌은 88서울올림픽이 있어서 올림픽 개막전에 프로야구를 마무리 하기 위해 월요일 경기와 더블헤더도 빈번했었고, OB 베어스와 MBC 청룡은 8월 초순 이후에는 잠실야구장 대신 동대문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해야 했다.

왼손 타자였던 김상훈은 통산 타율이 0.288이었고, 동대문상고와 동아대를 나와 1984년에 MBC 청룡에 입단, MBC 청룡에서 10년을 뛰었다. 1993년 대형 트레이드(해태 한대화, 신동수, 허문회ㅡMBC 김상훈, 이병훈의 3대2 트레이드)로 선수생활의 마지막은 해태 타이거즈(1994~95)에서 했었다.

해태에서 은퇴한 후 청원고등학교 감독, 프로야구 해설위원을 거쳐 현재는 족발집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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